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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 Kitchien 1
조주희 글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9년 10월
평점 :
가슴에 아로새기는 맛
[만화책 즐겨읽기 169] 조주희, 《키친 (1)》
내가 차린 밥을 내가 맛있게 먹습니다. 내가 차린 밥으로 아이들이 맛있게 먹습니다. 나는 좋은 마음이 되어 밥을 차립니다. 나 스스로 안 좋은 마음일 때에는 밥을 차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 몸으로 안 좋은 기운을 넣고 싶지는 않거든요. 가장 좋은 마음이 되어 가장 좋은 밥을 차려서 먹고 싶습니다. 가장 좋은 생각을 빛내어 차린 밥으로 아이들이 좋은 숨결을 받아들일 때에 즐겁습니다.
내가 걷는 들길은 푸르고 싱그럽습니다. 내가 보는 하늘은 맑고 파랗습니다. 내가 마시는 바람은 상큼하고 시원합니다. 내가 쬐는 햇살은 따스하고 포근합니다. 좋은 들길을 걷고 싶고, 좋은 하늘을 누리고 싶으며, 좋은 바람을 맞이하고 싶고, 좋은 햇살하고 인사하고 싶습니다.
- “그런데, 어느 주말, 미니오븐을 구해서 저에게 빵을 구워 주셨죠. 그 빵은 오랫동안 반죽을 쳐대야 하는 투박한 단팥빵이었는데, 처음이어서 그런지, 빵은 질기고 딱딱한 데다 맛도 별로였죠. 그 뒤 난, 다시는 엄마의 빵을 맛볼 수 없었어요. 그 빵을 마지막으로, 엄마는 절 찾아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때, 움켜쥔 빵의 말랑한 촉감과 따뜻함, 달콤한 향기, 그건 분명, 엄마의 살처럽 형체가 있는 사랑이었어요.” (80∼82쪽)
늘 먹는 밥은 내 몸입니다. 늘 바라보는 곳은 내 마음입니다. 내가 마련하는 먹을거리는 내 몸을 이룹니다. 내가 돌보는 보금자리는 내 마음을 이룹니다. 어떤 먹을거리를 살펴 건사하느냐에 따라 내 몸을 다스리는 삶이 달라집니다. 어떤 보금자리를 찾아 보듬느냐에 따라 내 마음을 추스르는 삶이 달라집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살아가는 터전이 어디인가는 퍽 대단한 일이 됩니다. 오늘날 사람들 삶터는 곧 오늘날 사람들 마음이거든요. 오늘날 사람들이 으레 먹는 밥과 오늘날 사람들이 바깥에서 사다 먹는 밥도 무척 대단한 일이 됩니다. 오늘날 사람들 먹을거리와 바깥밥은 고스란히 오늘날 사람들 몸이에요.
좋은 몸이 되면서 마음이 흔들리거나 기울어지지 않도록 알맞게 어루만집니다. 좋은 마음이 되면서 몸이 무너지거나 갈팡질팡하지 않게끔 슬기롭게 보살핍니다. 좋은 밥을 마련해서 나누는 삶은 서로서로 아름다운 꿈을 키우는 밑거름이 됩니다. 좋은 집을 가꾸며 함께하는 살림은 나부터 따스한 사랑을 나누는 밑바탕이 됩니다.
다만, 좋은 밥은 비싼 밥이 아닙니다. 좋은 생각을 키우는 손길로 거둔 좋은 먹을거리를 좋은 사랑으로 손질하며 빚는 밥일 때에 좋은 밥입니다. 좋은 집은 비싼 집이 아닙니다. 좋은 생각을 북돋우는 몸짓으로 일구어 좋은 사랑이 샘솟도록 아낄 때에 좋은 집입니다.
- “‘그래도 배고픈 오빠야들을 위로해 줄 소중한 컵라면이겄제. 아, 참, 컵라면 맛은 어디든 똑같은 것 같데이. 울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서울에서나, 글꼬 내 거나 오빠들 거나, 참 맛있다카이.’ (104쪽)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멧길을 오르내리며 생각합니다. 아이들과 아버지는 땡볕을 뜨겁게 받으면서 시골길을 달립니다. 오르막에서는 후끈후끈하구나 하고 느낍니다. 내리막에서는 시원한 바람을 쐬며 땀을 식힙니다. 우리 둘레는 논밭이거나 숲입니다. 우리 앞으로도 논밭이거나 숲입니다. 아이들과 아버지는 더운 바람도 시원한 바람도 모두 맞아들입니다. 멧새가 노래하는 소리를 듣고, 바람이 나뭇잎 흔드는 소리를 들으며, 한여름을 맞아 풀벌레가 노래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멧새는 무얼 먹으며 나무숲에서 살까 궁금합니다. 풀벌레는 무얼 먹으며 풀숲에서 살까 궁금합니다. 멧새와 풀벌레는 저마다 제 삶터에서 저희한테 가장 좋은 밥을 먹을 테지요. 멧새와 풀벌레는 스스로 가장 좋아할 만한 보금자리를 이루어 가장 좋은 노래를 들려줄 테지요.
바람은 온누리 어디에서나 붑니다. 싱싱 불기도 하고 산들산들 불기도 하지만, 때때로 아주 고즈넉하게 잠들기도 합니다. 포근한 바람이면서 싱그러운 바람입니다. 보드라운 바람이면서 살가운 바람입니다.
햇살은 지구별 곳곳을 감쌉니다. 후끈후끈 내리쬐기도 하지만 살그마니 간질이기도 합니다.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알맞게 나누어 베풉니다. 어느 곳은 여름이 짧고 어느 곳은 겨울이 없다시피 하지만, 햇살은 언제나 지구별 어디에나 따사로이 깃듭니다.
- ‘지금 넌 살아 있지 않냐고, 정신 번쩍 차리게 만들어 주는 회초리 같은 음식. 그래, 살아 있었다면 우린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르지. 고통없는 평온한 얼굴을 하고 사진 속 그 애는 내게 말했다.’ (136쪽)
조주희 님 만화책 《키친》(마녀의책장,2009) 첫째 권을 읽습니다. 밥 한 그릇에 서린 이야기를 조물딱조물딱 엮습니다. 사랑스러운 꿈이 서린 밥 이야기가 있고, 서러운 생채기가 서린 밥 이야기가 있습니다. 스스로 느끼기 나름인데, 스스로 사랑스럽다고 느끼면 사랑스럽습니다. 스스로 서럽다고 느끼면 서럽습니다. 어느 쪽이 되든, 내가 먹는 모든 밥은 내 가슴에 아로새기는 맛입니다. 내 가슴에 아로새기는 맛은 내 몸에 아로새기는 삶입니다.
밥을 차리는 손길은 마음에 아로새기는 꿈입니다. 밥을 기다리는 눈길은 마음에 아로새기는 빛입니다. 밥을 차리며 꿈을 먹고, 밥을 기다리며 빛을 먹습니다. 밥을 먹는 이야기는 삶을 먹는 이야기요, 밥을 빚는 이야기는 삶을 빚는 이야기입니다. (4345.7.26.나무.ㅎㄲㅅㄱ)
― 키친 1 (조주희 글·그림,마녀의책장 펴냄,2009.10.20./1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