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책읽기

 


  두 아이를 데리고 부산으로 마실을 나온다. 길디긴 하루를 마감하며 잠자리에 든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곧 곯아떨어지는데, 막 잠들기 앞서 큰아이가 아버지한테 묻는다. “(바깥에) 무슨 소리야?” 창문 바깥에서 아스라이 온갖 소리가 크고 작게 울린다. 큰아이는 인천에서 태어났고, 큰아이가 아주 갓난쟁이였을 적 살던 인천 골목집에서는 언제나 자동차 소리와 전철 소리를 들었다. 데시벨이라 하는 소음측정으로 100이 넘어가도록 시끄럽게 들어야 하던 소리인데, 큰아이가 세 살이 될 무렵 도시를 떠나 시골로 옮겨 살아가며 이 시끄러운 소리들하고 헤어졌다. 큰아이로서는 두 해 반만에 듣는 소리라고 할까.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야. 우리 사는 시골에서는 풀벌레하고 새들 노래하는 소리가 들리지? 여기는 부산이라고 하는 되게 큰 도시야. 낮에도 많이 봤잖아. 도시에는 자동차가 아주 많아. 그래서 이렇게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가 크게 들려. 도시에서는 풀벌레하고 새들 노래하는 소리가 하나도 안 들려.”


  큰아이한테 자동차 시끄러운 소리를 이야기하며 나 스스로 슬프다. 어쩌다 한두 차례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아침부터 밤까지, 또 새벽 내내, 잠자는 동안, 온통 자동차 소리를 들어야 하는 도시이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동차 소리를 듣고 자동차 모습을 본다. 아이들과 부산으로 마실을 오면서 자동차 때문에 자꾸 아이들한테 빽빽 소리를 지르고야 만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은 자동차 볼 일이 아주 적어, 찻길에서든 마당에서든 마을에서든 저희 마음껏 마구 뛰고 구르고 기고 달리고 논다. 찻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도시에서는 이와 다르다. 아이들은 거님길에서 달리다가 아무렇지 않게 찻길로 확확 내려서며 논다. 찻길에서는 커다란 버스며 생생 달리는 택시며 무시무시하다. 내가 무시무시하다고 안 느끼면 하나도 안 걱정스러울 수 있지만, 자동차를 모는 이들은 ‘갑자기 찻길로 뛰어내려와 노는 아이들’을 찬찬히 헤아리지 않는다. 자동차를 모는 어른들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려 하고, 자동차로 꽉 막힌 도시에서 요모조모 빈틈을 찾아 끼어들기를 하기 일쑤라, 아이들은 이 자동차한테 쉽게 치이고 쉽게 목숨을 잃는다.


  도시로 마실을 오니, 아이들한테 자꾸자꾸 소리만 질러대야 해서 어버이로서 아주 미칠 노릇이다. 내가 미치고 아이들이 미치겠다. 아이들이 소리 지르는 아버지 눈치를 봐야 하고, 아버지가 자꾸 소리를 지르니 자동차들 눈치를 봐야 하고, 아이들이 아이들답게 마음껏 개구지게 뛰놀지 못하고 만다.


  가게에서도, 골목에서도, 버스나 택시 같은 데에서도, 아이들이 아이들답게 마구 소리를 지르고 노래도 부르면서 뛰놀지 못한다. 아이들은 그저 꾹 참아야 한다. 아이들은 어른들한테 꾸지람을 들어야 하고, 때로는 엉덩짝이든 볼기짝이든 찰싹 얻어맞기도 한다. 나는 차마 이 아이들 궁둥짝을 때리지는 못하지만, 이맛살을 찡그리고 소리를 질러대니, 내 마음부터 메말라지고야 만다.


  도시에서 살아가며 마음 느긋해지는 길이란 무엇일까. 도시에서 살아가며 책읽기란 무엇일까. 도시에서 살아가며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믿고 보살피고 좋아하는 길이란 무엇일까. 도시에서 살아가며 서로 어깨동무하는 책읽기란 무엇일까. 기쁜 웃음으로 함께 마주할 도시살이란 무엇일까. (4345.10.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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