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눈
시각장애어린이 미술교육 후원모임 ‘샌드위치’ 지음 / 사회평론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느낌글을 쓰고 나서도 어쩔 수 없이 생각하는데, 이 사진책 <마음의 눈>은 책이름부터 검색하기 너무 힘들고, 엮은이 이름으로도 찾아보기 너무 힘들다. 이런 대목을 조금 더 마음을 기울여 따스히 만들어 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너무도 눈에 안 뜨이는 책이 되고 만다.)

 

 

 

 

 


 마음으로 바라보고 찍는 사진
 [찾아 읽는 사진책 103] 샌드위치 엮음, 《마음의 눈》(사회평론,2011)

 


  사진책 《마음의 눈》(사회평론,2011)을 읽었습니다. 시각장애어린이 미술교육 후원모임 ‘샌드위치’이 엮은 사진책으로, 제법 이름난 사진쟁이들이 도움이가 되어 ‘눈으로 보지 못하는 푸름이’들이 손에 사진기를 쥐어 찍을 수 있도록 이끌었다고 합니다. 머리말을 읽습니다. “‘우리들의 눈’에 경제적 후원을 하는 디자이너들의 모임 ‘샌드위치’는 4년 전 한 학교에 사진반을 만들었습니다. 카메라 렌즈를 눈과 동일시하는 그들이 소리로 느껴 마음으로 찍은 사진은 우리가 그들과 시각적 소통을 할 수 있는 통로가 되었으며 그들에겐 세상과 만나는 또 다른 방식을 열어 줬습니다(13쪽).”는 이야기를 되새깁니다. 장님인 푸름이들이 찍은 사진은 장님인 푸름이들이 ‘보며 즐길’ 수 없습니다. 이 아이들은 오직 ‘사진을 찍는 느낌’만 누릴 수 있습니다. 찍은 사진이 어떻게 나오는 줄 알 수 없습니다. 찍은 사진을 종이에 앉힌들 어떤 빛깔이거나 무늬인가를 느낄 수 없습니다.


  사진책 《마음의 눈》은 장님인 푸름이들 사진을 큼지막하게 보여줍니다. 사이사이 여러 사진쟁이가 찍은 작품을 곁들입니다. 장님인 푸름이들을 도운 사진쟁이는 ‘무언가 다른 기법’을 쓰며 사진을 찍었다고 합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사진쟁이가 찍은 작품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사진쟁이 작품은 장님인 푸름이가 볼 수 없을 뿐더러, 느낄 수 없고,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 사진들은 누가 보고 누가 누리라 하는 작품이 될까 궁금합니다. ‘무언가 다른 기법’을 쓴 사진쟁이는 무엇을 느끼거나 누릴까 궁금합니다.


  어딘가 구슬을 잘못 엮었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이렇게도 하고 저렇게도 할 수 있습니다만, 무언가 실타래를 잘못 잇거나 맺는구나 싶습니다.

 

 

 

 

 


  장님인 푸름이들은 어떤 사진기를 썼을까요. 이 아이들은 앞으로도 꾸준히 사진찍기를 하며 삶을 누릴 수 있을까요. 두 가지 궁금한 이야기는 좀처럼 풀리지 않습니다. 사진책 《마음의 눈》을 읽으며 두 가지 궁금한 대목은 더 엉키고 꼬입니다.


  홀로 생각에 잠깁니다. 장님인 푸름이들은 아무래도 완전자동 사진기를 썼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빛이나 조리개를 스스로 맞출 수 없습니다. 어떠한 사진기도 ‘손가락으로 느끼면’서 빛이나 조리개를 맞추도록 만들지 않습니다. 더더구나 이 아이들한테는 ‘무지개빛 사진’이거나 ‘그림자빛 사진’이거나 대수롭지 않아요. 이 아이들로서는 필름사진인들 디지털사진인들 대단하지 않습니다.


  사진기를 써서 사진을 찍어 본 분이라면 누구나 알 텐데, 지구별 사진기 가운데 ‘왼손잡이’가 쓸 수 있는 사진기는 없습니다. 따로 주문해서 만들면 모르되, 모든 사진기는 오직 ‘오른손잡이’가 쓰도록 만듭니다. 오른손잡이가 오른손가락과 오른눈을 써서 사진을 찍도록 만들기만 합니다. 왼손잡이가 왼손가락과 왼눈을 써서 사진을 찍도록 이끌지 못해요. 꼭 이렇기 때문은 아니나, ‘오돌토돌하게 튀어나온 자리’가 있어 손가락만으로도 느끼며 빛과 조리개를 맞추도록 돕는 사진기 또한 없습니다. 이제는 모든 사진기가 자동으로 맞추어 주기도 하고, 사진기에 눈을 박을 때에 안쪽에 빛과 조리개 숫자가 뜨도록 나오기도 하지만, 손가락으로 단추를 만지작거릴 때에 곧장 알아채게끔 해 주지 않아요. 너무 마땅한 노릇일까 싶지만, 사진기와 사진찍기와 사진읽기 모두 ‘장님한테는 길을 열어 놓지 않는 마음’이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사진책 《마음의 눈》에서는 장님인 푸름이들이 사진을 찍습니다. 장님인 푸름이들은 저희 사진을 저희 ‘몸눈’으로 볼 수 없을 텐데, ‘몸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으로서 가만히 생각합니다. 내 몸눈으로 보기에 장님인 푸름이들 사진이 무척 사랑스럽습니다. 마치 노래 같고, 마치 속삭임 같으며, 마치 눈물 같고, 마치 웃음 같다가는, 마치 이야기 같습니다. 사진책을 덮고 나서 생각을 추스릅니다. 그래요. 장님인 푸름이들이 찍은 사진은 이 아이들 삶입니다.


  이 아이들은 소리를 듣고 살아갑니다. 이 아이들은 냄새를 맡으며 살아갑니다. 이 아이들은 ‘어떤 모습이나 그림’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빛’을 껴안으며 활짝 누립니다.


  나는 언제나 새벽 두어 시 무렵이면 잠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이무렵 시골집 바깥에서 들리는 고요한 소리에 이끌려 일어납니다. 새벽 한두 시 사이까지 우렁차게 울려퍼지는 개구리 노랫소리는 아주 즐거운 자장노래입니다. 새와 벌레와 뭇목숨과 바람과 풀과 나무가 들려주는 소리는 내 몸과 마음을 느긋하게 쉬도록 이끌며 새근새근 잘 자도록 도와줍니다. 이들 모든 소리가 고요해지는 새벽 두어 시 무렵 맑은 시골마을 기운은 비로소 나를 일으켜세워요. 고즈넉한 기운은 내가 가장 정갈하며 싱그러운 기운을 글 한 줄에 실을 수 있도록 도와줘요.


  사진책 《마음의 눈》을 여러 차례 읽으며 다시금 생각합니다. 장님인 푸름이를 도와 사진놀이를 하도록 이끈 ‘몸눈으로 볼 수 있는’ 사진쟁이들이 ‘완전자동 사진기’를 손에 쥐고, 오직 소리와 냄새에 따라서 사진을 함께 찍으면 어떠했을까 하고. 오직 마음으로 느끼는 빛을 누리며 사진을 나란히 찍으면 얼마나 고울까 하고.

 

 

 

 

 


  오른손잡이 사진기를 왼손으로 쥐어 사진을 찍어 본 적 있는 사람은 압니다. 그저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옮겼을 뿐이지만, 새삼스럽게 보입니다. 오른눈 아닌 왼눈을 사진기에 대고 바라본 적 있는 사람은 느낍니다. 그예 오른눈에서 왼눈으로 바꾸었을 뿐이지만, 남다르게 보입니다.


  새로운 눈설미와 눈길 때문에 ‘소리와 냄새’로 사진을 찍으면 즐겁다는 뜻이 아닙니다. 장님인 푸름이도 장님 아닌 푸름이와 똑같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이요 이웃이며 동무이고 살붙이예요. 그렇지만 이 지구별에서, 또 이 한국땅에서, 장님인 푸름이하고 장님 아닌 푸름이가 서로 살가이 사귀거나 만날 자리란 거의 없어요. ‘장애인 학교’에만 다녀야 하는 장님 푸름이예요. ‘비장애인 학교’에만 다니는 장님 아닌 푸름이예요. 장님 아닌 푸름이들은 비장애인 학교를 다니면서 손말을 배울 일이 없고 점글 또한 배우지 않아요. 하나하나 옳게 따진다면, 한국땅 모든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내 이웃하고 생각을 나눌 말과 글’을 옳고 바르며 예쁘게 배울 수 있어야 해요. 한국땅 모든 아이들은 돈을 더 벌거나 이름을 더 떨칠 무기로 삼는 영어를 배울 노릇이 아니라, 한국땅 살가운 동무와 이웃할 ‘말(손말)과 글(점글)’을 찬찬히 익힐 수 있어야 해요.


  “나를 보는 어머니가 있어, 내 사진을 읽어 주는 선생님이 있어, 마음 한 자락 내어주는 이웃이 있어, 나는 기쁩니다. 그리고, 행복합니다. 언젠가 하늘을 볼 수 있을 거예요(150쪽/이명숙).” 하는 아이들 목소리를 듣습니다. 아이는 언젠가 하늘을 볼 수 있으리라 글을 적지만, 아이는 늘 하늘을 보아요. 구름이 흐르는 소리를 들을 테고, 구름이 날아가는 내음을 맡을 테니까요. 햇살이 내리쬘 때에는 따스한 기운을 느껴요. 따스한 기운에 어리는 내음을 맡아요. 바람이 불 적에 바람이 풀잎과 나뭇잎 스치는 소리를 느끼며, 풀잎을 스치며 실어나르는 내음을 함께 맡아요.

 

 

 

 

 


  나는 생각합니다. 몸눈으로 보는 사람이 사진기를 손에 쥘 때에도 그저 몸눈으로만 보며 사진을 찍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나부터 내가 내 사진을 찍을 때에는 몸눈으로 본 모습만 찍지 않아요. 내가 꽃을 찍을 때에는 꽃빛뿐 아니라 꽃내음과 꽃소리를 함께 찍습니다. 헌책방에서 책시렁을 사진으로 찍을 때에는 몸눈으로 보이는 책과 책시렁뿐 아니라 책에 서린 내음과 책마다 담긴 소리를 나란히 찍습니다. 헌책방 책손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책장 넘기는 소리를 같이 찍습니다. 책에 흠뻑 빠진 사람들이 슬며시 웃는 소리를 조용히 찍습니다.


  어떠한 사진이든 눈으로만 느낄 수 없습니다. 어떠한 사진이든 빛깔과 소리와 내음이 골고루 얼크러지기 때문에, 어떠한 사진을 읽든 내 모든 마음을 기울여 읽습니다. 빛과 무늬와 결을 읽는 한편, 소리와 내음과 느낌을 읽습니다. 사진이 좋다고 여기면, 빛도 좋지만 소리도 좋기 때문입니다. 무늬가 좋으면서 내음이 좋고, 결이 좋은 한편 느끼이 좋아서 사진읽기를 즐깁니다.


  누구나 마음으로 바라보고 찍는 사진일 때에 아름답습니다. 예쁘장하다는 빛깔을 담는대서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럴듯한 그림을 빚는대서 아름답지 않아요. 날씬한 몸매인 아가씨를 모델로 세우기에 아름다운 사진이 나오지 않아요. 마음으로 바라보며 찍는 사진이기에 아름답구나 하고 느껴요.


  장님인 푸름이들은 이야기 한 자락 들려줍니다. 장님인 푸름이들은 저희 삶을 온통 드러내어 사진과 글을 베풀면서 ‘몸눈으로만 보려 하는 어른’들한테, 이 어른들 스스로 잊거나 잃거나 놓치거나 놓은 이야기와 삶을 생각하고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꿈을 들려줍니다. (4345.6.12.불.ㅎㄲㅅㄱ)

 


― 마음의 눈 (시각장애어린이 미술교육 후원모임 ‘샌드위치’ 엮음,사회평론 펴냄,2011.11.1./5만 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