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68) -발發 1 : 가우하티 발 열차
우리는 가우하티 발 열차에 승차해서 러크나우까지 갈 예정이었다
《쿤가 삼텐 데와창/홍성녕 옮김-티벳전사》(그물코,2004) 278쪽
‘승차(乘車)해서’는 ‘타서’나 ‘올라서’로 다듬고, “갈 예정(豫定)이었다”는 “가려고 했다”나 “갈 생각이었다”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발(發)’은 “그곳에서 떠남 또는 그 시간에 떠남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라고 합니다.
어느 유행노래는 끝자락을 “대전발 영 시 오십 분” 하면서 맺습니다. 노래이름은 안 떠오르지만, 마지막 대목은 떠오릅니다. 모르는 노릇인데, 이 노랫말이 아니더라도 기차역이나 버스역에서는 ‘-발’을 붙여, 어느 곳에서 떠나는 기차나 버스라고 밝히리라 생각해요.
가우하티 발 열차
→ 가우하티에서 오는 열차
→ 가우하티에서 떠난 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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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랫말에서는 글잣수를 따질 테니 “대전에서 떠나는 영 시 오십 분”처럼 적을 수 없습니다. 다만, 노랫말이기에 “대전‘서’ 영 시 오십 분”처럼 적을 수 있어요. 대전‘서’ 온다는 뜻으로 ‘-서’만 붙일 수 있어요.
국어사전을 살피면, “3월 12일발 내외 통신”이나 “열 시발 열차”나 “서울발 연합통신” 같은 보기글이 있습니다. 이 글월들은 “3월 12일치 내외 통신”이나 “3월 12일에 나온 내외 통신”으로 다듬고, “열 시에 떠나는 열차”나 “열 시에 가는 열차”로 다듬으며, “서울서 온 연합통신”이나 “서울에서 띄운 연합통신”이나 “서울에서 들어온 연합통신”으로 다듬으면 돼요.
알맞게 쓸 말투를 생각하고, 슬기롭게 넣을 말마디를 헤아립니다. 기차나 버스가 처음 이 나라에 들어올 적에는 사람들이 으레 한자로 적었어요. 이를테면, “서울 가는 기차”라 하지 않고 “京城行 汽車”라 했겠지요. 가만히 보면, 이런 옛 한문 말투를 한글로만 고쳐서 “서울행 기차”로 쓰는 셈이라 할 텐데, 껍데기만 한글이 아니라, 알맹이까지 살가우며 푸근하고 아름다운 한국말이 되도록 마음을 기울이기를 빌어요. “서울 가는 기차(← 서울행)”요, “서울서 오는 기차(← 서울발)”예요. (4338.1.14.쇠./4345.8.1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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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우하티에서 오는 열차에 타서 러크나우까지 갈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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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297) -발發 2 : 베이징발
베이징발 모스크바행 국제열차가 / 얼렌호트역에 도착한 건 23시 45분
《박영희-즐거운 세탁》(애지,2007) 80쪽
“도착(到着)한 건”은 “닿은 때는”이나 “들어간 때는”이나 “다다른 때는”으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한국말 ‘닿다’나 ‘다다르다’나 ‘이르다’를 잘 살펴서 쓰면 좋겠어요.
베이징발 모스크바행 국제열차
→ 베이징에서 모스크바 가는 국제열차
→ 베이징을 떠나 모스크바로 가는 국제열차
→ 베이징부터 모스크바까지 가는 국제열차
→ 베이징과 모스크바 잇는 국제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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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태어나는 아이들은 어떤 말로 생각을 나타낼까 궁금합니다. 요사이 태어나는 아이들이라 하더라도 ‘예전에 태어나 살아온 어른’이 낳고, 이 어른들이 쓰는 말을 늘 들으면서 말을 익힐 테니까, 요사이 태어나는 아이들도 ‘옛날 옛적 말’을 그대로 이어받아 쓴다고 할까요. 이 보기글에 나오듯 ‘-發 -行’ 같은 말투를 예전 어른들뿐 아니라 오늘날 아이들도 널리 쓴다고 할 만한지, 요즈음 아이들은 이러한 말투는 안 쓴다고 할 만한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말투라 하더라도 쓸 만할 때에는 쓰고, 안 쓸 만할 때에는 안 씁니다. 스스로 좋다고 여기는 말투라면 쓰고, 스스로 안 좋다고 여기는 말투라면 안 써요. 남들이 안 좋은 말투라고 밝히거나 따져도, 스스로 못 느끼거나 안 받아들이면 어떠한 말투라도 쓰기 마련입니다. 바르거나 알맞다 싶은 말투라 하더라도 스스로 즐겁게 맞아들이지 않으면 안 쓰기 마련이에요.
생각을 담는 말이고, 삶이 드러나는 말입니다. 생각을 비추는 말이며, 삶을 나누는 말입니다. 내가 어떤 어른한테서 어떤 말을 이어받는지 돌아보고, 내가 우리 아이들한테 어떤 말을 물려주는지 짚을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4345.8.1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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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에서 모스크바 가는 국제열차가 / 얼렌호트역에 닿은 때는 23시 4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