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을 책읽기

 


  한가위가 다가오는 한가을이 되는구나 싶다. 꼿꼿이 서며 드센 비바람을 이긴 들판 나락은 차츰 고개를 숙인다. 어떤 비와 바람이 찾아들더라도 꼿꼿이 서던 볏포기였는데, 따사롭게 내리쬐는 햇살에 알맹이가 튼튼히 여물며 비로소 고부장하게 고개를 숙인다.


  마을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가을콩을 거두어 말리고 터느라 부산하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허리는 한가을 볏포기처럼 고부장하다. 일흔을 넘길 무렵까지는 반듯하고, 여든을 넘길 무렵부터는 한결같이 고부장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경운기도 타고 오토바이도 탄다.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걷는다. 잔치에 가거나 읍내에 갈 적에는 고운 옷에 고운 신을 신지만, 들일을 할 적에는 모두들 맨발이거나 낡은 고무신을 신는다.


  일하는 사람한테는 맵시나는 매끄러운 옷이 거추장할 테지. 그렇지만, 도시에서 일하는 사람은 하나같이 맵시나는 매끄러운 옷을 걸친다. 뾰족구두를 신고 가죽구두를 신는다. 도시에서 일하는 사람은 구두가 반짝반짝 빛나도록 하며, 옷에 흙이고 먼지이고 한 점조차 안 묻히려고 한다.


  우리들은 저마다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까. 손에 흙을 안 묻히고도 밥을 먹을 수 있을까. 손에 물을 안 묻히고도 살림을 일굴 수 있을까. 몸에 햇살을 받아들이지 않고도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마음에 가을바람 들바람 멧바람 바닷바람 잔뜩 맞아들이지 않고도 꿈을 꿀 수 있을까. (4345.9.1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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