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과 밤을 이야기하는 마음

 


  인천에서 태어나 살던 나는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 다른 동무들과 비슷하게 인천을 떠났습니다. 사람들은 으레 시골사람만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 시골 고향을 떠나 서울로 몰려들거나 도시에 빨려들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일이 없다고들 말하지만, 한국에서는 서울이나 부산에서 살지 않으면 모두 고향을 떠나기 마련이라고 느끼며, 부산에서 사는 사람조차 서울로 가려고 한다고 느껴요.


  인천에서 살던 어린 날과 서울로 가서 지내던 젊은 날, 여름날 저녁이나 밤은 몹시 후덥지근했습니다. 끈끈하고 무더운 여름날을 견디기란 힘들었어요. 도시사람한테 여름저녁과 여름밤이란 ‘잠 못 이루는 밤’일 뿐입니다.


  도시에서 꾸리던 살림을 2010년부터 접고 시골로 옮겨 살아갑니다. 시골에서 저녁과 밤을 맞이하면서, 나는 시골사람으로서 생각합니다. 시골 저녁은 시원합니다. 시골 밤은 서늘합니다. 도시에서 살 적에도 선풍기를 안 쓰기는 했으나, 부채 없이 아이를 재우기란 힘겨웠습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며 부채를 쥘 일조차 드뭅니다. 바람은 알맞게 불어, 낮에는 시원하고 저녁에는 선선합니다. 아이들 모두 잠드는 깊은 밤에는 그야말로 서늘합니다. 갓 잠이 들 무렵에는 이불을 안 덮다가도 새벽 무렵에는 어김없이 이불깃을 여며야 합니다.


  도시에서 살던 때에는 따로 집에서 신문을 받아보지 않아도 둘레에서 신문을 손쉽게 살 수 있고 얻어 읽을 수 있습니다. 시골에서 살며 신문 한 장 사서 읽기란 매우 힘들 뿐더러, 애써 신문을 찾아 읽을 만한 일이 없습니다. 곰곰이 마음을 기울이고 보면, 도시사람은 스스로 신문을 만들어야 하고 신문을 읽어야 합니다. 시골사람은 따로 신문을 안 만들어도 되며 신문을 안 읽어도 됩니다. 도시를 이루는 밑틀은 온갖 지식과 정보이기에, 도시에서는 신문과 방송과 책이 출렁출렁 물결칩니다. 시골을 이루는 밑바탕은 흙과 숲과 풀과 새와 벌레이기에, 시골에서는 풀내음과 들바람과 햇살과 흙기운이 널리 감돕니다.


  도시사람은 정치읽기를 하고 사회읽기를 하며 문화읽기를 합니다. 시골사람은 하늘읽기와 흙읽기와 풀읽기를 합니다. 도시에서 일자리를 얻자면 자격증과 졸업장이 있어야 합니다. 시골에서 일거리를 얻자면 스스로 몸을 움직여 땀을 흘려야 합니다.


  문득 돌아보면, 먼먼 옛날부터 후덥지근한 여름밤은 없었으리라 느낍니다. 다만, 자연을 밀어내고 사람들만 꾸역꾸역 모인 서울이라든지 궁궐에서는 후덥지근한 여름밤이 있었겠지요. 풀과 나무가 마음껏 자라지 못하고, 흙이 제대로 풀과 나무를 살찌울 수 없던 옛 서울이라면 오늘 서울하고 서로 마찬가지였겠지요. 먼먼 옛날부터 여느 마을 여느 사람들은 시원한 저녁과 서늘한 밤을 누렸으리라 생각합니다. 흙을 먹고 흙을 사랑하는 삶일 때에는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알뜰살뜰 누리며 고운 꿈을 여밀 만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서울이나 크고작은 도시 여름저녁과 여름밤이 후덥지근하다면, 아스팔트 찻길을 줄여 숲길을 마련해 보셔요. 여름저녁과 여름밤을 시원하게 누리고 싶으면, 시멘트 건물 빽빽하게 세우지 말고, 건물 사이사이 건물 넓이만큼 조그맣게 숲을 일구어 보셔요. 여름밤이 너무 더워 선풍기와 에어컨을 돌리느라 전기가 모자라니까 발전소를 새로 지어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지 마셔요. 아스팔트와 시멘트를 흙과 나무로 돌려 놓으면, 서울에서도 크고작은 도시에서도, 여름날 저녁과 밤에 상큼하며 보드랍고 싱그러운 숲바람을 누릴 수 있어요. (4345.6.1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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