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글쓰기
날마다 아이들한테 불러 주며 재우는 노래 가운데 이원수 님 동시에 가락을 입힌 〈햇볕〉이 있다. 나는 이 동시 이야기가 좋기에 가락도 좋아하고 노래도 좋아한다. 아이한테 〈햇볕〉을 불러 주면서 싯말을 살짝 고치곤 한다. 이를테면, “햇볕은 고와요. 하얀 햇볕은, 나뭇잎에 들어가서 초록이 되고.”에서 ‘초록’을 ‘풀빛’으로 고친다. “따뜻한 사랑의 마음이 되어요.”는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을 나눠요.”로 고친다. 이리하여, 나는 아이한테 “햇볕은 고와요. 하얀 햇볕은, 나뭇잎에 들어가서 풀빛이 되고, 봉오리에 들어가서, 꽃빛이 되고, 열매 속에 들어가서, 빨강이 돼요. 햇볕은 따스해요. 맑은 햇볕은, 온누리를 골고루 안아 줍니다. 우리들 가슴도, 햇볕을 안고서, 따스한 마음으로, 사랑을 나눠요.” 하고 노래를 부른다. 처음에는 싯말 그대로 노래를 불렀는데, 몇 군데 낱말과 말씨가 자꾸 입에 걸려 두어 달에 걸쳐 하나하나 손질하며 이렇게 부른다. 이원수 님은 아이들한테 따스한 푸름과 하양과 빨강을 사랑스레 나누어 주고 싶어 동시를 지었고, 나는 이 마음이 아주 기쁘고 좋아 내 고운 꿈을 살포시 실어 우리 아이한테 새롭게 가다듬은 싯말을 읊는다.
처음에는 햇볕을 노래하고 봄을 얘기하며 따스한 사랑을 들려주어 좋다고만 여겼다. 이 노래를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석 달이고 넉 달이고 자꾸자꾸 부르면서, 해가 바뀌고 철이 바뀌어 어느새 봄을 맞이하고 여름으로 흐르다 보니, 조금씩 다른 생각이 몽실몽실 든다. 햇볕 또는 햇빛은 우리 가슴으로 네 가지 빛깔로 찾아오는구나 하고. 먼저 하얀 빛깔로 찾아든다. 추위를 견디는 하얀 빛깔이다. 다음은 밥을 북돋우는 푸른 빛깔로 찾아든다. 쌀이 되는 벼도 푸른 모요, 김치를 담그든 날것으로 나물을 먹든, 모든 풀은 푸른 빛깔이다. 이윽고 봄빛이 무르익으며 꽃이 흐드러질 때에 마음이 따사롭게 부풀어오른다. 이제 꽃 빛깔이다. 꽃이 하나둘 지면서 어여쁜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듯하지만, 꽃이 지고 흙으로 돌아가면서 시나브로 열매를 맺는다. 바로 빨간 빛깔이다.
딸기꽃은 하얗다. 딸기알은 빨갛다. 하얗게 환하던 꽃이 빨갛게 달콤한 열매가 되어 내 몸으로 스며든다. 밥은 푸르고, 꿈은 하야며, 믿음은 꽃을 닮고, 사랑은 빨갛다. (4345.6.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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