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숲의 아카리 10
이소야 유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책을 사랑하나요
 [만화책 즐겨읽기 178] 이소야 유키, 《서점 숲의 아카리 (10)》

 


  사람들은 머나먼 옛날부터 책을 썼습니다. 스스로 일구는 아름다운 삶을 책으로 썼고,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아름다운 사랑을 책으로 썼으며, 숲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터를 책으로 썼어요.


  머나먼 옛날을 살던 사람들은 붓이나 연필이나 사진기를 손에 쥐지 않았습니다. 따로 종이를 가지지 않았습니다.


  들풀 한 포기가 붓이 되었습니다. 나뭇잎 한 떨기가 연필이 되었습니다. 드넓은 하늘이 종이가 되었습니다. 시원스레 흐르는 골짝물도 종이가 되었고, 흙과 나무로 지은 집이 사진기가 되었어요.


  머나먼 옛날 사람들은 언제나 넓고 깊은 이야기를 담은 책을 썼어요. 오천 쪽이나 일만 쪽이 되는 종이책으로도 도무지 담을 수 없을 만한 이야기를 책으로 썼어요. 백과사전으로도 담을 수 없을 만한 이야기를 책으로 빚었어요. 더구나, 누구나 책을 쓰던 머나먼 옛날이요, 누구나 책을 읽던 머나먼 옛날입니다.


- “명쾌한 답을 내리지 못하는 건, 그 정도 감정밖에 안 된다는 뜻이 아닌가요?” (10쪽)
- ‘나는 왜 테라야마 씨를 좋아하게 됐던 걸까? 얼굴. 안경. 말투, 행동거지. 분위기. 우유부단함. 초연함. 촌스럽지만 다정함. 나이? 전부 내 취향과 달라. 아, 로맨스 소설? 아니야. 응. 아마도 다일 거야.’ (15∼16쪽)


  들풀 한 포기로 글을 쓰고 책을 엮었기에, 들풀 한 포기를 바라보면서 날을 알고 철을 알 수 있습니다. 흙을 알고 하늘과 햇살을 알 수 있어요. 식물도감이나 꽃도감이나 그림책 아닌 들풀에 이야기를 아로새기기에, 이 들풀을 읽으면서 ‘다 같은 갈래이면서 다 다른 들풀’을 쉬 헤아립니다. 잎과 꽃과 씨와 줄기와 뿌리를 찬찬히 헤아려요. 마음으로 아로새기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나무 한 그루가 어떻게 자라나고 어떻게 씨를 맺으며 어떻게 퍼지는가를 환하게 깨우칩니다. 나무에 깃드는 새를 살피고, 나무에 깃드는 새는 먹이를 어떻게 찾으며, 나무에 깃드는 새는 언제 어떻게 알을 낳아 새끼를 돌보고, 언제쯤 나무 둥지에서 날갯짓을 익히는가를 찬찬히 읽어요. 나뭇가지를 타고 오르는 길을 스스로 깨닫습니다. 나뭇가지가 버티는 힘을 몸으로 느낍니다. 나뭇가지가 드리우는 그늘을 살피고, 나뭇잎 사이로 반짝반짝 스치고 보듬는 햇살을 돌아봐요.


  더없이 마땅한 노릇인지, 아니면 하나도 안 마땅하지만 오늘날에는 모두 잊고 만 노릇인지 알 수는 없는데, 식물도감이든 나무도감이든 나무 한 그루를 덩그러니 그릴 줄은 알아도, 나무에 깃드는 새나 벌레를 함께 그리지 못해요. 새도감에 새를 그려 넣기는 하더라도, 새 한살이라든지 새 노랫소리라든지 새가 낳아 돌보는 알이 무럭무럭 자라서 깨어나 날갯짓을 하기까지 이루어지는 아름다움을 적어 넣지는 못해요.


  곧, 오늘날 책이나 사전이나 도감이나 신문이나 잡지에는 ‘글’은 많으나, 모두 지식과 정보입니다. 삶을 밝히는 이야기는 거의 드러나지 않으며, 사랑을 들려주는 이야기는 거의 나타나지 않아요.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건드리지 못하는 글만 넘쳐요.


- “할인율.” “아무래도 힘드신가 봐요?” “예, 일본 서점에는 할인제도가 없어서, 아직까지는 상당한 거부감이 드네요. 책의 가치를 우리 스스로 떨어뜨리는 것 같아서요.” (20쪽)
- ‘본가에서 출퇴근하게 되는 바람에 통근시간이 늘어나서, 최근 1년간 3일에 1권을 목표로 독서했다. 그러자 서점에서도 시야가 약간 넓어진 것 같아.’ (42쪽)

 


  오늘날 사람들은 스스로 책을 쓰지 못합니다. 게다가, 오늘날 사람들은 스스로 책을 넓고 깊게 읽으려 하지 않아요. 아름다운 삶을 책으로 쓰는 일이 퍽 드뭅니다. 아름다운 사랑을 책으로 빚어 아이들한테 물려주려고 하는 움직임은 아주 더딥니다. 아름다운 터를 노래하는 책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습니다.


  아주 조그마한 틀에서 책을 읽는 오늘날 사람들입니다. 스스로 좁은 울타리에 갇힌 채 책조차 제대로 들추지 못하는 오늘날 사람들입니다.


  책을 쓰지 못하는 삶이란, 하루하루 일구면서 누릴 이야기를 쓰지 못하는 삶입니다. 책을 읽지 못하는 삶이란, 하루하루 일구면서 누린 이야기가 어떠한가를 느끼지 못하는 삶입니다.


  시험공부는 하겠지요. 자격증은 따겠지요. 회사에 붙기도 하고, 공무원이 되기도 하겠지요. 그런데? 그런데 삶은 어디에 있나요? 사랑은 어디에 있나요? 꿈과 믿음과 이야기는 어디에 있나요?


- “아카리 씨 본인의 최우선 순위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91쪽)
- ‘나는 지난 2년간 수많은 작은 뿌리를 내렸습니다. 내가 뽑히면 작은 뿌리들은 심각한 상처를 입겠지요. 하지만 가는 편이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묻혀 있던 나의 모든 야심을 끄집어내서, 먼지를 떨어내야 해요.’ (128쪽)


  이소야 유키 님 만화책 《서점 숲의 아카리》(학산문화사,2012) 열째 권을 읽습니다. 《서점 숲의 아카리》 열째 권에서는 ‘책값 에누리’가 없는 일본 책문화를 살며시 짚으면서 ‘책값 에누리’가 지나칠 뿐 아니라, 책을 ‘사서 읽고 버리기(소비하기)’만 있는 한국 책문화를 가만히 건드립니다.


  책을 값싸게 사면 무엇이 좋을까요? 책값이 싸면 무엇이 기쁠까요?


  사람들은 참말 사야 할 책을 사는 삶일는지요? 사람들은 참으로 읽어야 할 책을 기쁘게 읽는 삶일는지요?


- ‘난 알바 경력이 길지만, 다른 직원들만큼 책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줄곧 서비스 카운터에 있었어. 처음으로 다른 서점의 페어를 찬찬히 둘러봤어. 그러고 보니 코노 씨가 지금까지 만든 페어도 봐두면 좋았겠다. 매주 했을 텐데. 오랜 시간 머물러도 질리지 않는 페어라니, 굉장해. 아, 나도 만들고 싶다!!’ (180∼181쪽)


  만화책 《서점 숲의 아카리》에 나오는 사람들은 천천히 헤맵니다. 스스로 ‘누리고 싶은 삶’인지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인지를 생각하며 천천히 헤맵니다. 그리고, 스스로 ‘길을 찾으려’고 애씁니다. 사랑할 만한 짝꿍을 찾는 길에 서든, 살아갈 만한 보금자리를 찾는 길에 서든, 꿈꾸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길에 서든, 만화책에 나오는 이들은 스스로 마음을 기울이며 하루를 빛냅니다.


  언제나 스스로 묻고 스스로 말합니다. 자, 스스로 물을 노릇이에요. 책을 사랑하나요? 삶을 사랑하나요? 나 스스로를 사랑하나요? 내 살붙이와 이웃을 사랑하나요? 지구별을 사랑하나요? 풀과 나무를 사랑하나요? (4345.9.7.쇠.ㅎㄲㅅㄱ)

 


― 서점 숲의 아카리 10 (이소야 유키 글·그림,학산문화사 펴냄,2012.5.25./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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