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에서 책읽기

 


  네 식구 함께 여수로 마실을 갑니다. 도시사람이 자주 찾는다 하는 여수바다는 어떠할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우리 식구한테는 다른 무엇보다 여수에 한 군데 씩씩하게 뿌리내려 책살림 일구는 헌책방 〈형설책방(형설서점)〉이 궁금합니다. 여수시가 여수다운 삶터 빛을 곱게 돌보도록 생각밭을 일구는 헌책방 〈형설책방〉은 어떠한 이야기로 책삶을 나누는가 궁금합니다.


  고흥 도화 동백마을에서 군내버스를 타고 이십 분쯤 달려 읍내로 나옵니다. 읍내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한 시간 사십 분 남짓 달립니다. 한 시간 훌쩍 넘는 시외버스에서 두 아이와 옆지기가 죽을 동 살 동합니다. 나는 아무 말을 안 했지만 나도 속이 메스껍습니다. 시골에서 조용히 살다가 이웃 가까운 도시로 나오는 마실길만 하더라도 참 고단하다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여수 버스역에서 내린 다음 택시로 갈아탑니다. 택시삯 3900원을 들여 여수경찰서와 여수등기소 사이 헌책방으로 찾아갑니다. 택시 일꾼은 ‘여수에 한 군데 있는’ 헌책방을 모릅니다. 그래도, 여수 버스역 앞에 있는 관광안내소에서 일하는 할아버지는 ‘여수에 한 군데 있는’ 헌책방을 잘 압니다.


  택시는 엑스포를 펼친다는 곳 옆을 끼고 달립니다. 퍽 먼발치에서도 우람하게 지은 건물이 보입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은 저 우람한 건물에 들어가서 무언가 구경하려고 몇 시간이고 줄을 선다고 합니다. 아마 구경거리가 많으니까 저곳으로 찾아가겠지요.


  택시를 타고 달리는 짧은 길이지만, 여수시에서는 이웃 다른 도시에서와는 좀 다른 빛깔을 느낍니다. 여수하고 이웃한 순천이나 광양하고만 대더라도, 여수 시내에서는 푸른 빛깔이 꽤 짙습니다. 가까이에 숲이 있고, 곁에 숲이 있으며, 둘레에 숲이 있습니다. 여수도 순천도 갯벌이나 바닷가에 온갖 건물과 아파트와 시설을 때려지으면서 관광산업을 북돋우려 똑같이 애쓰기는 하지만, 여수에는 아직 건물이나 아파트나 시설에 덜 밀리거나 안 밀린 숲이 제법 있습니다.


  나무숲이 있기에 이곳 여수에서 책숲을 돌보는 일꾼 두 분이 땀흘릴 만하겠구나 싶습니다. 풀숲이 있어 이곳 여수에서 이야기숲을 꿈꾸는 일꾼 두 분이 책손을 기다릴 만하겠구나 싶습니다.


  여수 길그림에는 여수 헌책방이 적히지 않습니다. 가만히 보면, 여수 길그림에는 여수 헌책방뿐 아니라 여수 새책방도 안 적힙니다. 관광길그림이건 이런저런 길그림이건 책방을 하나하나 적바림하지 않습니다. 부산에서 내는 관광길그림에는 보수동 헌책방골목을 그려 넣지만, 부산 시내 곳곳에 있는 헌책방을 알뜰히 그려 넣지는 않아요. 서울에서도 인천에서도 대구에서도 광주에서도 대전에서도 길그림에 헌책방이건 새책방이건 제대로 그려 넣지 않아요.


  그렇지만, 책방 일꾼은 스스로 책사랑을 빛내며 예쁜 책길을 걷습니다. 나와 내 살붙이들은 책사랑이 빛나는 책길을 함께 걷습니다. (4345.7.1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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