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일 때 가장 빛난다 - 인생에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한홍구 외 지음 / 철수와영희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대학생은 졸업장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53] 한홍구·홍세화·김규항·강신주·김현정·간호섭·오강남, 《내가 나일 때 가장 빛난다》

 


- 책이름 : 내가 나일 때 가장 빛난다
- 글 : 한홍구·홍세화·김규항·강신주·김현정·간호섭·오강남
- 펴낸곳 : 철수와영희 (2012.9.18.)
- 책값 : 13000원

 


  중앙대학교 신문사에서 중앙대학교 학생들한테 도움이 되리라 여겨 ‘한국 사회 여러 갈래 지성인’ 일곱 사람을 만나 주고받은 이야기를 그러모은 책 《내가 나일 때 가장 빛난다》(철수와영희,2012)를 읽습니다. 일곱 ‘어른’은 젊거나 어린 대학생을 만나 수수하면서 꾸밈없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젊거나 어린 대학생들은 일곱 어른 이야기를 다른 자리에서는 들은 적 없을 수 있습니다. 대학생이 되기까지, 또 대학생이 되고 나서, 또 앞으로 대학교를 마친 뒤까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줄 다른 어른이 없을는지 몰라요.


  두 아이 아버지로 살아가는 ‘어른’으로서, 《내가 나일 때 가장 빛난다》를 어렵지 않게 읽습니다. 내가 저 일곱 어른 자리에서 대학생을 마주하며 이야기꽃을 피운다고 할 때에는 어떤 말을 들려줄 만한가 하고 헤아리며 차근차근 읽습니다. 옳은 정치를 말하면 좋을까요? 바른 사회의식이나 민주의식을 말하면 좋을까요? 착한 몸가짐이나 곧은 넋을 말하면 좋을까요? 아름다운 꿈이나 어여쁜 사랑을 말하면 좋을까요? 돈을 잘 버는 길이라든지, 아이를 낳고 어떻게 살림을 꾸려야 즐거울까 하는 길을 말하면 좋을까요?


.. 옛날이야기를 들어 보면 우리네와 같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역사라 하면 장군, 예술가 등 특별한 사람들만 떠올리게 되잖아요 … 대학생 모두가 다 같이 개미처럼 스펙 경쟁에 뛰어들어서 어떻게 됐습니까? 스펙을 쌓기 위해 돈과 마음과 열정을 다 쓰고 거기에 더해 어마어마한 스트레스까지 받지요 … 사람들이 괴로운 이유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도 재벌 2세처럼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세상 살면서 정말 필요한 건 돈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것,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는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해요 ..  (한홍구/14, 21. 25쪽)


  내가 대학생을 마주하며 이러구러 이야기꽃을 나눌 수 있다면, 나는 무엇보다 이 한 가지를 먼저 대학생한테 묻고 싶습니다. “대학생인 당신은 졸업장을 내려놓을 수 있나요?”


  대학교 여덟 학기를 잘 마치고 졸업장을 따든, 대학교를 몇 학기 다니다가 그만두든, 스스로 ‘대학교 졸업장’을 잊거나 내려놓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지 궁금해요. 참으로 마땅한 일이지만, 졸업장이 있어야 나무 한 그루를 심을 수 있지 않아요. 초등학교 졸업장이든 대학교 졸업장이든, 이런저런 졸업장이 있기에 능금이나 복숭아를 더 맛나게 먹을 수 있지 않을 뿐 아니라, 논밭에서 두레를 하며 품을 팔 적에 더 김을 잘 맬 수 있지 않아요.


  회사이든 공장이든 공공기관이든, 대학교 졸업장 가진 이들이 달삯을 더 받습니다.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졸업장이 있기에 더 돈을 번다고 해요. 다만, 편의점이나 식당에서 알바를 할 적에는 졸업장이 있건 말건 돈을 더 받지 않아요. 신문배달을 하건 택배 일꾼을 하건, 이때에도 졸업장을 내밀며 일삯을 더 받을 수 있지 않아요.


  가만히 보면, 굳이 졸업장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졸업장은 아랑곳하지 않는 일터’가 무척 많아요. 우유배달이나 신문배달뿐 아니라, 시골마을 흙일꾼이나 고기잡이도 졸업장을 따지지 않아요. 과수원에서 능금을 따거나 김매기를 할 때이든, 이삿짐 나르는 일을 할 때이든, 졸업장이 있기에 ‘가산점’ 받을 일이 없어요. 어느 모로 보면, 대학생더러 굳이 ‘졸업장 내려놓기’를 안 바라도 될 만합니다.


  그러나, 나는 대학생들 누구나 졸업장을 내려놓으면 얼마나 좋으랴 싶어요. 이를테면, 《내가 나일 때 가장 빛난다》에 나오는 어른 일곱 사람을 만날 적에도 그런데요, 한홍구 님이나 홍세화 님이 어느 대학교를 나오건 안 나오건 대수롭지 않아요. 이들 어른 가운데 누군가가 어느 대학교에서 대학생을 가르치건 말건 대수롭지 않아요. 더 이름나다는 대학교를 나왔기에 더 어른스러울까요. 더 이름나다는 대학교에서 대학생을 가르치기에 더 이야기를 들을 만할까요.


.. 조선 시대에는 태어나자마자 신분이 규정되었다면, 지금은 스무 살, 대학에 입학할 시점에 신분이 규정되는 사회인 거죠 … 교육은 결국 경제·문화·교육 자본을 가진 이들이 그것을 자식에게 대물림하는 것을 합리화시킨다는 것입니다 ..  (홍세화/40, 51쪽)


  오늘날 이 나라 대학생들은 스스로 말할 자리가 거의 없다고 느낍니다. 이 나라 대학생들은 둘레 어른한테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을 자리 또한 거의 없다고 느낍니다. 대학생이 되기까지, 집에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찬찬히 당신들 삶을 들려주는 일이 몹시 드뭅니다. 이웃 아주머니나 아저씨한테서 당신 삶을 듣는 일이 매우 드뭅니다. 학교에 간들, 어린이집부터 초등학교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는 사이, 어느 교사가 당신 삶을 학생들 앞에서 조곤조곤 아름다이 들려줄까요. 시험성적과 교과서 이야기를 빼고, 삶과 꿈과 사랑을 어여삐 들려주는 ‘어른’은 ‘대학생이 된 아이들’ 둘레에 얼마나 있을까요.


  대학생들이 스스로 졸업장을 내려놓고 둘레 어른들하고 이야기꽃을 피우면 참 좋으리라 생각해요. 길에서 붕어빵 하나 사먹으면서 붕어빵 아줌마나 아저씨하고도 이야기꽃을 피우면 좋으리라 생각해요. 기차를 타거나 버스를 타면서, 기차 일꾼이나 버스 일꾼하고 방긋 웃으며 이야기꽃을 피우면 좋으리라 생각해요. 날마다 먹는 밥을 누가 일구는가를 생각하면서, 봄에든 여름에든 가을에든, 시골일을 거들러 며칠이나마 ‘두레(농촌봉사활동이 아닌 두레)’를 가면 좋으리라 생각해요.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하고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삶과 흙과 해와 물과 풀과 바람을 느낀다면 몹시 좋으리라 생각해요.


  그러고는, 대학생 스스로 이녁 마음하고 이야기를 나누어야지요. 마음속에 깃든 ‘내 빛줄기’하고 이야기를 나누어야지요.


.. 자, 국가가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군대와 정권이 국가의 실체인가요? 아니면 큰 욕심 없이 정직하게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국가의 실체인가요 … 지금 이 사회는 자기 본분에 충실했다고 해서 인간적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닙니다 … (독도가) 한국 땅이냐 일본 땅이냐를 구분하기 이전에 한국이, 일본이 누구의 땅이냐를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  (김규항/65, 74, 78쪽)


  더 많이 아는 일은 대수롭지 않습니다. 더 적게 아는 일은 대단하지 않습니다. 참답게 알면서 참답게 살아가면 즐겁습니다. 착하게 알면서 착하게 살아가면 즐겁습니다. 아름답게 알면서 아름답게 살아가면 즐겁습니다.


  이 땅 대학생뿐 아니라 ‘대학생 아닌 젊은이’ 누구나, 참답고 착하며 아름답게 생각하고 살아갈 때에 가장 빛나면서 스스로 즐거우리라 느껴요.


.. 우리 사회는 가부장적인 데다가 이상하기까지 한 사회죠 ..  (강신주/99쪽)


  일삯을 더 주는 데에서 일하기에 즐거우리라 느끼지 않아요. 공무원 뽑는 시험이나 사법고시 같은 시험에 붙는대서 즐거우리라 느끼지 않아요. 스스로 ‘젊은 대학생 삶’을 밝히는 길을 걸어갈 때에 즐거우리라 느껴요. 돈을 삼백오십만 원 받기에 더 즐겁지 않아요. 돈을 삼백사십만 원 받아도 되고, 삼백이십만 원 받아도 되며, 삼백만 원 받아도 돼요. 이백구십만 원도 되며, 이백팔십만 원도, 이백만 원도 되지요. 그러니까, 일삯으로 다달이 구십만 원을 받든 팔십팔만 원을 받든 아랑곳할 까닭이 없어요. 스스로 얼마나 즐거운 꿈을 꾸면서 아름답게 사랑하는 삶인가를 생각할 수 있으면 돼요. 꿈과 사랑이 없이 돈을 벌거나, 이름값을 얻거나, 권력을 누리는 일이 나한테 참으로 즐거울 만할까요.


  저 금강산이나 백두산이나 한라산이나 지리산을 단숨에 올라야 즐거울까요. 헬리콥터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고 가로질러야 즐거울까요. 한겨울에 천천히 오르다가 그예 오백 미터쯤 오르고 더는 못 올라도 즐겁습니다. 스스로 바라보는 삶이 있고, 스스로 누리는 삶이 있을 때에 즐겁습니다.


  밥을 먹으면서 꼭 열 숟가락을 채워야 즐겁지 않아요. 한 숟가락을 덜어도 즐거워요. 두세 숟가락을 던 다음, 내 숟가질을 ‘조금 적게 푸면’서 숫자로 열 차례를 맞추어도 즐거워요. 때로는 한 끼니쯤 슬그머니 거를 수 있어요.


  두 아이와 살아가며 이런 일은 흔히 겪거든요. 아이들 데리고 바깥으로 나들이를 나왔는데 물이나 먹을거리가 얼마 없으면, 이 몫을 아이들한테 줍니다. 어버이가 이 몫을 누리지 않아요. 어버이는 아이들이 얼마 없는 이 몫을 누리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배가 불러요.


.. 이것을 ‘인내천(人乃天)’이라 하죠.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말입니다. 내 속에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한울님, 즉 신이고 그것이 나의 본질이니, 나와 신이 같다는 거죠. 이렇게 떳떳한 생각이 어디 있겠어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 당당해지고, 꿀리는 것 하나 없이 의연하게 살 수 있습니다. 나만 그런 것이냐? 아닙니다. 내 이웃도 그러합니다. 남의 마음속에도 신이 있는 거예요. 그러니 남을 하느님 모시듯 모십니다 ..  (오강남/213쪽)


  《내가 나일 때 가장 빛난다》를 빚은 중앙대학교 학생들이 앞으로 다음 책 하나 새롭게 빚을 수 있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집에서 아기를 낳고 예쁘게 사랑하는 여느 어머니, 집에서 아이들 천기저귀를 빨래하며 집일을 돌보는 여느 아버지, 시골에서 나락 심고 마늘 심으며 고구마 심는 여느 할머니, 바닷가에서 조개를 캐고 낙지를 잡으며 김을 훑는 여느 할아버지, 작은 가게이든 커다란 마트이든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여느 아주머니, 시외버스를 모는 여느 아저씨, 대학교에서 청소를 하는 여느 사람들, 인문사회과학책방이나 헌책방에서 일하는 사람들, …… 대학생 둘레에서 ‘졸업장’하고는 아무런 끈도 줄도 닿지 않으면서 삶을 누리는 사람들을 마주하면서 조곤조곤 주고받는 이야기로 예쁜 책 하나 빚을 수 있으면 어떨까 싶어요. 부디, 맑게 흐르며 맑게 빛나는 냇물이 되어 들판과 숲과 바다를 맑게 적시는 젊은이로 살아갈 수 있기를 빌어요. (4345.9.1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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