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성읍 마을 빛깔있는책들 - 민속 9
김영돈 글, 현을생 사진 / 대원사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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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목석원'이라는 곳이 아예 사라졌기에, 이 사진책은 어디에서도 구경할 수 없다. 그래서 <제주성읍마을> 책에 이 느낌글을 걸어 놓는다. <제주 성읍마을>은 오래도록 사랑받을 수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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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기에 마음에 담는다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35] 현을생, 《제주 여인들》(탐라목석원,1998)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나들이를 하는 데는 어디일까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이름을 올린 제주섬으로 가장 많이 나들이를 할까요. 모르기는 몰라도 ‘서울’로 가장 많이 나들이를 하지 않으랴 싶고, 이 다음으로는 ‘부산’으로 가장 많이 나들이를 하리라 느껴요. 관광지로는 제주를 가장 많이 찾을는지 몰라도, 시골을 떠나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많고, 도시에서도 더 큰 도시를 찾아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요. 그래서, 다른 어느 곳보다 서울과 제주에 나들이를 하는 사람이 가장 많으리라 느껴요.


  그러면, 서울로 나들이를 가는 사람들은 서울에서 어떤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만할까요. 부산으로 나들이를 가는 사람들은 부산에서 무엇을 보면서 무슨 이야기를 사진으로 실을 만할까요. 제주로 관광을 떠나는 사람들은 제주에서 어떻게 돌아다니면서 어떤 모습이 예쁘다 여겨 사진으로 옮길 만할까요.


  1955년에 서귀포시 신효동에서 태어난 현을생 님은 1974년에 제주도 지방공무원 9급 공채에 뽑혀 공무원이 됩니다. 현을생 님은 이때부터 공무원 일을 했고, 2012년에는 전국체전 기획단장 일을 합니다. 어느덧 마흔 해 가까이 공무원으로 일한 나날인데, 1978년에 제주카메라협회에 들어가기도 했다고 해요. 1990년에는 《제주성읍마을》(대원사)이라는 사진책을 김영돈 님 글과 함께 내놓고, 1998년에는 《제주 여인들》(탐라목석원)이라는 사진책을 홀로 내놓습니다. 2006년에는 《풍경소리에 바람이 머물다》(민속원)라는 이야기책을 내놓습니다. 전국체전 기획단장 같은 일을 하자면 말미를 내기 어려워 사진기를 손에 못 쥐는 나날이 아닐까 싶으나, 공무원으로 일을 하는 동안에 바지런히 사진을 찍었기에 《제주성읍마을》과 《제주 여인들》을 내놓을 수 있었겠지요. 《제주 여인들》 머리말을 보면, “제주 여인의 딸로 태어난 행운으로 이 어머니들의 마음을 읽어 보려는 노력을 시작한 지 15년이 되었다.”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참말 현을생 님은 제주에서 태어난 삶을 ‘행운’으로 여기기에, 사진기를 손에 쥐고 제주 곳곳을 다니며 만난 ‘제주 어머니’ 모습을 ‘즐거운 빛’으로 그러모읍니다. “고달퍼도 서글퍼하지 않고, 괴로워도 외로워하지 않는 여유와 일의 즐거움을 몸과 마음으로 터득한 우리 어머니들을 가슴으로 느낄 때마다 오히려 슬퍼졌다(머리말).” 하고 말하지만, 말없이 일손을 놀리거나 활짝 웃으며 느긋하게 쉬는 ‘제주 어머니’ 모습을 언제라도 가까이에서 마주할 수 있기에, 꿋꿋하고 씩씩하게 현을생 님 삶 한길을 걸을 수 있으리라 느껴요.

 

 


  사진책 《제주 여인들》을 바라보면서 생각합니다. 현을생 님은 당신 어머니와 이웃 어머니와 동무 어머니 모두를 따사로이 사랑하기에 이 사랑을 먼저 마음으로 담고, 다음에는 사진으로 담았겠지요. 사진기를 손에 쥐거나 공무원 이름표를 가슴에 붙이거나, 또는 여느 ‘제주 어머니 딸’ 모습이거나, 둘레 ‘제주 어머니’ 들은 현을생 님을 살가운 이녁으로 여겨 따사로이 아끼며 맞아들였겠지요.


  참 많은 사람들은 제주마실을 하면서 제주 이야기를 드러내려고 사진을 찍습니다. 아름답다 하는 자연유산을 사진으로 찍고, 한라산 숨은 모습이라든지, 오름 예쁜 모습이라든지, 억새 춤추는 모습이라든지, 마음껏 사진을 찍습니다. 제주마실을 하기에 물질하는 사람 모습도 사진으로 찍고 싶어 합니다. 바닷가에서 일하는 할머니 모습도 사진으로 찍고 싶어 합니다.


  스스로 찍고 싶으면 찍을 일입니다. 스스로 예쁘다 여기니 얼마든지 찍을 노릇입니다. 다만 한 가지 궁금해요. 참말 사랑하기에 마음으로 먼저 담으면서 사진으로도 옮기는가요. 참으로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따사로이 사랑하고 즐거이 사랑하기에 마음으로 흐뭇하게 담으면서 사진으로도 살포시 옮기는가요.

 


  서울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은 서울을 얼마나 사랑하면서 사진을 찍을는지 궁금합니다. 부산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은 부산을 어떻게 사랑하면서 사진을 찍을는지 궁금합니다.


  고향마을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은 고향마을을 어떻게 돌아보면서 사진을 찍는가요. 태어난 고향이든 뿌리내리는 고향이든 어떠한 마음이 되어 어떠한 눈길로 바라보며 사진기를 손에 쥐는가요.


  로버트 프랭크이든 토몬 켄이든 저마다 스스로 사랑하는 곳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고 느낍니다. 으젠느 앗제이든 기무라 이헤이이든 저마다 스스로 사랑할 만한 터를 생각하며 사진을 찍었다고 느낍니다. 유진 스미스이든 아라키 노부요시이든 저마다 스스로 사랑한다고 느끼는 데가 아니라면 애써 다리품을 팔고 오랜 나날을 보내면서 사진을 찍을 수 없었으리라 느낍니다. 현을생 님이 담은 ‘제주 어머니’ 또한 스스로 사랑하는 결과 무늬를 헤아리면서 천천히 한 걸음씩 내디디며 사진기로 새삼스레 바라보며 얻은 사진이라고 느낍니다.

 

 

 

 


  곧, 사진을 찍자면 사랑해야 합니다. 하루를 머물든 한 시간을 머물든, 스스로 사랑하는 마음이 우러나야 비로소 사진을 찍습니다. 이윽고, 살아가며 사진을 찍습니다. 사랑하는 터에서 스스로 사랑스레 살아가며 사진을 찍습니다. 스스로 우러나는 사랑하는 마음을 곱게 추스르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이러며 한 해 두 해가 흐르면 어느덧 뿌리를 내립니다. 시나브로 뿌리를 내리며 사랑 어린 씨앗을 심습니다. 나무는 천 해 이천 해를 흐르는 사랑이 될 씨앗을 이 땅에 뿌립니다. 풀은 해마다 새로 돋는 사랑이 될 씨앗을 이 땅에 뿌립니다. 사람은 언제라도 기쁘게 되돌아보면서 사랑이 샘솟는 사진을 씨앗과 같이 이 땅에 뿌립니다.


  사랑하는 마음이라면 꼭 사진을 찍지 않아도 됩니다. 사진을 찍지 않아도 마음에 깊이 아로새길 수 있어요. 사랑하는 마음이라면 애써 글로 담거나 그림으로 옮기지 않아도 됩니다. 글로 안 쓰고 그림으로 안 그려도 마음에 넓게 아로새길 수 있어요. 꼭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일 때에는 마음에 아로새긴 내 고운 이야기를 내 고운 이웃이나 동무한테 꾸밈없이 보여주면서 활짝 웃고 싶기 때문입니다. 애써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자는 생각일 때에는 마음에 돋을새김한 내 빛나는 이야기를 나한테 빛스러운 이웃이나 동무한테 즐겁게 보여주면서 빙그레 웃고 어깨동무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사진을 찍어 이웃이랑 사이좋게 나눕니다. 사랑을 심고 돌보며 아끼는 사람이기에 사진을 그러모아 사진책 하나를 엮습니다. (4345.8.10.쇠.ㅎㄲㅅㄱ)

 


― 제주 여인들 (현을생 사진,탐라목석원 펴냄,1998.5.15.)

 

 

 

 

 

 

 

(최종규 . 사진책 읽는 즐거움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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