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김새 1 신생시선 30
김지하 지음 / 신생(전망)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나무와 사람
[시를 노래하는 시 27] 김지하, 《시김새 1》

 


- 책이름 : 시김새 1
- 글 : 김지하
- 펴낸곳 : 신생 (2012.2.15.)
- 책값 : 8000원

 


  이른아침에 온 고을에 낀 안개가 차츰 걷힙니다. 들판과 멧자락에 걸쳐 하얗게 서린 안개는 새 하루 열리며 비추는 햇살을 따라 천천히 사라집니다.


  안개가 걷히면서 매미 노랫소리가 깊어집니다. 매미는 마을에서 노래하지 않습니다. 매미는 이제 시골마을에서 노래하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어느 시골마을이든 농약과 풀약을 잔뜩 치기 때문입니다. 매미가 땅속에서 여러 해 고이 살아내어 바깥으로 나와 나무에 기대어 먹이를 찾고 사랑을 찾기란 벅찹니다. 흙도 나무도 풀도 몽땅 ‘죽음을 부르는 물’에 찌듭니다.


  우리 시골집만큼은 이 마을에서 농약은커녕 모기약조차 뿌리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 집 안쪽 마당과 밭뙈기에서 자라나는 나무에서는 매미들이 깨어나 나무에 오를 수 있고, 조그마한 밭뙈기 언저리에서 먹이를 찾거나 쉬면서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시골집처럼 농약이 뿌려지지 않는 호젓한 멧자락에서도 매미들이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시골 군에서는 헬리콥터를 써서 항공방제를 하곤 하지만, 때때로 풀약 손길이 안 미치는 얕은 멧자락이 있습니다. 시골사람 사는 집하고 가까운 얕은 멧자락까지는 풀약을 치지 않아요. 시골 어르신 또한 나이가 들고 힘들기에 멧자락까지 풀약을 뿌려대지 않습니다.


.. 내가 누구인지 몰랐더라 / 내가 누구에게서 왔는지 아득히 몰랐었더라 / 이제야 알았는가 / 아아아 ..  (귀래-흥업-무실동)


  면소재지 가게에서 장만한 복숭아를 베어 먹습니다. 아이도 먹고 어른도 먹습니다. 앞으로 우리 집 밭뙈기 한켠에 복숭아나무 자랄 수 있으면 좋겠다고 꿈꿉니다. 어른들은 기다리기 힘들는지 몰라도, 아이들은 머잖아 복숭아나무 우람하게 자란 모습을 맞이하겠지요.


  복숭아나무는 씨앗으로 심을 수 있습니다. 복숭아나무는 어린나무를 장만해서 예쁘게 심을 수 있습니다. 내 보금자리 둘레에서 작은 나무들 예쁘게 자라나는 모습 흐뭇하게 지켜볼 수 있습니다. 나무한테서 열매를 얻어 먹어도 좋고, 따로 열매를 얻어 먹지 않더라도 꽃을 보고 잎을 보며 즐겁습니다. 햇살을 긋는 그늘을 얻어도 좋습니다. 바람결에 살랑이는 잎사귀가 바스락 사그락 노래하는 소리를 들어도 좋습니다.


  나무는 곁에서 자라기만 해도 좋습니다. 나무는 둘레에서 크기만 해도 좋습니다. 나무 한 그루가 있어 작은 씨앗 해마다 내면서 천천히 어린나무가 자랍니다. 어린나무 천천히 자라며 이윽고 숲이 이루어집니다. 처음에는 풀섶과 같겠지요. 풀섶이 우거지면서 바야흐로 숲이 되겠지요.


.. 여성철학자 / 숙淑 / 내가 참으로 깊이 모시는 역사의 한 여성 // 기억하는가? / 요즈음 저 수많은 / 페미니스트들이여 / 기억이나 하고 있는가? / 그 무렵의 / 그녀가 / 오늘엔 그 누구인지를? ..  (임윤지당任允摯堂)


  나무 한 그루 있어 숲이 태어납니다.


  사람 하나 있어 사랑이 태어납니다.


  나무는 숲을 이루는 꿈을 꿉니다.


  사람은 사랑을 이루는 꿈을 꿉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도시라는 곳이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아요. 도시라 해서 꼭 숨이 턱턱 막히는 데라고는 여기지 않아요. 그러나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스스로 도시를 좋은 곳으로 가꿀 뜻이 없거나, 도시 곳곳에 나무 한 그루 자랄 틈을 내놓을 넋이 없다면 슬픕니다. 시골사람이 어쩌다 도시로 마실을 할 때에도 힘겹지만, 도시사람 스스로 언제나 도시에서 살아가며 도시에 맑은 사랑 감돌도록 힘쓰지 않는다면 도시사람 스스로 슬픈 노릇이에요. 사람은 사랑 어린 밥을 먹으며 살아가는 사람이지, 사람은 영양분에 따른 밥을 먹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에요. 사람은 살림을 사랑스레 일굴 만한 돈을 벌며 어깨동무하는 사람이지, 사람은 은행계좌에 차곡차곡 모아 둘 돈을 쟁이려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에요.


.. 지금도 간다 / 내 마음은 지금도 느을 느을 가고 또 간다 ..  (꾀꼬리 봉우리)


  고속도로가 뚫려 도시와 도시 사이를 빠르게 잇습니다. 도시와 도시 사이에는 시골이 있기 마련이지만, 고속도로는 도시와 도시를 이으려 할 뿐, 사이에 있는 시골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고속도로는 참 무시무시합니다. 고속도로가 깔리는 길은 으레 들판입니다. 고속도로는 으레 멧자락에 구멍을 뚫거나 한쪽을 몽땅 깎아내어 곧게 닦습니다. 고속도로 깔린 옆에서는 벼도 밀도 보리도 수수도 감자도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에다가 매캐한 자동차 배기가스를 먹어야 합니다. 도시사람은 도시와 도시를 고속도로로 빠르게 잇는데, 이렇게 이으면서 정작 ‘도시사람 먹는 밥’이 ‘고속도로에서 싱싱 달리는 자동차가 더럽힌 곡식과 열매’인 줄 깨닫지 못해요.


  사랑을 먹으며 자란 나무는 사랑을 못 먹으며 자란 나무하고 사뭇 다릅니다. 사랑을 먹으며 자란 사람은 사랑을 못 먹으며 자란 사람하고 사뭇 다릅니다.


  영양분만 잘 먹고 자란 나무는 사랑을 잘 먹고 자란 나무처럼 싱그럽거나 튼튼하지 못합니다. 영양분만 잘 먹고 자란 사람은 사랑을 잘 먹고 자란 사람처럼 상큼하거나 씩씩하지 못합니다.


  안개 걷히는 푸른 들판을 아이들과 함께 바라봅니다. 고운 햇살이 드리우면서 한여름 막바지 매미들 우렁차게 노래하는 소리를 작은 집에서 들으며 생각합니다. 나는 사랑을 먹고 싶어요. 나는 사랑을 베풀고 싶어요. 나는 사랑을 얻고 싶어요. 나는 사랑을 주고 싶어요. 나한테 가장 빛나는 사랑을 나누고, 나한테 가장 고마운 사랑을 누려요.


.. 가장 큰 / 그늘은 그늘로부터 오는 것 / 제 아내와 / 아기들의 / 피로 ..  (영원산성領願山城)


  가끔 읍내로 마실을 갈 적에 읍내 한켠 팔백예순 살 넘은 느티나무한테 찾아갑니다. 읍내에서 누군가를 만날 적에 팔백예순 살 넘은 느티나무 그늘에서 쉬며 기다리곤 합니다. 아이들은 느티나무 둘레에서 쉬도 누고 놀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느티나무를 타고 오르기도 하고, 느티나무 잎사귀를 간질이기도 합니다.


  우람한 느티나무 둘레에는 어린 느티나무가 자랍니다. 어른 손가락 길이만 한 느티나무가 있고, 어른 팔뚝만 한 느티나무가 있습니다. 처음 뿌리내리고 나서 한 해를 보낸 갓난쟁이 느티나무는 고작 내 새끼손가락 길이만 한데, 이만 한 길이인 어린 느티나무라 하더라도 ‘나무가 맞아’요. 나무답습니다. 세 살이나 다섯 살 먹은 어린 느티나무는 이제 내 팔뚝만 하다 싶은데, 이 작고 가녀린 줄기 또한 ‘나무가 맞아’요.


  어린 느티나무 가느다란 줄기를 만지면 아주 단단합니다. 너무 마땅한 얘기이지만, 나무가 맞으니 나무줄기다운 어린 줄기입니다. 잎사귀를 보아도, 팔백예순 살 느티나무 잎사귀랑 다섯 살 느티나무 잎사귀랑 모양이 같아요.


.. 오너라 / 오너라 // 쓸쓸할 땐 어김없이 찾아오리라 // 못난이 영일아 / 칠칠이 / 울냄이 쪼다 영일아 // 그래 텅 빈 유리같은 이 애갱애갱 울보 애갱치야 ..  (내 안에 있는 커다란 유리琉璃)


  아이들이 오줌을 눕니다. 아이들이 똥을 눕니다. 아이들이 밥을 먹습니다. 아이들이 노래를 합니다. 아이들이 걷습니다. 아이들이 옷을 입습니다. 아이들이 물놀이를 합니다. 어른과 같습니다. 어른하고 서로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도 어른도 고운 목숨입니다. 아이도 어른도 예쁜 사람입니다. 아이도 어른도 씩씩하게 한삶을 일구는 벗입니다. 아이도 어른도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웃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푸른 들판을 바라보며 즐겁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시원한 골짝물이나 냇물에 손발을 담그며 싱긋 웃습니다.


  이 땅에는 나무 한 그루가 천천히 숲을 이루기에 아름다운 꿈이 자랍니다. 이 누리에는 사람 하나 천천히 사랑을 이루기에 어여쁜 꿈이 피어납니다.


  꽃은 꽃답게 밝은 이야기 나누어 줍니다. 풀은 풀답게 푸른 이야기 나누어 줍니다. 사람은 사람답게 착한 이야기 나누어 줍니다. 나무는 나무답게 너른 이야기 나누어 줍니다.


.. 붉은 꽃그림으로 / 모란꽃 잎사귀로 / 하늘 오르던 그 시절 / 꽃 한 송이 / 영일英一 ..  (황혼에 돌아오다)


  “시가 시원치 않다는 평이 있다. 시원할 까닭이 없다. 그 사이 내 삶을 알기나 하는가(머리말)?” 하는 이야기를 읊으며 첫머리를 여는 시집 《시김새 1》(신생,2012)를 읽습니다. 시집 《시김새》는 1권과 2권이 나란히 나옵니다. 강원도 원주에서 조용히 살아간다는 김지하 님이 내놓은 시집입니다.


  곰곰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김지하 님 스스로 삶이 시원하지 않다고 여기니까 시가 시원하지 않을밖에 없습니다. 참말 그래요. 김지하 님 삶은 썩 시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왜 김지하 님 삶은 시원하지 않을까요. 누군가 김지하 님을 해코지하기 때문일까요. 김지하 님이 당신 삶을 스스로 해코지하기 때문일까요.


  목마른 이는 냇물도 샘물도 수돗물도 시원하게 마십니다. 마른 목을 축이며 고맙습니다. 목이 마를 때에 마시던 물맛을 언제까지나 잊지 못합니다. 그러나, 목이 마른 몸을 달래는 마음은 물맛을 헤아립니다. 목이 마를 때에 마시는 냇물과 샘물과 수돗물이 어찌 다른가를 가만히 헤아립니다. 다만, 이 물이고 저 물이고 목숨을 살리는 목숨물입니다. 목이 마를 때에는 냇물이라서 더 대단하지 않고 수돗물이라서 덜 대단하지 않아요.


  배고픈 이는 쌀밥도 보리밥도 수수밥도 맛나게 먹습니다. 고픈 배를 채우며 고맙습니다. 배가 고플 때에 먹던 밥맛을 오래오래 잊지 못합니다. 그러나, 고픈 배를 채우는 마음은 밥맛을 헤아립니다. 배가 고플 때에 먹는 쌀밥과 보리밥과 수수밥이 어찌 다른가를 찬찬히 헤아립니다. 다만, 이 밥이고 저 밥이고 목숨을 살리는 목숨밥입니다. 배가 고플 때에는 쌀밥이라서 더 대단하지 않고 수수밥이라서 덜 대단하지 않아요.


.. 아아 / 이젠 / 상식이 된다 / 할머니 손짜장도 이젠 그저 당연한 것 / 허허허허허 ..  (누가 누구더러)


  시를 쓰는 사람과 시를 읽는 사람을 떠올립니다. 시를 쓰는 사람은 얼마나 목이 마르기에 시를 쓸까요. 시를 읽는 사람은 얼마나 목이 마르기에 시를 읽을까요.


  타는 목마름을 채울 만한 시를 쓰는 사람들일까 생각합니다. 아픈 배고픔을 채울 만한 시를 읽는 사람들일까 생각합니다.


  시골마을 할아버지는 낫으로 풀을 베면서 시를 씁니다. 시골마을 할머니는 된장찌개를 끓이면서 시를 씁니다. 도시에서도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컴퓨터를 켜고 앉아도 시를 씁니다. 전기밥솥에 밥을 안쳐도 시를 씁니다.


  언제나 ‘마음’으로 시를 쓰지 ‘몸’으로 시를 쓰지는 않습니다. 늘 ‘마음’이 움직여 시를 쓰지 ‘몸’이 이끌려 시를 쓰지는 않습니다.


  어느 중국집 할머니는 손으로 가락을 뽑아 짜장면 한 그릇 내놓습니다. 어느 중국집 아저씨는 기계로 가락을 뽑아 짜장면 한 그릇 내놓습니다. 모두 같은 짜장면입니다. 즐겁게 받고 즐겁게 먹습니다. 즐겁게 내놓고 즐겁게 살림을 꾸립니다.


  살아가기에 즐겁게 웃습니다. 살아가는 하루를 즐겁게 웃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마음이 살고 몸이 삽니다. 어른이 살고 아이가 삽니다. 사랑이 살고 믿음이 삽니다.


  왼쪽에 선 사람도 밥을 먹고, 오른쪽에 선 사람도 밥을 먹습니다. 햇살은 왼쪽에만 비추지 않습니다. 바람은 오른쪽에만 불지 않습니다. 곰곰이 따지면 왼쪽도 오른쪽도 없습니다. 내가 한 바퀴를 돌면 왼쪽도 오른쪽도 사라집니다. 그저 나와 네가 있을 뿐이요, 나와 너는 똑같은 사람이면서 똑같은 목숨입니다.


  책을 읽는 사람이 더 똑똑해지지 않습니다. 책을 안 읽거나 못 읽는 사람이 덜 똑똑해지지 않습니다. 따사로이 바라볼 때에 따사로운 사랑이 태어납니다. 슬기롭게 생각할 때에 슬기로운 생각이 태어납니다. 그저 그뿐이기에 굴레나 멍에를 질 까닭이 없습니다. 스스로 굴레를 생각하기에 굴레가 태어납니다. 스스로 멍에를 지니까 멍에를 집니다.


.. 내가 그때 지독한 공산당원이었다고 / 지금은 반동분자라고 / 악쓰는 애들 / 가득한 이때 예쎄닌 // 내가 / 예쎄닌을 외우며 한없이 / 눈물 흘리던 시인이었음을 생각한다 ..  (단계동 생태탕)


  나는 ‘예쎄닌’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김지하 님은 예쎄닌을 읽으며 눈물 흘리던 시인이라고 합니다. 그래요. 그렇군요. 시인 김지하 님은 예쎄닌을 읽으며 눈물 흘리던 사람이었으니까, 이 삶길을 곱게 걸어갈 수 있으면 가장 예뻐요. 스스로 가장 예쁘게 살아갈 때에 가장 빛나요. 후박나무는 후박꽃을 피우고 후박열매를 맺어요. 후박나무가 동백꽃을 피우는 일은 없어요. 감나무는 감꽃을 피우고 감알을 맺어요. 감나무가 능금이나 포도를 맺는 일은 없어요.


  예쎄닌 시인은 예쎄닌 시를 씁니다. 감자꽃 시인은 감자꽃 시를 씁니다. 시골마을 할배는 시골마을 노래를 부릅니다. 서울 성북동 아줌마는 서울 성북동 춤을 춥니다. 삶은 사랑이고, 사랑은 삶입니다. 나무는 꿈이고, 꿈은 나무입니다. 사람은 빛이고, 빛은 사람입니다. 다섯 살 아이가 곁에서 자꾸자꾸 시김새를 합니다. 아이랑 같이 놀 때가 되었습니다. (4345.8.1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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