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468) 급하다急 1 : 급하게 지나쳐 갈

 

책을 읽으면서 감동을 받은 어느 한 곳에 언제까지고 머물러 있을 수 있고, 반대로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은 급하게 지나쳐 갈 수가 있다
《가와이 에이지로/이은미 옮김-대학인, 그들은 대학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유원,2003) 14쪽

 

  ‘감동(感動)’은 “크게 느끼어 마음이 움직임”을 뜻하는 한자말이에요. 이 낱말은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책을 읽으면서 감동(感動)을 받은”은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움직인”처럼 손질할 수 있어요. “머물러 있을 수 있고”는 “머무를 수 있고”로 다듬고, ‘반대(反對)로’는 ‘거꾸로’나 ‘이와 달리’로 다듬으면 한결 나아요.


  외마디 한자말 ‘급하다(急-)’는 모두 일곱 가지로 쓰인다고 합니다. “(1) 사정이나 형편이 조금도 지체할 겨를이 없이 빨리 처리하여야 할 상태에 있다 (2) 시간의 여유가 없어 일을 서두르거나 다그쳐 매우 빠르다 (3) 마음이 참고 기다릴 수 없을 만큼 조바심을 내는 상태에 있다 (4) 병이 위독하다 (5) 성격이 팔팔하여 참을성이 없다 (6) 기울기나 경사가 가파르다 (7) 물결 따위의 흐름이나 진행 속도가 매우 빠르다”, 이렇게 일곱 가지예요. 이 낱말을 넣은 국어사전 보기글이 퍽 많은데, “급한 일”이나 “돈이 급하다”는 “바쁜 일”이나 “돈이 빨리 있어야 한다”를 가리킵니다. “급하게 먹다”나 “급하게 서두르다”는 “바삐 먹다”나 “허둥지둥 서두르다”를 가리켜요. “헐레벌떡 먹다”나 “허겁지겁 서두르다”를 가리키기도 해요. “마음만 급하지”는 “마음만 바쁘지”를 가리키고, “병세가 급하다”는 “병세가 깊다”나 “병세가 안 좋다”를 가리켜요. “급하게 경사지다”는 “매우 비탈지다”를 가리키며, “경사가 급한 곳에서는”은 “비탈이 가파른 곳에서는”을 가리킵니다. “개울은 물살이 급해서”는 “개울은 물살이 빨라서”를 가리켜요.


  여러모로 쓸 만하다 하기에 일곱 가지로 쓰는 외마디 한자말일 텐데, 곰곰이 살피면 이곳저곳 한결 알맞게 추스를 수 있어요. 사람들이 예부터 슬기롭게 가누던 말마디를 생각할 수 있어요.

 

 급하게 지나쳐 갈 수 있다

→ 얼렁뚱땅 지나쳐 갈 수 있다
→ 설렁설렁 지나쳐 갈 수 있다
→ 후다닥 지나쳐 갈 수 있다
→ 빨리 지나쳐 갈 수 있다
 …

 

  보기글에 나오는 ‘급하다’를 생각해 봅니다.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 나오면 ‘급하게 지나쳐 갈’ 수 있다고 하는데, 이 말은 ‘건너뛴다’는 소리입니다. ‘그냥 넘긴다’는 소리이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책을 읽다가 훌쩍 건너뛸” 수 있다는 얘기이고, “책을 읽다가 재빨리 넘길” 수 있다는 뜻이에요.


  뜻을 잘 살피면서 손쉽게 쓰면 됩니다. 단출하게 쓰면 그만입니다. 서두르지 말고 차분히 생각을 기울이면 말문이 환하게 열립니다. (4339.4.4.불./4345.9.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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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움직인 어느 한 곳에 언제까지고 머무를 수 있고, 이와 달리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은 후다닥 지나쳐 갈 수가 있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298) 급하다急 4 : 급한 경사

 

산의 측면으로 급한 경사를 이루며 깊숙이 파고든 협곡들과 검게 돌출한 바위들이 보인다
《셀마 라게를뢰프/배인섭 옮김-닐스의 신기한 여행 (1)》(오즈북스,2006) 125쪽

 

  “산(山)의 측면(側面)으로”는 “산 옆으로”나 “산 옆쪽으로”로 다듬습니다. 또는 ‘산기슭으로’나 ‘멧기슭으로’로 다듬을 수 있어요. 또는 “산줄기를 따라”나 “멧줄기 옆으로 따라”로 다듬어도 돼요. ‘협곡(峽谷)’은 ‘좁은 골짜기’로 손보고, ‘돌출(突出)한’은 ‘튀어나온’이나 ‘솟은’이나 ‘불거진’이나 ‘쑥 나온’으로 손봅니다.

 

 급한 경사를 이루며
→ 가파르게 기울어지며
→ 가파른 비탈을 이루며
→ 가파르고
→ 가파르면서
 …

 

  “비스듬히 기울어짐”을 한자말 ‘경사(傾斜)’로 적는 분들이 제법 많은데,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한자말 ‘경사’는 한국말 ‘기울기’로 바로잡으라고 풀이합니다. 그러나, 이 한자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는 사람이 드문 탓인지, ‘경사’라는 한자말은 널리 쓰이고, ‘기울기’라는 한국말을 쓰는 사람은 좀처럼 늘어나지 않습니다.


  산이나 언덕이 기울어진 모습을 가리키는 낱말로 ‘비탈’이 있고, 고장말로 ‘비알’이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멧자락을 이야기하니 ‘비탈’이나 ‘비알’이라는 낱말을 넣을 수 있습니다. 먼저, 말뜻 그대로 “산 옆쪽으로 가파른 기울기를 이루며”처럼 손보고, 다음으로 “산 옆쪽으로 가파른 비탈을 이루며”처럼 손보며, 다시금 “산 옆으로 가파르며 깊숙이 파고든 좁은 골짜기들과”처럼 짤막하게 간추립니다. (4345.9.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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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줄기 옆으로 가파르며 깊숙이 파고든 좁은 골짜기들과 검게 튀어나온 바위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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