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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 러브송 1
토모리 미요시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어떻게 스스로 사랑하고 싶은가
[만화책 즐겨읽기 159] 토모리 미요시, 《악마와 러브송 (1)》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에는 다른 어느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못합니다. 내가 나를 사랑할 때에라야 비로소 다른 사람도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면서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얼굴이 예쁘장해야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머리가 좋다거나 돈이 많대서 내가 나를 사랑할 만하지 않습니다. 내가 누리는 하루를 마음껏 좋아하면서 기쁘게 꿈꿀 때에 내가 사랑할 내 참모습을 느낍니다.
내가 할 일이란 내가 참으로 사랑할 내 삶이 무엇인가 하고 깨닫는 일입니다. 내 삶이 어떻게 생겼고, 내 삶을 어떻게 꾸미고 싶으며, 내 삶을 어떻게 꽃피우고 싶은가 하는 그림을 그릴 노릇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고, 즐기고 싶은 놀이를 생각하며, 만나고 싶은 사람을 떠올립니다. 보금자리와 숲과 들과 내를 가만히 헤아립니다. 풀과 나무와 짐승과 벌레를 곰곰이 생각합니다. 어떻게 어우러져서 어떻게 이웃이 되는 좋은 삶일 때에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 ‘말은 ‘예쁘게 살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는 자기 자신을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아.’ (20∼21쪽)
- “뭐야, 제대로 화낼 줄도 알잖아. 화를 참으니까 행동이 가식적이 되는 거야.” (26쪽)
- ‘우리는 단 하나의 계기만으로 한 발을 내디딜 용기를 얻곤 한다.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돼.’ (144∼145쪽)
내가 나 스스로 사랑할 때에 내 삶이 사랑스럽습니다. 어떤 옷을 입거나 어떤 자가용을 굴린대서 내 모습이 사랑스러울 수 없습니다. 어떤 자격증을 따거나 어떤 졸업장을 거머쥔대서 내 모습이 믿음직할 수 없습니다. 앎은 학교나 책에 없어요. 앎은 모두 내 생각에 있어요. 나라 안팎에서 첫손 꼽는 대학교를 마쳤다 하기에 똑똑하거나 슬기롭지 않아요. 그동안 배운 여러 가지를 내 생각에서 알맞고 알차게 엮을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똑똑하거나 슬기로운 사람이에요. 지식이나 정보를 두루 꿰는 사람은 그저 지식쟁이나 정보쟁이일 뿐이에요. 지식으로는 밥을 먹지 못하고, 정보로는 숨을 쉬지 못해요. 오직 내 목숨을 아끼려는 사랑으로 밥을 먹을 수 있어요. 오로지 내 마음을 보살피려는 사랑으로 숨을 쉴 수 있어요.
하늘을 날아다니는 제비가 얼마만 한 크기에다가 얼마만 한 빠르기여야 어여쁘지 않습니다. 제비알 크기가 얼마만 해야 예쁘지 않습니다. 하늘이 얼마나 짙은 파랑이어야 예쁘지 않습니다. 제비는 제비이기에 어여쁘고, 하늘은 하늘이기에 파래요. 사람은 사람다움을 건사하기에 사람이라 할 만하고, 어버이는 어버이 삶을 사랑스레 꾸릴 때에 어버이라 할 만합니다.
교사도 학생도 이와 같아요. 공무원이든 기자이든 회사원이든 이와 같아요. 스스로 ‘나다움’을 찾고 ‘나다움’을 생각하면서 ‘나다움’을 사랑스럽게 누릴 때에 삶을 이루고 꿈을 꽃피울 만해요.
- “공평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 바뀌지 않는 건 바뀌지 않으니까 그냥 포기해. 정 변하고 싶으면 누군가 바꿔 주길 기다리지 말고, 네 스스로 변하든가.” (28쪽)
- “그럼 말해 봐, 칸다 유스케. 이럴 때 어떻게 하면 러블리 변환을 할 수 있지? 어떻게 하면 이 왜소한 선생을 사랑스럽게 볼 수가 있어? 사랑스럽게 보이고 싶은 마음 손톱만큼도 없는 사람한테 어떻게 하면 그런 마음이 들 수 있냐고!” (52∼53쪽)
토모리 미요시 님 만화책 《악마와 러브송》(대원씨아이,2008) 첫째 권을 읽습니다. 이제 첫째 권이기에 주인공을 둘러싼 여러 밑이야기는 제대로 나오지 않습니다만, 《악마와 러브송》을 이루는 주인공 고등학생들은 스스로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를 놓고 갈팡질팡합니다.
어느 아이는 아주 이른 나이부터 ‘내가 나를 어떻게 사랑해야 좋을까’를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어느 아이는 고등학생이 되도록 ‘내가 나를 어떻게 사랑해야 좋을까’를 생각한 적 없습니다. 꽤 많은 아이들은 둘레 어버이나 교사나 이웃 어른 가운데 ‘스스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어, 이 아이들 또한 그만 스스로 사랑하는 길을 생각하지 못하면서 살아갑니다.
- “작작 좀 하지 그래? 코우사카 토모요가 학교 온 이유를 그런 시시한 일로 깎아내리지 마. 얼토당토 않은 질투도 정도가 지나치면 보기 흉한 법이야.” (43쪽)
- “너한텐 사람의 본질을 꿰뚫는 감은 있을지 몰라도, 이렇게 말하면 상대가 이렇게 생각하겠구나 하는 상상력은 손톱만큼도 없어!” (178쪽)
빨강은 빨강입니다. 빨강이니까 빨강은 빨강일 테지요. 그런데 빨강은 그냥 빨강이 아닙니다. 빨강을 닮은 다른 무엇이 있고, 다른 무엇이 빨강이라는 빛깔을 띠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딸기가 빨강이고 수박 속살이 빨강입니다. 장미꽃이나 동백꽃도 빨강입니다. 장미꽃이나 동백꽃 가운데에는 분홍도 있어요. 꼭 어느 한 가지라고만 할 수 없기도 합니다. 그래서, 딸기라든지 또는 앵두라든지 또는 잘 익은 고추를 떠올릴 수 있어요. 누군가는 그저 ‘빨강’이라고만 말할 테지만, 누군가는 ‘딸기빛’이라고 말할 테고, 누군가는 ‘앵두빛’이라 말할 만해요. 어느 누군가는 ‘핏빛’이라든지 ‘수박 속살 빛깔’이라 말할 수 있어요.
저마다 어떤 사랑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빛깔 한 가지는 늘 새롭고 새삼스럽게 거듭납니다. 저마다 어떤 꿈으로 마주하느냐에 따라 빛깔뿐 아니라 이야기와 책과 글과 노래가 모두 싱그러이 빛납니다.
슬픈 노래란 없어요. 스스로 슬프기에 슬픈 노래가 돼요. 기쁜 노래도 따로 없어요. 스스로 기쁘기에 기쁜 노래가 돼요.
- “사실은 우리가 마리아를 악마로 만들고 싶은 거잖아. 왜냐면 그 편이 상처받지 않을 수 있으니까.” (45쪽)
- ‘그 애들처럼 되고 싶어. 부드럽고 강하게 누군가를 지킬 수 있는.’ (180쪽)
- “칸다 유스케, 그런 얼굴은 너답지 않아. 다들 얼마나 러블리해. 나한테는 골탕 먹이고 무시하고 조롱이나 하더니, 너한텐 진심으로 부딪쳐 오잖아.” (185쪽)
어떻게 스스로 사랑하고 싶은가요. 어떻게 스스로 즐겁고 싶은가요. 어떻게 스스로 예쁘고 싶은가요. 어떻게 스스로 신나게 책을 읽고, 밥을 먹으며, 노래하는 하루를 누리고 싶은가요.
왜가리가 논마다 내려앉아 개구리를 잡아먹습니다. 도룡뇽도 잡아먹고 올챙이도 잡아먹습니다. 왜가리는 마음껏 배를 채운 다음 가뿐하게 날갯짓을 하며 하늘 높이높이 올라갑니다. 이제 한국땅에서 왜가리 한 마리 홀가분하게 살아갈 만한 터는 차츰차츰 줄지만, 그래도 왜가리는 스스로 씩씩하고 기운차게 먹이를 찾으며 살아갑니다. 개구리는 조그마한 논에서 틈틈이 목숨을 빼앗기지만 새로 알을 낳고 새로 태어나며 새로 삶을 일굽니다.
만화책 《악마와 러브송》에 나오는 아이들은 스스로 사랑을 찾으려 합니다. 안타깝지만, 또는 안 안타깝지만, 이 아이들을 둘러싼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사랑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아이들이 사랑을 빛내는 길을 이끌지 못합니다. 어른들부터 스스로 사랑스럽다 싶은 삶을 누리지 못해요.
그래도 아이들은 ‘늘 바라보아야 하는 여느 어른’들처럼 ‘사랑 없이 살아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부딪히고 저렇게 부대끼며 사랑을 찾습니다. 참으로 즐거울 사랑을 생각하고, 더없이 빛날 사랑을 헤아립니다. (4345.6.28.나무.ㅎㄲㅅㄱ)
― 악마와 러브송 1 (토모리 미요시 글·그림,서수진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08.12.15./42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