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을 떠도는 집 - 조병준 詩의 집
조병준 지음 / 샨티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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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있는 하느님과 시
[시를 노래하는 시 26] 조병준, 《나는 세상을 떠도는 집》

 


- 책이름 : 나는 세상을 떠도는 집
- 글 : 조병준
- 펴낸곳 : 샨티 (2007.9.15.)
- 책값 : 9000원

 


  마당에 걸상을 놓고 앉아 파리를 잡으며 시를 읽습니다. 웬 파리가 이렇게 달라붙나 싶어 한 마리 열 마리 두 마리 스무 마리 끝없이 잡습니다. 파리는 무언가 제 먹이가 있으니 떼를 지어 붕붕 날아다니겠지요.


  파리채에 얻어맞아 목숨을 잃은 파리는 마당에 톡톡 떨어집니다. 마당에 파리 주검이 하나둘 늘면 이제 개미가 곳곳에서 나타납니다. 개미는 파리 주검을 혼자 붙잡고 나르기도 하고, 둘이나 여럿이 함께 들어 나르기도 합니다. 작은 개미는 파리 주검에 잔뜩 달라붙어 파리 주검을 조각조각 뜯어서 나르곤 합니다. 개미들은 모기도 잠자리도 나비도 조각조각 잘라서 저희 집으로 나릅니다. 개미들은 벌레 주검이 생기면 곧 냄새를 맡고는 몰려들어, 이들 주검을 깨끗이 치웁니다.


.. 꽃무늬 벽지 뒤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 베니어합판 뒤로 꿈꾸는 사람들이 들린다 ..  (슬픈 여인숙)


  처마 밑에 어느새 생긴 거미줄이 퍽 큽니다. 거미는 처마랑 빨래줄 사이에 하얀 줄을 드리웁니다. 거미는 제법 커서 마치 하늘을 붕 뜬 채 걸어다니는 듯 보이곤 합니다. 어느 날 나비 한 마리 거미줄에 걸립니다. 나비는 꽤 크게 몸부림을 치고 거미가 가까이 다가섭니다. 그런데 나비가 거미줄에서 풀려나 멀리멀리 날아갑니다. 함께 바라보던 옆지기는 거미가 줄을 끊어 나비를 풀어 주었다고 말합니다. 그럴까, 그럴까, 생각합니다. 거미한테 너무 큰 벌레가 줄에 붙으면 줄이 몽땅 끊어지니 풀어 줄 수 있겠지요.


  지붕 위부터 퍽 높은 전깃줄 사이에 이어진 거미줄에도 잠자리가 걸립니다. 이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는 풀려나지 못합니다. 곳곳에 거미줄이 많고, 곳곳에 잠자리나 나비가 곧잘 걸립니다. 엊그제에는 빗물받이와 처마 사이에 새로 생긴 거미줄에 잠자리가 걸렸기에 손가락으로 줄을 끊어 풀어 줍니다. 거미도 잠자리도, 또 나비도 파리도, 또 개미도 만만하지 않은 삶일는지 모릅니다. 개미는 흙땅 큰돌 밑에 집을 짓곤 하는데, 내가 큰돌을 골라 옮길 때면 개미들은 저희 집 지붕을 잃었다며 수천 수만 마리가 한꺼번에 몰려나와 어지러이 헤매며 새 터로 옮기곤 합니다.


  나는 돌을 옮길 뿐이지만, 개미는 집을 잃은 셈입니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들길을 달릴 뿐이지만, 때때로 나뭇가지 사이 거미줄을 머리나 자전거로 끊곤 합니다. 나는 밭뙈기 풀을 뽑지만, 밭뙈기 풀숲에 깃들던 벌레는 보금자리를 잃습니다.


  내 작은 움직임이 커다란 물결이 됩니다. 내 이웃이나 동무들 작은 움직임이 커다란 물결이 되어 나한테 찾아들곤 합니다. 나는 나대로 물결이고, 옆지기와 아이들은 서로서로 저마다 다른 물결입니다. 물결과 물결이 만나 출렁거리기도 하고, 살가이 얼크러져 녹아들기도 합니다. 여러 물결은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기도 하고, 여러 물결은 골을 부리듯 부딪히며 큰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 나뭇잎들도 비를 덮고 따뜻했을 거야 ..  (희생)


  집안에 들어온 모기를 두 손바닥을 짝 부딪혀 잡습니다. 피가 팍 튀는 모기가 잡히기도 하고, 새끼손톱보다 큰 모기가 잡히기도 합니다. 네가 먹은 피는 누가 피일까 하고 헤아립니다. 네 커다란 덩치로 우리 피를 얼마나 빨아먹으려 했니 하고 묻습니다. 흐르는 물에 손을 씻습니다.


  내 이웃이든 먼 이웃이든 사람들은 으레 모기향을 태우거나 모기약을 뿌립니다. 모기를 좇거나 잡으려고 갖가지 약을 씁니다. 약을 써서 모기가 해롱거립니다. 그리고, 약을 쓰는 만큼 모기향이든 모기약이든 사람 몸이나 옷이나 집 곳곳에 천천히 스며듭니다. 모기약은 모기도 먹고 사람도 먹습니다. 모기향은 모기도 떨어뜨리고 사람도 떨어뜨립니다.


.. 나무들이 내 안으로 들어와 서성이다 돌아갔다 / 길 잃은 햇살과 강물과 빗줄기들이 / 잠시 수군거리다 떠나기도 했다 ..  (숲으로의 여행)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면 소재지를 다녀오는 길에 딱정벌레 한 마리 길 한복판에 뒤집힌 채 바둥거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꽤 큰 녀석이 어쩌다 여기에서 바둥거리나 싶어 걱정스럽습니다. 자전거가 딱정벌레를 안 밟도록 바퀴를 살살 옆으로 비껴 지나갑니다. 조금 달리다가 아무래도 걱정이 가시지 않습니다. 딱정벌레가 스스로 잘못해서 길 한복판에 뒤집혔는지 모르나, 시골길 자동차 뜸한 곳이라 하더라도 때때로 지나가던 자동차한테 치여 이곳에 뒤집혔는지 모릅니다. 자동차한테 치이지 않았더라도 자동차가 일으킨 바람에 그만 뒤집혔을 수 있어요. 내 자전거는 딱정벌레를 안 밟고 지나갔으나, 내 뒤를 따를 자동차는 그냥 밟고 지나가겠지요.


  뙤약볕 내리쬐는 길을 돌아갑니다. 딱정벌레도 이 뙤약볕에 고달프리라 생각합니다. 날개를 살살 건드려 뒤집어 주려 하는데 영 기운을 못 씁니다. 안 되겠네 싶어, 손가락 하나를 뻗어 딱정벌레가 내 손가락을 붙잡도록 합니다. 딱정벌레 겉껍질은 눈부시게 반짝이는 짙푸른 빛깔입니다. 꼭 짙푸른 빛깔 보석 같습니다. 아이들한테 딱정벌레를 보여주고는 길가 소나무 줄기 한쪽에 내려놓습니다. 그늘진 곳에서 쉬든, 이곳에서 먹이를 찾든, 이제 딱정벌레 스스로 살 길을 찾기를 바랍니다.


  다시 자전거를 달립니다. 이제 홀가분합니다. 파랗게 빛나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하얗게 빛나며 파란하늘을 물들이는 구름을 바라봅니다.


,, 우리 이모 / 처자식 있는 남자에게 속아 시집가 / 마심이 언니 낳고 서울로 올라와 / 바지락 까서 마심이 언니 시집보내고 / 콩나물 팔아서 마심이 언니 신랑 사철 새 옷 해 입히고 / 마심이 언니 벽제에서 태운 날부터 / 두부 팔아서 / 매일매일 술 마셨다 ..  (우리 이모, 부잣집에 태어나러 가네)


  바람이 불어 후박나무를 찰랑입니다. 바람이 불어 논배미 볏포기를 흔듭니다.


  후박나무는 바람 따라 흔들리면서 열매 떨어진 꽃받침을 하나둘 마당에 떨굽니다. 빨간 꽃받침은 바다에서 자라는 산호 가지를 닮습니다.


  바람 부는 들판에 서면 쏴아아 쏴르르 하며 볏포기끼리 서로 잎사귀 부딪거나 스치는 소리가 들립니다. 바다에 설 때에 듣는 물결 소리랑 볏포기가 바람에 살랑이며 낼 때에 듣는 소리랑 비슷하구나 싶습니다.


  잠투정을 하는 작은아이를 안고 마루에 서서 깜깜한 바깥을 바라보면 풀벌레 노랫소리 고즈넉하게 들립니다. 이 풀벌레는 무슨 노래일까, 하고 물으며 아이를 바라보면 아이는 커다란 눈을 더 커다랗게 뜨고는, 응 응, 하고 되묻습니다. 새로 들리는 풀벌레 소리에 따라 고개를 까딱까딱 돌립니다. 어디에서 나는 소리인가 찾습니다. 한여름이 되어 개구리 노랫소리는 거의 잦아들었지만, 풀벌레 노랫소리 사이에 자그맣게 섞여 함께 들리기도 합니다. 풀벌레와 개구리는 우리 집 작은아이더러 예쁜 아이야 이 저녁에 예쁘게 자야지 아직 안 자고 무엇을 하니, 하고 묻습니다. 작은아이한테 풀벌레들 이야기를 들려주며 천천히 달랩니다.


.. 나는 그저 / 내 살색이 보호색이 될 수 없었던 나라들에서 / 내게 잠시 친절했던 현지인들의 얼굴을 기억했다 ..  (그의 살색은 연한 밀크초콜릿 색이었다)


  조병준 님 시집 《나는 세상을 떠도는 집》(샨티,2007)을 읽습니다. 파리를 잡다가 읽고, 모기를 잡다가 읽으며, 잠자리 날갯짓 소리를 듣다가 읽습니다. 식구들 먹을 풀을 뜯다가 질경이 잎사귀 뒤에 오도카니 붙은 작은 알을 바라보던 느낌을 떠올리며 읽습니다. 마당 한켠 꽃밭에서 줄기를 뻗은 수박풀은 줄기가 꺾여 간당간당하더니 그예 다시 기운을 차려 씩씩하게 잎사귀를 키웁니다. 수박풀이 대견하구나 싶어 잎사귀를 살살 쓰다듬습니다. 수박풀 까끌까끌한 느낌을 되새기며 시를 읽습니다.


  오늘 하루 살아가는 이야기가 시 하나로 태어납니다. 오늘 하루 꿈꾸는 이야기가 시 하나로 거듭납니다. 오늘 하루 사랑하는 이야기가 시 하나로 옷을 입습니다.


.. 아버지, 세 분 작은아버지 모시고 / 됫병 소주 들고 / 큰할아버지, 할아버지, 두 분 작은할아버지 / 무덤들 인사 다닐 때 / 어쩌면 무덤마다 / 돗나물, 취나물, 머위, 고사리, 삘기, 익모초, / 지천으로 널렸을까 ..  (지팡이 아버지)


  무더운 낮이 지나면 조금은 시원한 밤이 찾아옵니다. 조금은 시원한 밤이 지나면 다시 무더운 낮이 찾아옵니다. 아침에는 고운 햇살이 온누리를 밝힙니다. 저녁에는 포근한 달빛이 온누리를 감쌉니다. 낮에는 들판에서 고운 꽃송이와 풀잎을 바라봅니다. 밤에는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빛을 바라봅니다.


  고운 꽃과 풀은 내 마음에 곱게 드리웁니다. 반짝이는 별은 내 가슴에 반짝이며 깃듭니다. 내 손길은 언제나 고울 수 있습니다. 내 눈길은 늘 반짝일 수 있습니다. 내 두 다리는 언제나 곱게 한 걸음씩 내딛을 수 있습니다. 내 두 눈은 늘 반짝이면서 착하게 둘레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 모든 어머니들이 그러하시듯 / 그의 어머니께서도 즐거운 세상 이야기를 / 아들에게서 얻어듣는 저녁을 / 소박하게 바라시지만, 오늘도 / 이미 밖에서 읽었던 신문을 뒤적이며 / 어머니의 질문들을 수저 소리로 떠넘기고 / 그는 밥상과 함께 어머니를 내보낸다 ..  (안개마을 사람들)


  내 마음은 어느 길을 가고 싶은가 하고 곰곰이 돌아봅니다. 손끝이 다치거나 손가락에 피가 맺혀도 씩씩하게 빨래를 하는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집일을 하는 나는 누구인가 하고 가만히 헤아립니다. 마음이 움직여서 하는 집일인지, 몸이 더 기운을 내며 하는 집일인지 헤아립니다. 아이한테 궂은 말을 윽박지르는 나는 마음이 움직이는 나인지 몸이 움직이는 나인지 생각합니다. 아이한테 따숩게 자장노래를 부르거나 놀이노래를 부르는 나는 마음이 이끄는 나인지 몸이 이끄는 나인지 곱씹습니다.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 나일까요. 나는 어떻게 꿈꾸고 싶은 나일까요. 나는 어떻게 사랑하고 싶은 나일까요.


  나는 어떤 밥을 어떻게 먹고,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나누고 싶은 나일까요. 어쩌면 나는 내 삶도 꿈도 사랑도 한 번조차 돌아보지 않으면서 오늘까지 이르지 않았을까 궁금합니다. 어쩌면 나는 내 길도 집도 넋도 찬찬히 헤아리지 않으면서 오늘까지 왔을 수 있구나 싶습니다.


.. 한겨울에도 누이들은 / 밤에야 마음 놓고 빨래를 할 수 있었다 / 식구들을 모두 재우고 / 빨래처럼 얼어버린 누이들도 잠에 들었다 ..  (겨울가족)


  시를 쓰는 조병준 님은 스스로 ‘지구별 떠도는 집’이라 말합니다. 그러면, 조병준 님 마음이 지구별을 떠도는 집일까요, 조병준 님 몸이 지구별을 떠도는 집일까요. 마음에 따라 몸이 움직여 지구별을 떠도는 삶일까요, 몸에 따라 마음이 움직여 지구별을 떠도는 삶일가요.


  사람은 홀가분하게 온누리를 마실하는 넋으로 이루어진 목숨일까 생각해 봅니다. 사람은 몸뚱이를 놀려 두 다리로 땅을 디디고 두 손으로 이것저것 붙잡으면서 온누리를 눈과 귀와 코와 머리로 겪는 목숨일까 헤아려 봅니다.


  시골집 마루에 앉아 가만히 눈을 감고는 지구별과 나를 생각합니다. 자전거수레에 아이들을 태우고 들길을 달리면서 온누리와 나를 헤아립니다. 내 안에 있는 하느님은 내가 어떻게 살아가기를 기다릴까요. 내 마음을 이루는 하느님은 내가 어떻게 꿈꾸기를 기다리며 지켜볼까요. 내 몸에 깃든 하느님은 내가 어떻게 사랑하기를 기다리며 지켜보고는 따순 햇살이 될까요.


  이제 시집을 덮습니다. 온통 땀투성이가 된 두 아이 옷을 벗기고 함께 씻습니다. 벗은 옷은 신나게 빨고, 마당 꽃밭 한켠에서 자라는 하얀 콩꽃을 바라봅니다. (4345.7.3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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