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 잘하는 아버지

 


  한가위를 맞이해 아이들 할머니 할아버지 살아가는 음성 시골집으로 나들이를 온다. 내 어머니 일을 이모저모 거든다. 틈틈이 아이들을 보살핀다. 사이사이 빨래를 한다. 이부자리를 깔고, 아이들을 옆지기와 하나씩 재운다. 요즈음 이 나라가 이럭저럭 ‘성평등’을 이룬다고 말들 하지만, 내 보기에는 성평등은 허울뿐이요, 사내도 가시내도 저마다 스스로 맡을 집살림과 집일하고는 동떨어지지 싶다. 젊은 사내와 가시내는 으레 늙은 어머니한테 살림과 일을 맡긴다. 젊은 사내와 가시내 모두 살림과 일을 어떻게 건사해야 할는지 갈피를 못 잡는다. 그러니까, 오늘날은 사내도 가시내도 ‘집에서 다 같이 일도 살림도 안 하는 모습’으로 ‘성평등’을 이룬달까. 슬기로우면서 참답다 할 성평등이라 한다면, 저마다 즐겁고 기쁘게 보금자리를 사랑하고 아끼면서 살림과 일을 함께 하는 모습이리라 느낀다. 반반씩 나누어서 하는 일이 아니다. 힘이 세니까 더 하는 일이 아니다. 사내라서 해 주어야 하는 일이 아니다. 가시내니까 해 주는 일도 아니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따스한 사랑으로 누리는 살림이면서 일이다.


  적잖은 이들이 나를 바라보면서 “집안일 잘하는 아버지”라고 일컫곤 한다. 그런데 나는 잘 모르겠다. 나는 언제나 “집안일을 모두 다 하는 일꾼”이랄까, 살림꾼이랄까, 이렇게 살아가니까, 내가 집안일을 잘하느냐 못하느니 하고 말할 수 없다고 느낀다. 난 그저 집안일을 하는 사람이요, 내 온 사랑을 담아 보금자리를 아끼고픈 집식구 가운데 하나인데. (4345.9.3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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