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와 ‘보수주의’
[말사랑·글꽃·삶빛 19] 한국사람이 한국말 아끼는 길

 


  어떤 이는 ‘한국사람이 한국땅에서 살아가며 나누는 한국말’을 옳고 바르며 알맞게 추스르도록 힘쓰자고 하는 일을 바라보며 ‘민족주의’라고 비아냥거립니다. 어떤 이는 ‘한겨레 말글을 바르게 쓰자’고 말하는 사람을 ‘보수주의’라고 깎아내립니다.


  민족주의나 보수주의가 ‘나쁜 생각’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어떤 일이든 민족주의가 될 수 있으며 보수주의가 될 수 있어요. 그런데, 한국말과 얽힌 자리에서 민족주의나 보수주의 이름표를 붙이는 이들은 티없는 넋이나 얼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습니다. 자꾸 비아냥과 깎아내리기를 일삼습니다.


  왜 한국사람은 스스로 한국말을 비아냥거리거나 깎아내리려 할까요. 왜 한국사람은 스스로 한국말을 사랑하거나 북돋우려 하지 못할까요.


  더 많은 사람들이 ‘한자말을 으레 쓰니’까 한자말을 으레 쓸 만하다고 여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쓸 만하지 않은 말이라 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쓰든 말든 알맞지 않고 올바르지 않을 뿐더러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올바르지 않은 생각’, 곧 ‘잘못된 생각’을 더 많은 사람들이 품을 때에는 부드럽게 타이르고 알맞게 깨우쳐 슬기롭게 이끌어야 한다고 느껴요. 이를테면, 정치나 사회나 문화가 한결 ‘올바르고 좋은 길’로 나아가기를 바라며 정치운동이나 사회운동이나 문화운동을 해요. 교육운동이나 노동운동 모두 ‘두껍고 커다란 울타리’를 허물거나 바로잡으려고 힘써요. 한국사람이 쓰는 한국말이라고 해서 이와 다를 수 없어요. 사람들이 ‘으레 그러려니’ 하고 쓴다지만, ‘스스로 못 느낄 만큼 길들거나 찌들거나 물든’ 채 ‘스스로 생각을 못 빛내’며 쓰는 말이라 한다면, 저마다 소매를 걷어붙이면서 말글운동도 할 노릇입니다.


  교과서에 적힌 역사 지식 가운데 올바르지 않게 적힌 지식은 바로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면, 교과서에 적힌 숱한 말 가운데 올바르지 않게 적힌 말 또한 바로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학자나 교수나 기자가 쓴 책이나 신문에 쓴 글에서 ‘올바르지 않은 생각을 큰소리로 외친다’ 싶은 대목은 낱낱이 따지며 바로잡거나 고치려 애쓴다면, 이들이 쓴 책이나 글에서 ‘올바르지 않은 말과 사랑스럽지 못한 글’ 또한 낱낱이 따지며 바로잡거나 고치려 애쓸 수 있어야 해요.


  다만, 이곳에서 이렇게 하니 저곳에서도 저렇게 해야 마땅하다는 틀은 그닥 반갑지 않습니다. 생각하는 삶이 생각하는 말이 될 때에 반갑습니다. 생각으로 삶을 짓듯, 생각으로 말을 지을 때에 달갑습니다.


  지식을 쌓는대서 역사를 더 잘 알지 않습니다. 지식을 쌓기에 말을 더 잘 알거나 더 잘 하지 않습니다. 책을 더 많이 읽었기에 사회를 잘 읽지 않습니다. 책을 더 많이 읽거나 국어사전을 자주 들추었기에 말을 더 잘 헤아리거나 살피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동의(同意)를 구(求)한다”라 말하고, 어떤 이는 “동의를 받는다”라 말하며, 어떤 이는 “허락(許諾)을 받는다”라 말하며, 어떤 이는 “너그러이 받아들인다”라 말하며, 어떤 이는 “받아들인다”라 말합니다. 모두 같은 뜻 같은 쓰임 같은 이야기를 할 때에 쓰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말투가 저마다 다릅니다.


  어떤 이는 “잘 가.” 하고 말하지만, 어떤 이는 “안녕(安寧).” 하고 말하며, 어떤 이는 “바이바이(byebye).” 하고 말합니다. 어떤 이는 “살펴 가.” 하고 말하는데, 어떤 이는 “조심(操心)히 가.” 하고 말해요.


  집에 텔레비전이 없어 연속극을 본 일이 없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으레 “빙긋 웃”고 “활짝 웃”으며 “빙그레 웃”다가는 “싱긋 웃”곤 했으나, 이제는 누구나 “미소(微笑)를 짓”는다고 말할 뿐 아니라, 어린이책에까지 이런 말투가 나타납니다. 이와 함께, 신문이나 방송이나 책에서 곧잘 ‘미소’는 일본 한자말이니 바로잡아야 한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아주 많은 사람들은(지식인이든 지식인이 아니든) ‘미소’라는 낱말을 스스럼없이 씁니다.


  퍽 여러 해가 걸렸으나, ‘국민(國民)학교’라는 이름이 ‘초등학교’로 바뀌었습니다. 예전에 ‘국민학교’ 이름이던 때에 학교를 다닌 이들은 아직 ‘국민학교’라는 말투가 입에 남으나, 이제 어느 아이들이건 어른들이건 ‘초등학교’라고만 말합니다. 왜냐하면, ‘국민’이라는 낱말은 일본제국주의가 한국을 식민지로 삼으면서 “천황 폐하를 섬기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썼거든요. ‘국민·국어·국가(國歌)·국화(國花)’ 모두 이와 매한가지입니다. 한국사람은 숱한 “천황 폐하 식민지 적 말찌꺼기” 가운데 ‘국민학교’에 붙던 ‘국민’ 한 가지만 겨우 씻었습니다. “국민투표”라든지 “국민 여러분”이라든지 “국어 수업”이라든지 다른 자리에서도 마땅히 씻어야 할 말투는 씻지 않아요. 아니, 씻지 못한다기보다, 씻어야 하는 줄 느끼지 않아요. 느끼지 않는데다가 생각하지 않아요. ‘많은 사람들이 그냥 이럭저럭 쓰니’까 그대로 쓸 뿐이에요.


  한국사람이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을 바르게 쓰자고 외치는 일은 ‘민족주의’나 ‘보수주의’가 될 수 없습니다. 영국사람이 영국사람으로서 영국말(영어)을 바르게 쓰자고 외치는 일은 민족주의도 보수주의도 아니에요. 독일사람도 덴마크사람도 일본사람도 이와 같아요. 어느 한 나라나 겨레에 얽매이는 일이 아니에요. 한국사람이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을 바르게 쓰자고 외치는 일이란, 스스로 생각을 살찌우고 마음을 북돋우면서 삶을 사랑하자는 뜻입니다. “한겨레를 지키자”라느니 “오랜 전통을 지키자”하고는 아주 동떨어집니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살아가는 내 모습을 가꾸고 내 넋을 북돋우며 내 꿈을 보살피자는 뜻입니다. “고유어를 살리자”라느니 “토박이말을 쓰자”하고는 사뭇 동떨어져요.


  나는 민족주의나 보수주의가 나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다만, 어떠한 생각이든 ‘주의·주장’이 될 적에는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저 ‘생각’을 좋아하고 ‘마음’을 사랑합니다. 내 삶을 돌아보고 이웃을 헤아리는 생각이 좋습니다. 내 꿈을 아끼고 동무와 어깨동무하는 마음이 사랑스러워요.

  부디 한국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누구나 한국말을 곱게 생각할 수 있기를 빌어요. 이주노동자이든 대학교수이든 누구이든, 부디 한국땅에서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 한국글을 어여삐 사랑할 수 있기를 빌어요. 생각할 때에 싱그러이 빛나는 삶이에요. 마음을 기울일 때에 상큼하게 나누는 사랑내음이에요. (4345.6.2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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