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에 함께 쓰는 시

 


  책을 부친다. 이 책을 즐겁게 읽어 주리라 생각하며 우체국으로 찾아가 책을 부친다. 책을 부치면서 우체국에서 ‘돈 넣을 때 쓰는 종이’ 한 장을 얻어 뒤쪽에 편지를 쓴다. 빈 종이 한 바닥에 편지를 다 쓰려고 하다가, 반만 편지를 쓰고 반은 시를 하나 적는다. 시를 적기 앞서 가만히 헤아린다. 내 마음속으로 떠오르는 이야기를 곰곰이 짚는다. 나는 내 삶을 편지로 적고 시로 적는다. 나는 내 삶을 담은 책을 함께 부친다. 내 책과 편지와 시를 읽을 분은 글조각 아닌 내 삶자락을 읽는다.


  돌이켜보면, 밥 한 그릇을 먹거나 능금 한 알을 먹을 때에, 나는 밥이나 능금만 먹지 않는다. 밥이 된 벼가 어느 논에서 어떤 손길을 타며 어떤 햇살을 누렸는가를 가만히 헤아린다. 나는 논을 먹고, 햇살을 먹으며, 흙일꾼 손길을 먹는다. 나는 밭을 먹으며, 능금을 맺은 나무뿌리를 먹고, 능금을 살찌운 빗방울을 먹는다. (4345.8.2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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