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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없는 방 - 삼성반도체 공장의 비밀 ㅣ 평화 발자국 10
김성희 글.그림 / 보리 / 2012년 4월
평점 :


먼지 없는 나라
[만화책 즐겨읽기 173] 김성희, 《먼지 없는 방》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던 사람 가운데 ‘백혈병’에 걸려 죽은 이들 이야기를 다룬 만화책 《먼지 없는 방》(보리,2012)을 읽습니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이 ‘백혈병’에 걸렸다고 말하는데, 만화를 읽는 동안 자꾸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느끼기로는 백혈병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일본 미나마타에서 몸이 아파 죽은 사람들은 ‘미나마타병’에 걸렸다고 이름을 붙여요. 다른 어느 이름으로도 이들 죽음을 가리키지 못해요. 그러니까,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죽은 사람들이 아프다 할 때에는 ‘백혈병’이 아니라 ‘삼성병’이라 하거나 ‘삼성반도체병’이라 이름을 붙여야 올바르리라 느껴요.
- “너희가 들어온 회사는 삼성이다. 그동안 산 것은 다 잊어라. 삼성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다시 살아가도록!” (14쪽)
- “안녕하세요, 부장님.” “흠! 단정히 다녀야지. 라인에서 그래 봐. 파티클 생기고 말이야.” “네. 지가 학생주임인 줄 알아? 재수 없어.” (47쪽)
김성희 님이 그린 만화책 《먼지 없는 방》에 나오는 이들은 슬프게 죽습니다. 아프게 살다가 슬프게 죽고 맙니다. 삼성 회사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혼자 앓다 죽은’ 일이라 여기고, 곁에서 아픔과 슬픔을 지켜본 이들은 ‘산업재해’나 ‘직업병’이라 일컫습니다.
나는 이 대목에서도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래도 산업재해나 직업병이라고만 가리킬 수 없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어느 모로 보더라도 산업재해가 아닌 ‘환경재해’요, 직업병이 아닌 ‘환경병’이로구나 싶어요.
- ‘똑같은 사람인데, 저 사람도 말을 할까. 나도 그 옷 입고 들어가고 그 모습을 하고 있는데, 나는 내 모습을 못 보니까 그 사람들은 로봇 같고. 이런 게 라인이구나. 이런 게 클린룸이구나.’ (27쪽)
- “우리도 생산 시간 단축하느라 만날 수동으로 해서 피곤해.” (51쪽)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차츰차츰 앓다가 죽습니다. 그러면, 이 공장에서 바깥으로 흘려보냈을 쓰레기물(폐수)은 어떻게 되는가 궁금합니다. 공장 바깥으로 흘러나온 쓰레기물은 어디로 흘러들까요. 땅속으로 스며드나요? 정화시설로 가나요? 사람을 죽이는 화학물질이 깃든 쓰레기물이 여느 생활하수하고 섞이면 어떻게 될까요? 이런 물은 사람이 마실 수 있을까요? 사람 아닌 땅은 어떻게 되나요? 풀과 꽃과 나무는 어떠할까요?
반도체를 만드는 공장에서 버리는 쓰레기물만 냇물과 흙과 푸나무를 더럽히리라고는 느끼지 않아요. 식품을 만드는 공장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겠지요. 식품공장이라 하지만, 식품공장에서 만드는 ‘가공식품’에는 갖가지 화학약품과 화학조미료와 화학첨가물이 들어가요. 반도체 만드는 공장 아닌 ‘화학공장’이라 할 만하다는 이야기가 만화책에 나오듯, 식품 만드는 공장이라기보다는 ‘화학공장’이라 할 만하겠지요. 자동차를 만드는 공장도, 플라스틱 바가지를 만드는 공장도, 치약이나 치솔을 만드는 공장도 이와 비슷하리라 느껴요. 컴퓨터 만드는 공장이나 책을 만드는 공장은 어떠할까요.
여느 사람들은 책을 찍는 인쇄소나 제본소를 잘 모릅니다. 그러나, 인쇄소나 제본소 또한 화학약품을 씁니다. 그림이나 사진에 빛깔을 입히면서, 책 겉장에 코팅을 하면서, 또 이런저런 손질을 하고 본드나 풀을 바르면서 화학약품을 써요. 책이 되는 종이를 만드는 공장은 어떠할까요. 종이공장에서는 화학약품이나 화학물질을 하나도 안 쓰면서 종이를 다룰까요.
- ‘첫 월급 같은 것보다 도시에 나왔다는 게 설레는 거죠. 그것도 삼성에 취업했다는 게 설렜던 거죠. 독립해서 일은 하고 있지만, 시골 엄마 품에서 떨어져 나온 그때 그대로인 거예요. 나이를 더 먹어도 독립하던 그때로 멈춰 있는 거 같은.’ (53쪽)


우리 집 두 아이는 종이기저귀를 쓰지 않습니다. 우리 집 두 아이는 아버지가 천기저귀를 대고 손빨래를 하며 키웁니다. 큰아이는 세 살 막바지에 밤오줌을 가려 기저귀를 떼었고, 작은아이는 아직 열다섯 달째 살아가기에 기저귀를 대는데, 낮에는 기저귀를 풀며 지냅니다. 어디를 다니든 천기저귀 가득 든 가방을 짊어집니다. 내 사진기 가방보다 아이들 기저귀랑 옷가지 담은 가방이 더 큽니다. 하루 내내 빨래를 하느라 부산히 움직입니다.
천기저귀를 쓰는 까닭은 천기저귀가 아이한테 좋기 때문입니다. 천기저귀를 쓰는 어버이도 좋은 마음이 되기 때문입니다. 종이기저귀는 화학물질 덩어리예요. 종이기저귀는 몽땅 쓰레기가 돼요. 종이기저귀를 만드는 흐름을 헤아려 보셔요. 얼마나 많은 공장과 짐차와 가게가 움직여야 하나요. 원료를 처음 캐고, 원료를 공장으로 옮기고, 공장에서 가공하고, 가공해서 만든 제품을 비닐에 싸서 종이상자에 담아 물류회사 도매상으로 보내고, 도매상에서 소매상으로 가고, 소매상이라는 여느 가게에서는 형광등을 밝힌 채 손님을 기다리고 …… 이 사이사이 석유 먹는 짐차가 물건을 실어날라요. 얼마나 많은 화학물질이 이 땅에 넘치고, 얼마나 많은 배기가스가 이 땅에 쏟아질까요. 한 가지 흐름만 헤아리더라도 아무것이나 쓰지 못해요. 기저귀뿐 아니라 먹을거리에서도 이와 같아요. 옷 한 벌도, 과자 한 봉지도 허투루 따질 수 없어요. 자가용이 구르는 찻길도 대수롭지 않게 지나칠 수 없어요.
나라에서 밀어붙인 ‘4대강 사업’을 가리켜 환경재앙이라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아요. 참말 환경재앙이에요. 그런데, 나라에서만 환경재앙을 일으키지는 않아요. 바보스러운 마음이라는 몇몇 정치꾼뿐 아니라, 여느 마을에서 여느 살림을 꾸린다는 여느 사람인 우리 스스로 바보스러운 굴레에 갇혀요.
삼성이든 엘지이든 에스케이이든, 이런저런 커다란 회사에 월급쟁이로 들어가는 일을 ‘축복’이나 ‘명예’나 ‘성공’처럼 여기잖아요. 끔찍하게 앓다가 목숨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산업재해’라거나 ‘직업병’이라거나 깨닫잖아요. 왜 처음부터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왜 처음부터 ‘삼성이라는 회사에는 안 들어가겠습니다!’ 하고 외치지 못할까요. 참다운 평화를 바라면서 ‘군대에 안 가겠습니다!’ 하고 외치는 사람이 더러 있고, 참다운 배움을 꿈꾸면서 ‘대학교에 안 가겠습니다!’ 하고 밝히는 사람이 가끔 있어요. 그러나, 참말 여느 마을 여느 사람은 그냥 군대에 가고 그냥 대학교에 가요. 그냥 대기업에 입사지원서를 넣어 면접을 보고, 그냥 대기업 회사원이 되거나 공무원이 돼요.
그냥 도시에서 월급쟁이가 되는 우리들이에요. 도시 월급쟁이가 좋은 삶이라고 그냥저냥 여기고 마는 우리들이에요.
참다이 살아갈 길을 생각하지 않아요. 착하게 사랑할 길을 살피지 않아요. 아름답게 꿈꾸는 길을 찾지 않아요.


- “마스크 쓰면 뭐해. 다 젖는데.” “그래도 써라. 화학약품인데 좋을 게 뭐야.” (71쪽)
- “밀폐된 공간에서 여러 가지 화학약품 쓰는데, 눈에는 안 보여. 어찌 보면 공사장이 덜 위험해요. 말하면서, 내가 아는 거예요.” (111쪽)
- “한번은 가스 교체를 할 때, 겨우 한 방울 떨어졌는데 냄새가 너무 역하고 순식간에 심하게 퍼져서 모두 라인 밖으로 대피했대요. 그렇다고 방독면을 쓴 적은 없었대요.” (117쪽)
백혈병이든 환경병이든 사람들이 아픕니다. 사람들이 슬픕니다. 사람을 둘러싼 숲이 아픕니다. 날마다 숲이 무너지거나 망가지면서 슬프게 웁니다. 사람들 가운데에는 숲울음을 듣는 이가 더러 있으나, 웬만한 도시사람은 숲울음을 듣지 않습니다. 듣지 못하기도 하지만 아예 생각조차 안 합니다. 그렇다고 시골사람이 숲울음을 잘 새겨듣는지는 모르겠어요.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이들 또한 들판과 숲에 농약이나 풀약을 잔뜩 뿌리면서 ‘잡풀 죽이기’를 하거든요. 들판과 숲에 뿌린 농약이나 풀약이 고스란히 곡식과 열매와 푸성귀로 스밀 뿐 아니라, 우리가 마시는 물에 스미고, 우리가 숨쉬는 바람에까지 깃드는 줄 헤아리지 못해요.
그렇지만, 한국은 먼지 없는 나라로 나아갑니다. 도시마다 청소부가 있습니다. 도시 언저리마다 쓰레기 묻는 땅이 있고, 도시 둘레마다 쓰레기 태우는 데가 있습니다.
묻히거나 불타는 쓰레기는 처음부터 쓰레기가 아니었습니다. 모두 공산품이었습니다. 공산품은 석유를 쓰는 기계로 만들고, 공산품은 돈으로 사고팝니다. 곧, 쓰레기로 버려지는 모든 공산품은 돈이요 자원이며 화학물질입니다.
오늘날에는 음식물쓰레기를 말하기도 하지만, 밥을 먹고 남은 찌꺼기는 쓰레기가 아닙니다. 이 밥찌꺼기는 잘 삭혀 흙으로 돌아가는 거름입니다. 거름을 거름으로 삼지 못하고, 똥오줌을 똥오줌답게 거름으로 빚지 못하기 때문에, 오늘날 이 나라에는 ‘먼지는 사라지는 듯 보이’지만, 정작 쓰레기가 더미더미 이룹니다.
먼지 없는 나라 대한민국입니다. 먼지가 안 보이도록 없애는 나라 대한민국입니다. 흙먼지도 풀먼지도 사라지는 대한민국입니다. 흙먼지 사라진 곳에 시멘트 건물이 들어서고, 풀먼지 없어진 곳에 아스팔트 찻길이 깔립니다. 대한민국은 삼백예순닷새 내내 어디라도 ‘공사판’인 곳이지만, 그야말로 먼지나 티끌 하나 보이지 않는, 말끔한 나라입니다. 먼지 없이, 곧 B나 C나 D 같은 학점은 없이 오직 A학점만 있는 나라입니다. 먼지 없이, 그러니까 곱상한 얼굴이나 몸매 없이는 살아가지 못하고, 자가용이나 자격증 없이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며, 도시 아닌 시골에서 흙이랑 벗삼으며 살아가는 길을 가로막는 나라예요. 기계를 부리는 사람과 톱니바퀴가 되는 사람이 있는 나라예요. 청소부를 부리는 사람과 청소부가 되는 사람이 있는 나라예요. 스스로 꿈꾸기를 잊고, 스스로 사랑하기를 멀리하며, 스스로 생각을 내려놓고 마는, 먼지 없이 희멀건 나라입니다. (4345.8.17.쇠.ㅎㄲㅅㄱ)
― 먼지 없는 방 (김성희 글·그림,보리 펴냄,2012.4.21./12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