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은 헌책이 있는 곳입니다. 국어사전 말풀이를 살피면 “헌책을 팔고 사는 가게”가 ‘헌책방’이라 합니다. ‘헌책’은 “이미 사용한 책”을 가리키는 낱말이라고 해요. 그런데, 헌책방이나 헌책을, 또 책을, 이런 말풀이로 나타내거나 바라보아도 좋을까 아리송합니다. 그저 ‘누군가 한 번 쓴(읽은) 책’을 ‘헌책’이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허전합니다. 그예 ‘헌책을 팔거나 사는 곳’을 ‘헌책방’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모자랍니다. 마음을 담는 책이요, 마음을 담기에 기나긴 나날이 흘러도 얼마든지 되읽으면서 꿈을 빛내도록 도우니까, 사람들이 헌책방으로 마실을 다니며 손에 책먼지를 묻히리라 느껴요. 그리 크지 않든 제법 크든, 마음을 밝히는 책 하나를 만나면서 기쁘게 웃을 만한 책쉼터인 헌책방이라고 느껴요. 헌책방은 서울에도 있고 부산에도 있습니다. 강릉에도 있고 춘천에도 있습니다. 작은 시골마을을 둘러싼 작은 도시에도 헌책방이 있습니다. 시골 들판과 숲하고 가까운 데에 있으며, 바다하고도 가까운 데에 있는 헌책방 여러 곳 이야기를 가만히 헤아립니다. 순천 〈형설서점〉 일꾼은 “도움되고 사랑받는 책도 있지만, 도움 안 되고 어느 한 사람만을 위해 만든 책도 있단 말이야. 그러나 그 책도 나올 가치가 있어 나왔으니까, 나는 그 책도 한 권이라도 사서 갖추는 거야.” 하고 말합니다.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만 책이 아닙니다. 삶을 담고 삶을 말하며 삶을 사랑하는 길을 밝힐 때에 비로소 책입니다.

 


  숲사람 이야기 2 - 엑스포 구경 아닌 헌책방 마실
  책으로 빚은 숲

 


  엑스포·나들이


  전라남도 여수에서 ‘엑스포’가 여러 달 열렸습니다. 적잖은 사람들이 여수로 엑스포 구경을 한다며 찾아갔습니다.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며, 자가용을 몰아, 여수로 나들이를 다녔겠지요. 서울부터 여수까지 고속철도가 다니기에, 서울사람은 여수까지 손쉽게 오갈 수 있습니다.


  엑스포 막바지에, 우리 네 식구 살아가는 전남 고흥 시골마을에 ‘마을 이장님 새벽 알림방송’으로 엑스포에 구경하러 가라는 이야기가 흐르곤 했습니다. ‘마을로 공짜표 나왔으니 가실 분은 이장한테 와서 받아’서 구경하러 가라 했습니다.


  우리 식구는 이장님한테서 공짜표를 얻지 않습니다. 따로 엑스포를 구경하러 갈 마음이 없고, 이웃한 도시 여수로 나들이를 간다면 엑스포 아닌 다른 곳을 찾아가고 싶습니다. 여수에는 바다와 가까운 곳에 예쁜 헌책방이 있어요. 여수에도 예전에는 헌책방이 곳곳에 많았을 테지만, 이제는 고소동 641번지에 1·2층으로 이루어진 〈형설서점〉 한 곳이 있어요. 책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여수 나들이를 하면서 고소동 헌책방에 들러 마음밭에 책씨를 솔솔 뿌린 다음, 천천히 걸어 진남관을 거치고 이순신광장을 들러 돌산다리 바라볼 수 있는 바닷가에 앉아 책 한 권 펼치며 너른 바다 숨결을 맞아들일 수 있습니다. 헌책방으로 걸어서 오갈 만한 데에 있는 여관에서 며칠 머물면서 틈틈이 헌책방으로 책마실을 다닐 수 있습니다. 여수에서 살아가는 분이라면 자전거를 타고 슬슬 헌책방마실을 누릴 수 있어요.


  여수 엑스포는 끝났으나, 엑스포가 없더라도 헌책방은 튼튼히 있었습니다. 엑스포가 끝난 뒤에도 헌책방은 씩씩하게 제자리를 지키며 예쁘게 있으리라 생각해요. 책은 조그마한 씨앗입니다. 헌책방은 조그마한 씨앗을 건사하는 자그마한 씨앗주머니입니다.

 

 

 

 

 

  바다·멧자락


  전남 고흥에는 헌책방이 없습니다. 예전에도 없었는지 이제는 없는지 잘 모릅니다. 아마 예전에는 고흥에도 헌책방이 있었으리라 생각해요. 고흥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고흥에서 학교를 다니고 고흥에서 뿌리를 내리며 예쁘게 살아가던 지난날에는 헌책방뿐 아니라 새책방 또한 작은 면소재지에까지 있었겠지요. 나날이 초등학교가 문을 닫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마저 문을 닫아요. 전남 고흥에서 문을 닫은 학교는 쉰 군데가 넘어요. 예순 군데가 넘을는지 모르고, 머잖아 백 군데 넘는 학교가 문을 닫겠지요. 왜냐하면 시골사람이 자꾸자꾸 도시로 가거든요. 시골 초등학교를 다니다가도 이웃한 도시에 있는 커다란 초등학교로 옮겨요. 중학교까지 다니다가 고등학교부터는 순천이나 광주로 나가곤 해요. 고등학교까지 고흥에서 다니더라도 대학교를 간다며 훨씬 커다란 도시로 나가요. 그리고, 이렇게 한 번 시골마을 고흥을 떠난 아이들은 거의 도시에서 뿌리를 내려요. 다시 시골마을로 돌아와 시골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을 찾지 않아요. 이러니 시골마을 헌책방은 문을 닫고 사라져요. 시골마을 작은학교가 문을 닫고 사라지듯, 시골마을에 깃들던 작은 헌책방과 새책방은 소리도 소문도 자취도 소식도 남기지 못한 채 아스라이 사라져요.


  순천 〈형설서점〉에서 장만한 《三山二水》(정한조 엮음,1965)라는 묵은 책 하나를 살펴봅니다. 순천시와 승주군 역사를 다루었다는 묵은 책인데, 102∼103쪽에 순천시와 승주군 ‘국민학교 현황’이 표로 실립니다. 1964년 5월을 잣대로, 승주군에 있는 ‘분교’ 다섯 군데(평중·월가·이곡·도월·대룡) 가운데 넷은 학급수가 둘이요, 학생 숫자는 94∼130이며, 한 곳은 학급수 넷에 학생 숫자 166입니다. 이즈음에는 분교조차 학급이 둘이어도 학생은 100을 넘곤 했으나, 요즈막 고흥 면내 초등학교는 학생이 10 안팎인 곳이 퍽 많아요.


  네 식구는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갑니다. 읍내에서 시외버스로 갈아타고 두 시간 남짓 달려 여수에 닿습니다. 고흥에서 순천으로 나가는 길은 온통 숲길입니다. 왼쪽도 오른쪽도 숲이고 들입니다. 벌교를 거쳐 순천으로 가는 길은 온통 아파트와 가게입니다. 왼쪽도 오른쪽도 아파트요 가게들뿐, 숲도 들도 보이지 않습니다. 순천에는 순천만이 있다지만, 시외버스를 타고 달릴 때에는 바다를 볼 수 없습니다. 이러다가 순천을 벗어나 여수로 접어드는 길은 다시 숲길이 됩니다. 왼쪽도 오른쪽도 너른 숲이요 들입니다.


  숲바람을 쐽니다. 들바람을 맞습니다. 숲과 들을 거쳐 바다로 둘러싸인 도시 여수에 닿습니다. 여수는 제법 큰 도시라 할 텐데, 도시이면서도 숲이 있는 멧자락 사이에 이루어진 도시입니다. 너른 바다를 둘레에 예쁘게 안은 도시입니다. 똑같은 도시라 하더라도 이렇게 바다와 숲을 함께 얼싸안는 곳이라 하면 예쁜 넋을 푸른 숨결로 가꿀 만하리라 느껴요.

 

 

 

 

  여수 헌책방·순천 헌책방·진주 헌책방


  여수에 헌책방 한 곳 있고, 순천에 헌책방 한 곳 있습니다. 여수에는 고소동 여수경찰서 옆에 〈형설서점〉(061-664-8949)이 있고, 순천에는 시외버스역 둘레 저전동 230-2번지에 〈형설서점〉(061-741-0228)이 있습니다. 같은 이름을 쓰는 두 책방으로, 순천은 동생 헌책방이요, 여수는 형 헌책방입니다. 맨 처음에는 1981∼82년 무렵 형이 어머니와 함께 광주에서 헌책방 일을 했고, 동생은 1987년에 안동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 동생은 안동에서 세 해 헌책방 일을 잇다가 광주에서 헌책방을 하던 어머니하고 함께 책살림을 꾸리고, 동생이 남원에서 새롭게 제금나서 헌책방을 차릴 즈음 형은 회사를 그만둡니다. 그러고는 동생이 꾸민 남원 가게를 받아 책살림을 꾸리다가 여수로 옮깁니다. 이러면서 동생은 어머니하고 순천으로 옮겨 헌책방을 열었고, 세 차례 터를 옮긴 끝에 순천 저전동에 자리를 잡아요. 2012년 9월 1일에는 경남 진주 평안동에 있던 헌책방 〈즐겨찾기〉(055-748-4785)가 같은 진주에서 봉곡동 14-2번지로 옮기며 책방 이름을 〈형설서점〉으로 새로 붙입니다. 순천과 진주 헌책방 사장님은 서로 동무 사이라는데, 처음부터 같은 책방 이름을 쓸까 하다가 다른 이름이 되었고, 이제 같은 이름이 되면서, 여수와 순천과 진주 세 곳에 이름이 같으며 다른 헌책방이 책손을 기다리는 모습이 됩니다.


  시골집에서 순천으로 나들이를 다니면서, 때때로 여수까지 조금 먼 마실을 다니면서, 또 가끔 진주로 더욱 먼 다리품을 팔면서, 나라안 골골샅샅 고운 빛살 나누어 주는 헌책방을 만납니다. 찻집에서 차를 마시거나 밥집에서 밥을 먹을 수 있겠지요. 책이 있는 집에서는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즈음 서서 읽거나 골마루를 거닐며 읽거나 걸상에 앉아 읽습니다.


  시인 김지하 님이 1984년에 내놓은 《밥》(분도출판사)이라는 이야기책을 가만히 들춥니다. 1991년 뒤로 헌책방에 많이 쏟아지고 만 《밥》인데, 2012년에 새삼스레 이 책을 끄집어서 들춥니다. “예수 안에는 말도 소도 풀도 흙도 새도 바람도 다 삽니다. 예수가 민중이라는 것은 예수가 중생이라는 뜻입니다(81쪽).” 같은 대목을 곰곰이 아로새깁니다. 예수 마음속뿐 아니라 내 마음속에도 말이랑 소랑 풀이랑 흙이랑 새랑 바람이랑, 또 햇살이랑 나무랑 꽃이랑, 또 냇물이랑 바다랑 하늘이랑, 모두 얼크러져 살아가요. 예수도 부처도 나도, 또 내 옆지기와 아이들도, 또 내 이웃과 동무도 모두 마음속에 하느님이 있어요. 흙을 만지는 이웃집 할매 굵직한 손가락도 마음속에 깃든 하느님에 따라 움직여요. 배를 타고 그물을 건지는 이웃마을 할배 굵직한 손마디도 마음속에 서린 하느님에 따라 움직여요.


  여수 〈형설서점〉에서 마련한 《가정주부》(한국여성개발원,1987)라는 책은 미국사람 ‘레이 안드레’ 님이 썼는데, 첫머리에 “사람들은 그들의 공로가 값으로 계산할 수 없을 만큼 귀중하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가정주부들은 자신의 일에 대한 급여도, 어떤 보장도 받지 못한다(15쪽).” 하고 밝혀요. “사람들은 주부들이 귀중한 사회 성원이라 말하지만, 실제로는 이 사회에서 가장 낮은 임금을 받는 집단이 누리는 혜택조차도 받지 못하고 있다.” 하고 덧붙여요.


  이제 어느 새책방에서도 구경할 수 없는 《가정주부》라는 책을 찬찬히 읽으며 생각합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는 디지털열람을 할 수 있다는 《가정주부》라는데, 헌책방 한 곳에서 아주 고맙게 만났습니다. 나는 이 책을 도서관 아닌 헌책방에서 만나는데, 《三山二水》 같은 책도 도서관 아닌 헌책방에서 만났어요. 올봄, 순천 〈형설서점〉으로 나들이를 하다가 《우리 고장 고흥》(고흥문화원,1983)이라는 작은 책을 만나기도 했어요. 이 책 또한 도서관에는 없어요. 국립중앙도서관뿐 아니라 고흥군립도서관에도 이 책은 없어요. 그러나 이런 책도 저런 책도 헌책방에서 새삼스레 만나요.

 

 

 

  헌책방에서 만나는 책


  인터넷이 발돋움한 오늘날 참 많은 일이 집이나 회사에서 이루어집니다. 컴퓨터를 켜서 인터넷을 열면, 몇 번 또각거린 다음 온갖 물건을 집이나 회사에서 손쉽게 받을 수 있어요. 다만, 나와 가게는 인터넷으로 만나지만, 이 사이에는 짐을 실어 나르는 택배 일꾼이 있어요. 우리들은 택배삯 얼마를 치르고 책이든 냉장고이든 가게를 안 찾아가고도 장만하거나 구경할 수 있어요.


  그런데, 온갖 책을 인터넷을 열어 구경하다가 살 수 있다지만, 인터넷으로는 만나지 못하거나 살피지 못하는 책이 많아요. 도서관에 가거나 새책방에 가더라도 만날 수 없는 책이 많아요. 《우리 고장 고흥》을 펼칩니다. 9쪽에 ‘우리 고장의 발전 연표’가 실립니다. 1980년대를 잣대로 예순 해 앞서라는 1910∼1919년에 처음으로 국민학교가 섰다고 합니다. 1920∼1929년에 한길이 처음 나고 자동차가 다녔다고 하며, 국민학교가 아홉 곳이 되었답니다. 1930년대에 국민학교가 열 곳이 되고 어업조합이랑 수리조합이랑 소방서랑 등기소가 생겼대요. 1940년대에 비로소 중학교가 생기고 1950년대에 농업고등학교가 생겼다는군요. 1960년대에는 보건소와 농협이 생기고 ‘시외버스 정류소’가 생겼다고 합니다. 1970년대에는 초·중·고등학교가 아흔아홉 곳이 되고, 1980년대에는 백열여섯 곳이 되었다고 해요.


  순천 성남국민학교 37회 졸업사진책(1986)도 헌책방에서 구경합니다. 모두 일곱 학급인 작은 학교로구나 싶은데, 한 학급 아이들을 조금 큰 사진 하나로 한꺼번에 찍습니다. 조금 돈이 있는 학교에서는 학생마다 증명사진 한 장씩 따로 찍어 담지만, 조금 돈이 없는 학교에서는 이렇게 조금 큰 사진으로 뭉뚱그려 졸업사진책을 엮곤 했어요. 학교옷 따로 없는 순천 성남국민학교 1986년 어린이는 저마다 다른 옷차림입니다. 어느 모로 보면 좀 후줄근하게 가난한 모습일는지 모르나, 겉모습 아닌 낯빛을 보고 눈빛을 보면, 또 입꼬리와 눈꼬리를 보면, 착하고 맑은 넋이네, 하고 느낄 만합니다. 몇 장 안 되는 얇은 졸업사진책 끝자락에 봄소풍 사진 있습니다. 1980년대 작은 국민학교는 마을 뒷동산으로 나들이를 갑니다. 아이들은 곁에 비탈밭 있는 뒷동산에서 들놀이를 즐깁니다. 아이들이 들놀이 즐기는 멧자락 밑으로 논배미 넓게 보입니다. 어느 아이는 시내에서 회사원이나 공무원, 또는 가게를 꾸리는 어버이와 살았을 테지만, 어느 아이는 순천에서도 농사를 짓는 어버이와 살았겠지요. 누군가 저승으로 가거나 나라밖으로 떠나면서 헌책방에 한 권 두 권 흘러드는 묵은 졸업사진책이에요. 집을 옮기면서, 낡은 짐을 버리면서, 이런저런 해묵은 이야기 서린 졸업사진책이나 사진첩이 헌책방으로 들어오곤 해요. 나는 이 졸업사진책 임자하고 아무런 끈이 없으나, 이 졸업사진책을 들추며 지난날 발자국을 읽습니다. 1980년대 졸업사진책으로 1980년대를 헤아리고, 1970년대 졸업사진책으로 1970년대를 헤아립니다. 1950년대나 1940년대 졸업사진책을 들추며 그무렵에는 학교와 마을과 어린이가 어떤 모습이었는가 하고 가만히 그립니다.


  헌책방에서는 삶과 마을과 세월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만납니다. 손에 쥐기로는 책 한 권이지만, 이 책 한 권은 돈 몇 푼으로 사고파는 물건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여러 사람이 살아온 땀방울이 스미는 책입니다. 숱한 사람이 부대낀 꿈이 서리는 책입니다. 온갖 사람이 어깨동무하던 사랑이 담기는 책입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삶을 읽고 사랑을 읽습니다. 내가 오늘 만난 이 묵은 책들은 기나긴 해를 이으며 빛을 선사하는 이야기꾸러미입니다. 헌책방에서 만나는 책은 저마다 다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다 다른 꿈을 품으며 저마다 다 다른 사랑을 일구는 이야기를 길어올리는 책이라고 느낍니다.

 

 

 

 

  구경과 마실


  수십만 사람 또는 수백만 사람이 엑스포를 구경했다고 합니다. 구경거리가 많아 수많은 사람이 찾아갈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헌책방은 작은 책쉼터이기에 수십만이나 수백만에 이르는 사람이 찾아갈 수 없습니다. 한꺼번에 백 사람이 찾아들어도 책을 살피기 어렵습니다. 스무 사람쯤 헌책방 골마루에 서면 북적북적합니다.


  널리 이름난 설악산이나 한라산에, 또 사람 많이 살아가는 서울땅 북한산이나 관악산에, 참으로 많디많은 사람이 발을 디딜 틈조차 없이 우글거리곤 합니다. 워낙 많은 사람이 드나들기에 흙길은 반들반들하며, 시멘트나 쇠붙이나 돌이나 나무로 거님길을 따로 마련하기도 합니다. 이름난 멧자락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길을 밟’지만 ‘흙을 밟’지는 못합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흙을 밟아 내리누르면 풀도 나무도 자라지 못하거든요.


  두루 이름나지 않은 시골마을 작은 멧자락에는 멧마실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거나 아예 없습니다. 시골집 우리 식구는 마을 뒷산을 오릅니다. 흙을 밟기도 하고 나무를 쓰다듬기도 합니다. 풀내음과 나무내음을 맡습니다. 자동차 아닌 멧새 노래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가게에서 울리는 노랫소리 아닌 바람이 일으키는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든 도시에서는 구경거리를 찾아나설밖에 없는지 모릅니다. 엑스포를 꾀하고 박람회를 마련하며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경기를 치러야 할는지 모릅니다. 야구장이나 농구장에 수천 수만 사람이 몰려서 목청 터지게 외치며 경기를 지켜보아야 비로소 문화가 되거나 여가가 될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아주 마땅할는지 모르지만, 축구장이나 야구장처럼 2만이나 3만이나 5만을 받아들일 만한 도서관은 아직 한국에 없습니다. 1만이나 5천을 맞아들일 만한 도서관이나 새책방 또한 아직 한국에 없습니다. 나는 인천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중·고등학생 때 구립도서관에 새벽 일찍 찾아가도 자리가 없어 밖에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어요. 수험공부를 할 만한 자리조차 찾기 힘들었어요. 두 다리를 뻗고 쉴 만한 물가나 냇가 또한 찾기 어려웠어요. 한 시간 즈음 드러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며 쉴 풀숲이나마 찾지 못했어요.


  십만 이십만 삼십만 사람이 살아간다는 도시에 헌책방 한 곳이라 하면, 이곳을 누리기는 퍽 벅차다 할 만합니다. 좋구나 싶은 책을 언제라도 빌려서 읽을 도서관이 마을 곳곳에 크고작게 있어야 하면서, 좋구나 싶은 책을 언제라도 장만해서 예쁘게 건사하도록 돕는 새책방과 헌책방도 마을 곳곳에 크고작게 있을 때에 삶과 문화와 예술과 사랑이 아름다이 무르익을 수 있으리라 느껴요.


  책은 구경거리 아닌 읽을거리입니다. 책방은 볼거리 아닌 생각거리입니다. 표를 끊어 경기장이나 전시장을 찾아가며 무언가를 느끼는 일도 좋을 테고, 만 원이나 이만 원어치 책을 장만할 뜻으로 헌책방 마실을 즐기며 긴 나날과 너른 땅을 가로지르는 책을 느끼는 일도 좋을 테지요.

 

 

  책숲


  사람은 숲이었어요. 나무가 우거진 곳을 일컬어 숲이라 하는데, 나무뿐 아니라 나무하고 어깨동무하고 예쁘게 살던 사람 또한, 오순도순 모여 알콩달콩 이야기를 빚을 때에 사람은 숲이었어요.


  숲이던 사람이기에 손에 연필을 쥐어 글을 써서 책을 엮으면, 이 책은 이야기 감도는 숲, 곧 이야기숲이 돼요. 이야기숲이 되는 책이 하나둘 모여 천 만으로 얼크러지면, 이 책들 모인 곳은 책숲이 돼요.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밀려난 도시에서는 푸른 숨을 마시지 못하곤 해요. 이야기 감도는 책이 깃들 곳이 자꾸 사라지는 도시에서는 푸른 넋을 살찌우지 못하곤 해요. 저마다 스스로 어떤 마음숲이었고 어떤 사랑책이었는가를 돌이킬 수 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 누구나 스스로 숲이었고 이야기꾸러미였던 삶을 돌아보면서, 오늘 누릴 가장 좋은 생각을 어떻게 빛낼 때에 아름다울까 하고 깨달으면 좋겠어요.


  작은 도시에 작은 책숲인 헌책방이 있습니다. 커다란 도시에 작은 책숲인 헌책방이 있습니다. 도서관 곁에 새책방이 있고, 새책방 둘레에 헌책방이 있습니다. (4345.8.1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