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친다는 것 (만화) - 교실을 살리기 위해 애쓰는 모든 교사들에게
윌리엄 에어스 지음, 홍한별 옮김, 라이언 앨릭샌더 그림 / 양철북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살아가는 하루란 무엇일까
 [만화책 즐겨읽기 185] 윌리엄 에어스·라이언 앨릭샌더 태너, 《가르친다는 것》

 


  도시를 지은 사람들은 무엇을 꿈꾸었을까요. 도시를 지은 사람들은 이 삶터에 깃들 사람들이 어떤 꿈을 꾸면서 어떤 사랑을 나누리라 생각했을까요.


  볼일을 보러 가끔 도시로 마실을 하면서 도시사람 스스로 꿈이나 사랑을 꽃피운다거나 나눈다고는 느끼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나는 서른 해 가까이 도시에서 살았어요. 도시에서 살아가며 꿈도 꾸고 사랑도 꽃피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도시를 지은 사람들은 도시사람이 꿈을 꾸거나 사랑을 꽃피우기를 바랐을까 헤아리다 보면, 으레 고개를 절레절레 젓곤 해요. 어쩐지 도시라는 삶터는 꿈이나 사랑하고는 동떨어지지 싶어요.


  도시에서 집을 짓거나 길을 닦거나 건물을 세우는 모습을 바라볼 때면 늘 이렇게 느껴요. 왜 가난한 사람들 작은 보금자리 모인 데를 통째로 허물려고 하지? 왜 자꾸 따사로운 마을을 무너뜨리면서 아파트를 짓거나 공장을 세우거나 무슨무슨 건물이나 운동장을 만들려 하지? 왜 부잣집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찻길은 안 닦으면서 가난한 동네 한복판으로는 전철길이든 기찻길이든 넓은 찻길이든 뚫으려 하지? 왜 부잣집 언저리에는 공장을 안 지으면서 가난한 동네 옆에 찰싹 붙여 공장을 짓지?


  나이가 들며 천천히 생각합니다. 가난한 동네 어른들은 공장 일꾼이 됩니다. 부잣집 도련님이나 아가씨는 공장 일꾼이 안 됩니다. 가난한 동네 어른들은 도시 밑바탕을 이루는 톱니바퀴와 같습니다. 스스로 쳇바퀴 다람쥐처럼 살림을 꾸리도록 내몰아야 도시가 버틸 수 있어요. 아주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서 퍽 가난하게 살아가야 비로소 도시가 버티는구나 싶어요. 더욱이, 도시뿐 아니라 시골에도 ‘곡식과 열매를 매우 값싸게 팔아서 가난하게 지내야 하는 흙일꾼’이 있어야 도시가 버텨요.


- 처음 교사가 되었을 때, 유치원 반을 맡은 첫날 아침 일이었다. “왜 공이 튀어요?” “어.” ‘이런! 아직까지 난 그것도 모르는구나!’ (12쪽)
- 퀸이 표준시험에서 배운 것은 시험이 원하는 답을 어떻게 찾느냐는 것뿐이었지만, 나는 시험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이 시험은 교직과 시험 응시자 둘 다를 격하시켰습니다. 표준시험은 교사의 여러 자질 중에서 아주 일부만 충족시키면 된다고 말합니다. 만점을 맞을 수도 있고 시험에 낙방할 수도 있지만, 그 결과만 가지고 내가 좋은 교사가 될지, 형편없는 교사가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96쪽)


  시골을 지은 사람은 따로 없습니다. 시골은 스스로 태어납니다. 시골 숲은 풀과 나무가 스스로 씨앗을 내어 스스로 이룹니다. 시골에 이루어지는 마을은 시골에서 흙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짓습니다. 흙과 나무와 풀을 써서 짓는 조그마한 집이 군데군데 생깁니다. 흙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 곧 ‘흙사람’은 흙집을 짓고 흙밥을 먹습니다. 흙일을 합니다. 흙일 하는 흙사람 흙집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저절로 흙아이가 돼요. 흙놀이를 하고 흙꿈을 꿉니다. 차근차근 흙사랑을 깨닫고 흙누리를 박차고 일어섭니다.


  시골에서는 쓰레기가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아니, 처음 시골이 이루어진 때부터 아주 오래도록 시골에서는 ‘쓰레기’라는 낱말이 안 쓰였습니다. 모든 삶자락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갔어요. 집도 신도 옷도 사람 몸뚱이도 흙에서 비롯하면서 흙으로 돌아갔어요.


  쓰레기는 도시에서 태어났어요. 흙이 없거나 흙을 멀리하거나 흙을 깎아내리는 도시에서 쓰레기가 태어났어요. 도시에서 짓는 집은 백 해를 버티지 못하고 쓰레기가 되어요. 도시에서 먹고 마시고 입고 누리는 모든 것은 열 해를 버티지 못하고 쓰레기가 되어요. 그런데, 도시는 쓰레기를 만들고 쓰레기를 버리면서 ‘날마다 생기는 쓰레기를 어디에 버려야 할는지’ 가늠하지 못해요. 도시에서 흙을 내팽개치고 도시에서 흙을 등지면서, ‘쓰레기가 흙으로 돌아가 새 숨결이 되도록 하는 얼거리’를 짜지 않아요. 더구나,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스스로 쓰레기를 만들고 버리고 묻으면서 이 쓰레기가 앞으로 어떻게 될는지, 이 쓰레기 때문에 도시뿐 아니라 이 나라 삶터가 어떻게 될는지 생각하지 않아요.


- 선생님들이 늘 읽고 고민하고 탐구하고 수집하고 영화관, 박물관, 연주회, 강연회, 전시회에 가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모든 것을 알기에는 부족하다. 우주는 팽창하고 지식은 무한하다. 그러니 좋은 교사라면 아이들과 함께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어 같이 모험을 해야 한다. (15쪽)
- “뭘 배우는 건 쉬운 일입니다. 요즘 학교에서 강조하는 건 그것뿐이지요. 하지만 생각하고 느끼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제 관심은 바로 그런 거예요.” (68쪽)


  살아가는 하루란 무엇일까요. 삶이란 무엇일까요. 스스로 생각하는 삶이란 어떤 그림으로 나타낼 수 있을까요.


  어버이는 스스로 살아가는 하루를 아이들한테 보여줍니다. 어버이는 스스로 누리는 삶을 아이들한테 물려줍니다. 어버이는 스스로 바라거나 좋아하거나 즐기는 삶을 아이들한테 가르칩니다.


  교사는 학교에서 지식을 가르치는 몫을 맡는다 하는데, 학생들이 배워야 한다는 지식은 학생들 삶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할까요.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마치는 아이들은 이녁 삶을 어떻게 일굴 때에 즐거울까요. 대학교에 가야 즐거운 삶이 될까요. 대학교를 마친 뒤 큰회사나 공공기관에 들어가 연봉을 많이 받아야 즐거운 삶이 될까요. 더 커다란 도시에서 더 커다란 아파트를 장만하고 더 새까만 자가용을 굴려야 즐거운 삶이 될까요.


  무엇이 즐겁다 할 만한 삶일까요. 어디에서 즐겁다 할 만한 삶을 누릴까요. 누구하고 사귀거나 만나면서 즐겁다 할 만한 삶을 빛낼까요. 그러니까, 학교란 어떠한 곳이고, 학교에서 교사 몫을 맡는 이들은 어떤 지식을 아이들한테 가르치면서 스스로 즐겁고 아이들이 즐겁도록 삶을 누리는가요.


  어쩌면, 교사도 학생도 모두 즐거움하고는 동떨어진 채 하루를 보내지 않나요. 곰곰이 살피면, 교사도 학생도, 게다가 어버이까지, 또 교장과 교감을 비롯해 국회의원과 시장과 군수와 대통령까지, 모두들 즐거움하고는 등을 진 채 삶을 흘리지는 않나요.


- 비극은 모든 아이들이 (위대한 재즈 가수) 엘라였다는 것이다. 가치와 가능성을 지닌 사람들. 그런데 학교에서는 그걸 모른다. 나도 내 반에서 엘라를 놓쳤을까? 내가 그 재능과 슬기를 드러나게 만들 수 있었을까? 어떻게? (34쪽)


  하루를 누리면서 가장 즐겁다 여기는 때를 돌아봅니다. 하루를 즐기면서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는 때를 헤아립니다. 왜냐하면 삶이거든요. 좋아하기에 스스로 즐기는 삶이에요. 사랑하기에 스스로 빚는 삶이에요.


  웃고 싶어요. 낯을 찡그리고 싶지 않아요. 노래하고 싶어요. 꽁한 채 있고 싶지 않아요. 밥을 먹고 싶어요. 내 손으로 마련한 먹을거리를 내 손으로 다루어 맛나게 밥상을 차리고 싶어요. 내 옷가지와 아이들 옷가지를 손수 빨래해서 햇볕에 말리고 싶어요. 다 마른 옷가지를 아이들과 천천히 개고 싶어요.


  밤하늘 별을 바라보며 자장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빈 들판을 아이들과 느긋하게 거닐며 흙기운과 풀기운을 새삼스레 느끼고 싶어요. 낮에는 흰구름이 어떤 그림을 하늘에 그리는가를 살피고, 밤에는 뭇별이 어떤 빛깔을 하늘에 선보이는가를 마주하고 싶어요.


  새들이 지저귑니다. 벌레도 우짖습니다. 태평양하고 맞닿은 전라남도 바닷가 마을은 한가을에도 퍽 포근해서, 감나무이든 모과나무이든 벚나무이든 매화나무이든 새잎이 하나둘 돋습니다. 올겨울에도 동백나무 몇 봉오리는 찬눈을 맞으면서도 바알간 꽃잎을 활짝 펼치리라 생각해요.


- 학생들은 배우는 사람일 뿐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이 된다. 교사는 학생의 성장과 배움을 돕기 위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교사와 학생은 세상을 알기 위해 나란히 함께 애쓴다. (36쪽)


  국민학교 여섯 해, 중학교 세 해, 고등학교 세 해, 이렇게 열두 해에 걸쳐 내가 무엇을 배웠는가 돌아봅니다. 열두 해에 걸쳐 학교에서 삶을 배운 적이 있는가 돌아봅니다. 글쎄요, 참말 ‘글쎄요’ 말고 내 입에서 튀어나올 말이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국민학교는 중학교를 바라보는 시험공부를 시킵니다. 중학교는 고등학교를 바라보는 시험공부를 시킵니다. 고등학교는 대학교를 바라보는 시험공부를 시켜요. 이 다음에 대학교에서는 큰회사나 공공기관을 바라보는 시험공부를 시켜요.


  온통 시험공부뿐이에요. 학교는 시험공부만 시키는 데예요. 학교에서 마음껏 놀지 못해요. 학교에서 마음껏 놀면 교사들이 우락부락 얼굴을 찡그리며 몽둥이를 휘둘러요. 때로는 손찌검을 하고 퍽 자주 발길질을 해요. 낮밥을 먹은 뒤이든, 50분 수업 뒤 찾아오는 10분 겨를이든, 또 모든 수업을 마친 뒤이든, 우리들은 널따란 운동장에서 흙바람 일으키며 놀고 싶지만, 교사들은 하나같이 윽박지르기만 해요. 내가 국민학교 6학년이던 때 앞반 담임교사는 운동장에서 뛰노는 우리들을 4층 교실 창문에서 내려다보며 “이놈들 집에 안 가고 뭐해! 너희들 내일 시험 봐서 60점 이하이면 나한테 죽을 줄 알아!” 하고 외쳤어요. “시험 봐서 60점 넘으면 놀아도 되죠?” 하고 맞받아 외치니, “너 누구야!” 하고 더 큰 소리가 튀어나왔어요.


  때리거나 말거나, 윽박지르거나 말거나, 수업과 시험에 가두거나 말거나, 숙제로 어깨를 내리누르거나 말거나, 어찌 되든 놀고 보았습니다. 내가 떠올리는 학교는 ‘넓은 흙땅이 있어 동무들하고 놀기 좋은 데’입니다. 흙땅 말고는 어느 것도 떠올리지 못해요. 시험공부도 시험문제도 시험성적도 떠올리지 못해요. 내 동무들 누구나 다른 어느 것도 떠올리지 못해요. 누가 1등을 했든 10등을 했든 꼴등을 했든, 그때에나 오늘에나 대수롭지 않습니다. 그무렵 얼마나 실컷 놀았는가 하는 대목이 대수롭습니다.


  학교에서 어떤 지식을 배웠는가 안 배웠는가 또한 대수롭지 않습니다. 산수이든 자연이든 국어이든 몰라도 돼요. 철학이든 과학이든 역사이든 잊어도 돼요. 함께 삶을 누리는 동무를 떠올리고, 같이 사랑을 꿈꾸던 짝꿍을 되새길 수 있으면 돼요.


- “그래! 너희들 모두 너희가 원하는 게 될 수 있어. 세상을 보는 시각은 주관적이니까.” “그게 뭐예요?” “그 말은 세상을 너희가 원하는 대로 바라보고 경험할 수 있다는 뜻이야.” (42쪽)
- “우리는 모두 우리 삶의 전문가이니까, 모두가 자기 이야기의 저자라는 것이죠.” (49쪽)


  윌리엄 에어스 님 글과 라이언 앨릭샌더 태너 님 그림이 어우러진 만화책 《가르친다는 것》(양철북,2012)을 읽습니다. 학교가 학교다울 수 있는 길을 찾는 이야기책이고, 배움이 배움다울 수 있는 자리를 살피는 이야기책입니다. ‘가르침’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어른과 아이가 다 함께 사랑스러운 숨결인 줄 깨닫자고 하는 줄거리를 조곤조곤 펼칩니다.


- “왜 바퀴가 굴러가요?” “모르겠는데! 같이 알아보자.” (133쪽)


  함께 걷는 길입니다. 살아가는 하루란 함께 걷는 길입니다. 어깨동무하며 사랑하는 길입니다. 살아가는 하루란 서로 어깨동무하며 사랑하는 길입니다.


  어버이는 아이들과 어깨동무하며 사랑합니다. 우리 식구는 풀과 나무와 벌레와 새하고 어깨동무하며 사랑합니다. 햇볕은 들판을 사랑합니다. 바람은 냇물을 사랑합니다. 숲은 벌레를 사랑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아끼며 좋아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삶을 일구면서 따사로운 마음으로 믿음을 키웁니다.


  대한민국 수도가 어디인가는 몰라도 돼요. 독도가 어느 나라 땅인지 몰라도 돼요. 국보 1호나 보물 1호가 무엇인가 몰라도 돼요. 대통령 이름이든 군수 이름이든 몰라도 돼요. 내 어머니 이름을 한자로 적을 줄 몰라도 돼요. 내 생일이 언제인가 몰라도 돼요. 다만 하나, 오늘 하루 살아가며 누리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아야지요. 사랑을 마음껏 누리며 북돋우는 꿈이 어떠한가 알아야지요.


  사랑을 알면서 꿈을 알아요. 꿈을 알면서 삶을 알아요. 삶을 알면서 사람을 알고, 사람을 알면서 뭇목숨에 깃든 숨결을 알아요. 학교, 이른바 배움터란 삶터입니다. 삶터란 쉼터입니다. 쉼터란 놀이터입니다. 놀이터란 일터입니다. 일터란 꿈터입니다. 꿈터란 사랑터입니다. 사랑터란 믿음터요, 믿음터란 숲터예요. (4345.10.13.흙.ㅎㄲㅅㄱ)

 


― 가르친다는 것 (윌리엄 에어스 글,라이언 앨릭샌더 태너 그림,홍한별 옮김,양철북 펴냄,2012.9.25./9000원)

 

(최종규 . 20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