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버릇과 삶버릇
[말사랑·글꽃·삶빛 27] ‘물방울’과 ‘땡땡이’
시는 문학입니다. 수필도 소설도 문학입니다. 시나 수필이나 소설, 또 희곡 모두 ‘말’로 빚는 문학이요, ‘말’로 이루는 예술이며, ‘말’로 드러내는 삶이에요. 그래서 어느 갈래 어느 문학이라 하더라도 말을 어느 만큼 슬기롭게 다루느냐에 따라서 빛깔이 달라져요. 말을 어느 만큼 아름답게 보살피느냐에 따라 무늬가 달라져요.
시와 수필을 쓰는 신달자 님이 쓴 시집 《열애》(민음사,2007)를 읽다가, 58쪽에서 “아파트 일 층인 내 방 창에는 / 녹음 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 사월부터 연둣빛 땡땡이 무늬가 어른거리더니 / 서너 달 지나며 창은 짙푸린 비단으로 출렁거렸다.” 같은 글월을 봅니다. 시와 수필을 쓰는 신달자 님은 ‘땡땡이 무늬’라는 말투를 시에 고스란히 담습니다. 신달자 님은 1943년에 경상남도 거창에서 태어나셨는데, 한창 일제강점기로 한겨레 누구나 한국말 아닌 일본말을 쓰고 일본 문화를 받아들일 뿐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 국민’이 되는 학교교육을 받던 무렵이에요. 신달자 님을 둘러싼 어른들은 모두 일본말을 쓰셨겠지요. 해방이 되고 난 뒤에도 사람들은 일본 말투와 말버릇을 털지 못했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런 말투와 말버릇은 곳곳에 그대로 남았어요. ‘땡땡(点点, てんてん)’은 숱한 일본 말투와 말버릇 가운데 하나입니다.
한국말로 하자면 ‘방울방울’이에요. 물방울이든 이슬방울이든 ‘방울’입니다. 방울을 무늬처럼 수없이 그리기에 ‘방울방울’ 모양이고, 일본사람은 이 모습을 바라보며 ‘점과 점이 수없이 모였다’ 해서 ‘点点’이라는 한자로 적으면서 ‘てんてん’이라고 읽어요. 이 소리값이 ‘텐텐’, ‘땡땡’이 되고 한국사람은 뒤에 ‘-이’를 붙여 ‘땡땡이’라고 써요.
1944년에 태어난 내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로 마흔 해를 일하시고는 교장으로 정년퇴임을 하셨어요. 내 아버지 사는 충청북도 음성으로 아이들과 마실을 가서 내 아버지가 모는 자동차를 얻어 탈 때면, 어디에 차를 대거나 좁은 길을 빠져나올 때, 아버지도 어머니도 모두 ‘오라이’라고 말씀합니다. 내 아버지는 자동차에 기름을 넣을 때에도 ‘만땅’이나 ‘이빠이’라고 말합니다. 내 아버지조차 이런 일본 말투와 말버릇을 쓰니 잘못이라거나 슬프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시를 쓰는 신달자 님이든 내 아버지이든, 오늘날 할머니와 할아버지 또래를 이루는 분들은 어둡고 고단한 나날을 보내면서 ‘얄궂은 말버릇’이 너무 짙게 몸과 입과 머리와 혀와 마음에 아로새겨지고 말았다는 이야기예요. 당신 스스로 ‘아이들 앞에서 이러한 일본 말투를 함부로 쓰면 안 되는 줄 알’아도 입으로는 어느새 술술 이러한 말투가 흘러나와요.
내 아버지도 ‘오라이’나 ‘이빠이’ 같은 일본 말투뿐 아니라 ‘땡땡이’라는 일본 말투를 쓰시겠지요. 그렇지만 나와 내 옆지기는 이러한 일본 말투를 안 씁니다. 나는 한국 말투를 쓰고 싶어요. 나는 가장 사랑스러운 한국말을 아끼고 싶어요. 우리 집 두 아이한테는 가장 사랑스러운 한국말을 쓰는 어버이로서, 아이들이 언제나 가장 사랑스러운 한국말을 예쁘게 들으면서 삶을 곱게 빛낼 수 있기를 빌어요. 좋은 말버릇으로 좋은 삶버릇을 익힌다면 참으로 아름답겠지요. 맑은 말버릇으로 맑은 삶버릇을 들인다면 더없이 어여쁘겠지요.
사월부터 연둣빛으로 빛나며 어른거리는 무늬라면 ‘방울방울’이요 ‘동글동글’입니다. ‘물방울’이며 ‘둥글둥글’이에요. 때로는 ‘탱글탱글’이나 ‘통통’ 같은 느낌말로 나타내 볼 만하겠지요. ‘탱글탱글 고욤알 같은 무늬’라든지 ‘통통 튀는 물방울 같은 무늬’처럼 말할 수 있어요. (4345.9.12.물.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