‘경이’와 ‘놀라움’
[말사랑·글꽃·삶빛 30] 말이란 무엇일까

 


  국어사전은 국어학자가 엮습니다. 국어학자는 국어를 익힌 사람입니다. ‘국어(國語)’란 무엇일는지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1) 한 나라의 국민이 쓰는 말 (2) 우리나라의 언어. ‘한국어’를 우리나라 사람이 이르는 말이다”라 나옵니다. 국어사전 말풀이에서 “한 나라의 국민”이라 나오는데, ‘국민(國民)’은 “국가를 구성하는 사람”을 뜻한다고 해요. ‘국가(國家)’는 또 무엇인가 하면 “= 나라”입니다. 곧, 나라를 이루는 사람이 ‘국민’이기에 “한 나라의 국민”처럼 적는 뜻풀이는 알맞지 않습니다. “한 나라의 나라의 사람”처럼 뜻풀이한 셈이니까요. 그런데 ‘국민’이라는 낱말을 한국사람이 얼마나 쓸 만한가 알쏭달쏭합니다. 1990년대까지 쓰던 ‘국민학교’라는 이름을 이제 ‘초등학교’로 바꾸었어요. ‘국민’이라는 낱말은 여느 한자말이 아니라, 일본제국주의가 한겨레를 식민지로 삼던 지난날 “천황 폐하를 섬기는 나라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썼거든요. ‘국어’라는 낱말도 이와 같아요. ‘국어’라는 한자말은 일본제국주의가 군대를 앞세워 여러 나라를 식민지로 삼던 때에 ‘일본말’을 가리키려고 썼어요. 중국사람은 ‘중국어’라 했고 한국사람은 ‘조선어’라 했어요. 이때 한국은 나라이름이 ‘조선’이었기에 ‘조선어’였어요. 일본은 나라이름이 일본이니 ‘일본어’로 적을 만했지만, 일본은 아시아를 제국주의를 내세워 윽박지르며 ‘국어’라는 한자말을 새로 지었어요.


  말뿌리를 살핀다면, ‘국민학교’에 붙던 ‘국민’만 털어낸대서 식민지 찌꺼기를 털 수 있지 않습니다. ‘국민’과 함께 ‘국어’를 털어야 합니다. 이와 맞물려 ‘국(國)-’을 붙인 여러 낱말도 나란히 털 수 있어야 해요. 털어낼 찌꺼기라 한다면 말끔히 털어야 할 노릇이요, 가꾸며 북돋울 겨레얼이라 한다면 찬찬히 살피며 두루 가꾸며 북돋울 노릇이에요.


  그림을 그리는 김원숙 님이 쓴 《그림 선물》(아트북스,2011)이라는 책을 읽다가 132쪽에서 “밤하늘에 달이 떠 있는 건 하나도 놀랄 일이 아닌데, 달은 볼 때마다 새롭고 경이롭다.” 같은 글월을 봅니다. 이 글월에서는 ‘놀랄’과 ‘경이롭다’라는 낱말이 나타납니다. 아마, ‘놀랄’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 한국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해요. 그러면, ‘경이롭다’가 무엇을 뜻하는지 제대로 아는 한국사람은 얼마나 있을까요.


  ‘경이(驚異)롭다’는 “놀랍고 신기하게 여기다”를 뜻하는 한자말입니다. 이 말풀이에 나오는 ‘신기(神奇)하다’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색다르고 놀랍다”를 뜻하는 한자말입니다. 곧, ‘경이롭다’란 “놀랍고 놀랍게 여기다”인 셈이면서, ‘경이 = 놀라움 = 신기’인 꼴입니다.


  우리 어른들은 말뜻과 말풀이와 말느낌을 얼마나 옳게 헤아리면서 말을 하며 살아간다고 할 만할까요. 말뜻을 제대로 짚으며 말하는 어른은 얼마나 될까요. 말풀이를 찬찬히 살피는 어른은 얼마나 있을까요. 말느낌을 살가이 살리며 말을 나누는 어른은 얼마나 찾아볼 수 있을까요.


  국어사전에 실린 숱한 한자말은 돌림풀이로 뜻풀이를 합니다. 돌림풀이로 뜻풀이를 붙이는 한자말을 이모저모 살피면, 오랜 옛날부터 한겨레가 쉽고 수수하게 주고받던 낱말을 이래저래 밀어내며 자꾸 쓰이는구나 싶습니다. 한국사람은 한국사람이지만 정작 한국에서 쓸 한국말을 올바로 깨닫지 못하는구나 싶습니다. 털며 아름답게 가꿀 말을 털지도 못하고 아름답게 가꾸지도 못합니다. 슬기롭고 올바로 쓸 말을 슬기롭게도 못 쓰고 올바르게도 못 씁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국어’가 아닌 ‘나라말’입니다. ‘국민’이 아닌 ‘나라사람’입니다. ‘국가’가 아닌 ‘나라’입니다. ‘國歌’처럼 적는 한자말 또한 ‘국가’가 아닌 ‘나라노래’입니다. 한 번 더 되돌아보면, ‘나라말’이기 앞서 ‘말’입니다. ‘나라사람’이기 앞서 ‘사람’입니다. ‘나라노래’이기 앞서 ‘노래’예요.


  오늘날 들어서 우리 겨레 이야기를 ‘옛이야기’라 하면서 ‘옛-’을 앞에 붙이지만, 예부터 오래오래 내려온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시골에서 흙일을 하며 부르던 노래는 ‘민요’나 ‘전래민요’가 아닌 ‘노래’일 뿐입니다. 시골이 도시로 바뀌거나 시골에 할머니 할아버지만 남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민요’나 ‘전래민요’ 같은 이름을 붙일까요. 어쩌면, 이런 이름을 일부러 붙이면서 오늘날에도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먼먼 옛날 구닥다리’라도 되는 듯 몰아붙이는 셈 아니랴 싶어요. 오늘도 시골에서 논일을 하고 밭일을 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저절로 입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불러요. 할머니 노래는 민요 아닌 노래이고, 할아버지 노래는 전래민요나 전통민요가 아닌 노래예요.


  우리들이 쓰는 말은 ‘한국말’이라 이름을 붙일 만하지만, 이에 앞서 ‘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터가 한국이니 ‘한국말’이라 하지만, ‘말’을 나눌 뿐입니다. 나는 내 삶을 담고 내 넋을 싣는 말을 합니다. 내 둘레에서는 내 동무나 이웃이 ‘동무 삶’과 ‘이웃 넋’을 들려주는 말을 합니다.


  이렇게 써야 바른 말이 된다거나 저렇게 써야 고운 말이 된다고 하는 틀은 없습니다. 누구나 스스로 살아가며 나누는 말입니다. 삶에 따라 스스로 빚는 말인 만큼, 삶을 곱게 일구는 사람은 넋이 곱고 말이 곱습니다. 삶을 참답게 가꾸는 사람은 넋이 참다우며 말이 참답습니다. 삶을 즐겁게 누리는 사람은 넋이 즐겁고 말이 즐겁습니다.


  국어사전은 국어학자가 국어학을 익히며 엮습니다. ‘말’은 우리들이 바로 이곳에서 내 보금자리를 알뜰히 사랑하면서 저마다 즐겁게 주고받습니다. (4345.10.2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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