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기차표

 


  한가위 기차표를 집에서 인터넷을 켜고 끊으려 하는데 몇 분 지나지 않아 ‘조치원에서 서울 가는’ 표는 다 팔리고 없다. 참 빠르구나 싶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로구나 싶다. 나는 고흥에서 길을 나서 순천부터 기차를 타고 조치원을 거쳐 음성에 닿은 다음, 음성에서 며칠 묵고 일산 옆지기 어버이한테 가자면 조치원을 거쳐 용산으로 가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으레 전라도 어느 시골에 있는 고향으로 간 다음 서울로 돌아갈 테지. 그러니까 한가위 기차표란,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울 아닌 곳으로 찾아가서 서울로 돌아오기 좋도록 마련하는 기차표라고 느낀다. 시골에서 시골 사이를 오가는 사람이 끊는 기차표는 아닐 테지. 모르는 노릇이지만, 순천에서 조치원으로 가는 길이랑 조치원에서 순천으로 가는 길은 하나도 안 붐비리라 생각한다. 오늘날 사람들 움직이는 길하고는 엇갈리는 길이 되리라 생각한다. 즐겁게 살자. 즐겁게 마실하자.


  9월 2일 음성 할아버지 생일에 맞추어 여러 날 바깥마실을 하고는 일산 옆지기 어버이 댁에까지 들러 용산부터 순천까지 기차를 타고 돌아오는데, 기찻간이 아주 널널해서 우리 식구는 여덟 자리를 누렸다. 두 아이는 저마다 두 자리에 드러누워 여러 시간 뻗어서 자고, 나랑 옆지기도 두 자리씩 맡아서 느긋하게 쉰다. 아이들 옷가지는 짐칸이랑 걸상받이에 걸쳐서 말린다. 여러 시간 뻗어 자는 아이들을 여러 시간 바라본 역무원은 “자녀 분들이 무척 고단한가 봐요.” 하고 빙긋 웃으며 이야기한다. 아이들은 먹고 마신 한 시간 남짓 팔팔하게 뛰다가, 세 시간 오십 분 동안 고요히 잤다. 아이들이 잠드니 아주 조용하며 호젓한 기찻길이 된다. (4345.9.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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