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신문에 띄우는 글.

 


 책으로 보는 눈 189 : 사람으로 가는 길

 

 

  겨울에 대통령을 뽑습니다. 이 자리에 나선 어느 분은 ‘ㅂㄱㅎ’라고 당신 이름을 적습니다. 제가 잘 모르니 모른다 할 텐데, 한국에서 정치를 한다고 나선 이 가운데 이녁 이름을 ‘JP’나 ‘DJ’나 ‘YS’나 ‘MB’처럼 알파벳 아닌 한글 닿소리로 적도록 하자고 말한 사람은 처음이지 싶습니다. 한국사람한테는 한국글인 한글이 있기에 한국에서 지내며 이웃과 동무하고 한글로 내 마음을 나누면 돼요.


  2012년 1월부터 부산문화재단은 ‘ㅂㅅㅁㅎㅈㄷ’처럼 기관 이름을 적는다고 합니다. 이 또한 모르는 노릇인데, 한국에 있는 공공기관이나 지자체 가운데 알파벳 아닌 한글 닿소리로 기관 이름을 적은 일로는 처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모두들 영어에만 눈길을 보내고, 영어를 해야 먹고살 수 있는 듯 말하며, 영어 아니면 지구마을을 못 이루는 듯 여깁니다.


  기관 이름을 한글 닿소리로 적는대서 훌륭하지는 않습니다. 스스로 즐겁게 일하면서 이웃과 동무를 사랑하는 마음씨일 때에 비로소 훌륭하다 할 만합니다. 이름은 어여삐 적는다지만, 하는 일은 볼썽사납거나 얄궂다면 껍데기가 될 테지요. 언론놀이 하듯 밖으로는 한글사랑·한국사랑인 듯 외치지만 속으로는 옳고 바르며 참답고 착하게 한국말을 아끼거나 사랑하지 않는다면 겉치레가 될 테지요. 어떤 말을 하거나 어떤 이름을 쓰거나 가장 대수롭게 들여다볼 대목이라면 ‘사람으로 가는 길인가’랑 ‘사랑으로 가는 길인가’라고 느껴요.


  안동 시골마을에서 놀이밥 먹으며 살아가는 편해문 님이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소나무,2012)라 하는 책을 내놓으며 “닭장 안에서 조금의 자존감도 느낄 수 없었던 닭들이 다른 닭들을 존중한다는 것은 당치 않은 이야기다. 왕따는 바로 존중받지 못하고 관심받지 못한 아이들이 벌이는 존재의 드러냄이다(35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놀 터와 동무와 겨를이 없도록 온누리를 꽁꽁 닫아거는 어른들은 아이들을 아끼지 않고 사랑하지 않으며 돌보지 않는 셈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누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환하게 알겠지요. 초등학교가 초등학교 구실을 안 하는 한국이에요. 어린이집이나 고등학교도, 중학교나 대학교도, 배움터 구실을 못 하는 한국이에요. 모든 교육기관이 배움터 아닌 입시학원이에요. 삶을 나누는 배움마당 아닌 영어와 지식을 외우는 시험터예요.


  미국에서 교사란 어떤 사람이고 가르침이란 무엇인가 생각하던 이들이 《가르친다는 것》(양철북,2012)이라는 만화책을 묶습니다. 가르침과 배움을 들려주는 만화책은 “우리는 학생들을 볼 때 무엇을 보나? 누구를 보나? 똑같은 얼굴들? 지능지수와 시험 성적? 결함들? 아니면 가능성(34쪽)?” 하고 묻습니다.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내 어버이를 바라보면서, 대통령 후보를 바라보면서, 이웃을 바라보면서, 여기에 책 한 권을 바라보면서 무엇을 생각하나요. 대학교는 왜 들어가야 하고, 고등학교나 중학교는 왜 다녀야 하나요. 무엇을 배워야 하고, 서로서로 무엇을 가르쳐야 하나요.


  한가위를 지난 달이 차츰 이울며 날씬한 초승달이 됩니다. 시골마을에서는 초승달이 밝게 보이고, 달 곁 별들 모두 반짝입니다. 풀벌레 노랫소리 호젓합니다. (4345.10.1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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