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듯 같은 듯 - 언어와 문화의 한.일 비교
사이토 아케미 지음 / 소화 / 200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따스한 마음으로 한국에서 살아가기
 [책읽기 삶읽기 108] 사이토 아케미, 《다른 듯 같은 듯》(소화,2006)

 


  마음을 따스하게 품으며 살아가는 사람은 내 삶과 내 이웃들 삶을 따스하게 어루만질 수 있습니다. 마음을 차갑게 내팽개치며 살아가는 사람은 내 삶이든 내 이웃들 삶이든 아무렇게나 짓밟거나 허물어뜨릴 수 있습니다.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지는 삶입니다. 마음자리에 따라 거듭나는 삶입니다.


  나 스스로 착한 마음을 깨달아 언제라도 착한 기운이 감돌도록 힘쓰지 않는다면, 나는 언제까지나 ‘착함’이 무엇인지 알아차리지 못해요. 나 스스로 고운 삶을 깨달아 언제라도 고운 넋이 되도록 애쓰지 않는다면, 나는 언제까지나 ‘고움’이 무엇인지 알아채지 못해요.


.. 한국에서 나이는 말씨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 한국인의 성씨는 286개(2002년 조사)로, 약 30만 개에 이르는 일본인의 성씨에 비하면 훨씬 적다 … 일본어라면 ‘선생’을 붙이는 것만으로 충분히 경칭이 되나 한국에서는 일반적인 대화에서도 ‘교수님’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  (19, 44, 93쪽)


  착한 삶은 누가 가르쳐 주지 못합니다. 고운 삶은 누가 알려주지 못합니다. 참다운 삶은 누가 이끌어 주지 못합니다. 착하고 고우며 참다이 누릴 삶은 언제나 나 스스로 느끼고 익히며 꾸릴 수 있습니다.


  좋아할 만한 삶은 내가 좋다고 느낄 때에 좋아할 만한 삶입니다. 돈을 버는 일자리는 나 스스로 찾아서 얻습니다. 마음을 나눌 짝꿍은 나 스스로 만나고 사귑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내 손으로 돌보며 사랑합니다. 내 눈으로 꽃을 바라보며 예쁘구나 하고 느낍니다. 내 손으로 풀잎을 쓰다듬으며 어여쁘구나 하고 느낍니다. 내 손으로 나무를 얼싸안으며 아리땁구나 하고 느낍니다.


  나는 내가 바라는 대로 살아갑니다. 나는 남이 바라는 대로 살지 못합니다. 나는 내가 꿈꾸는 대로 살아갑니다. 나는 남이 등떠미는 대로 살지 못합니다. 내 길은 내가 바라봅니다. 내 뜻은 내가 다스립니다. 내 말은 내 입과 손으로 읊습니다.


.. 급한 일이라도 있어 앞질러야 할 때는 마치 인파를 누비듯 지그재그로 걷는 것이 일본인의 습관이다. 그래도 어깨나 팔이 닿으면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한다 … (한국사람이) 사과의 말을 적게 하는 것과 더불어 또 하나 이상한 것은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아끼는 것이다 … 일본인에게는 ‘친한 사이에도 계산은 깨끗하게’라는 무언의 규칙이 있다 ..  (21∼23, 26쪽)


  착한 삶은 어떤 삶일까 생각해 봅니다. 총칼을 들지 않거나 주먹다짐을 하지 않을 때에 착한 삶이 될 만한가요. 어느 눈길로는 이만 하기만 하더라도 착한 삶이 되겠지요. 퍽 많다 싶은 돈을 혼자 차지하지 않고 내려놓을 때에 착한 삶이 될 만한가요. 어느 눈길로는 이쯤 되더라도 착한 삶이 되겠지요. 이런저런 대학교 졸업장을 앞에 드러내지 않을 때에 착한 삶이 될 수 있나요. 어느 눈길로는 이런 모습 또한 착한 삶이 되겠지요.


  내가 느끼는 착한 삶은 무엇일까 헤아려 봅니다. 내 밥을 내가 차리고, 내 밥이 될 먹을거리를 나 스스로 얻으며, 내 삶자리에서 쓰레기 아닌 거름을 내어 보금자리와 흙을 살찌울 수 있을 때에 착한 삶이리라 느낍니다. 나와 살붙이를 사랑으로 돌볼 줄 알며, 따숩고 너그러운 말로 하루하루 기쁜 웃음을 나눌 때에 착한 삶이 된다고 느낍니다. 두 다리를 좋아하고, 자전거를 누릴 때에 착한 삶이라고 느낍니다. 하늘빛을 좋아하고 풀빛을 사랑할 때에 착한 삶이라고 느낍니다. 내 삶에서 가장 빛나는 열매를 글 하나로 엮어 여럿이 즐겁게 읽도록 내놓을 수 있을 때에 착한 삶이라고 느낍니다.


.. 문득 한국인과 일본인은 대화할 때 내뱉는 단어의 수부터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한편 한국인은 이야기하는 쪽도 적극적이지만 듣는 쪽도 빈틈을 두지 않고 적극적으로 말을 받는다 … 일본인은 외부인, 특히 낯선 사람이나 친밀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침묵으로 대처하는 데 반해, 가정 내에서는 분노나 항의를 분명하게 표출하는 일이 많다. 그리고 한국인은 그와 반대의 패턴이 많다고 한다 ..  (48∼49, 79쪽)


  나는 내 길을 걷습니다. 나는 딴 사람 길을 걷지 않습니다. 나는 내 길을 사랑합니다. 나는 딴 사람 길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내 둘레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 아끼며 사랑하는 길을 바라보며 이 길이 참 좋구나 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나 스스로 사랑하는 내 길을 마음껏 누리면서, 내 둘레 이웃들이 좋은 느낌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아름다우리라 느낍니다.


  서로 같은 사람이고 서로 같은 목숨입니다. 사람이라는 자리에서 서로 같고, 목숨이라는 넋에서 서로 같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이고 서로 다른 목숨입니다. 태어나서 일구는 삶이 다르고, 느끼거나 바라보는 삶이 다릅니다. 가장 잘할 수 있거나 가장 좋아할 만한 대목이 서로 다릅니다. 가장 빛내거나 가장 슬기로울 대목이 서로 다릅니다.


  풀은 모두 풀이지만, 미나리와 쑥은 서로 다른 풀입니다. 쑥은 모두 쑥이지만, 돋는 자리에 따라 서로 다른 쑥입니다. 감나무 한 그루에서 맺는 감은 모두 같은 감알이지만, 감나무 한 그루에서 딴 감알을 나란히 놓으면 모두 달리 생기고 모두 조금씩 다른 맛이 납니다.


  똑같이 생긴 구름은 한 번도 없고, 똑같이 태어나 똑같이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 같은 ‘한 갈래 사람’이며 ‘한 갈래 목숨’이지만, 저마다 다른 빛을 뽐내며 저마다 다른 숨을 살찌웁니다.


.. 한국인 친구 집에 놀러갔다 늦게까지 이야기에 빠지거나 하여 불가피하게 하룻밤 묵어야 할 경우가 가끔 있다. 이런 날에는 정성이 듬뿍 담긴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즐거운 시간을 공유하는 것 자체가 그 어떤 것보다 따뜻한 대접이라고 생각한다 … 한국이 가진 다양한 식문화의 일단은 원기 왕성한 아저씨,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이런 노점(포장마차)이 짊어지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  (61, 134쪽)


  다르면서 좋고 같으면서 좋습니다. 다르면서 아름답고 같으면서 아름답습니다.


  다만, 제도권 틀이나 울타리를 앞세워 끼워맞출 때에는 하나도 안 좋고 하나도 안 아름답습니다. ‘유행’이란 바보짓입니다. ‘자격증’이란 덧없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한쪽 길로 쏠릴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길로 저마다 다른 아름다운 빛을 뽐내며 어깨동무를 할 뿐입니다. 유행을 만들거나 얘기하거나 보여주거나 휘둘리도록 하는 일은 모두 ‘어두운 나쁜 무리’가 벌이는 끔찍한 짓입니다. 유행에 앞서거나 유행에 뒤처진다고 말하는 일은 몽땅 ‘어두운 나쁜 무리’가 우리들을 바보스레 내몰면서 멍청한 사람이 되도록 깎아내리는 짓입니다. 자격증도 이와 같아요. 어떤 일을 할 때에 왜 자격증이 있어야 할까요. 교사가 되려면 교사 자격증이 있어야 할까요? 아니에요. 교사가 되려면 참말 교사다운 삶을 꾸려야 합니다. 밥을 잘 짓자면 요리사 자격증을 따야 하나요? 아니에요. 밥짓기를 사랑 담아 할 수 있어야 밥꾼(요리사)이에요.


  통·번역 자격증이라든지, 중장비 자격증이라든지, 운전 자격증이라든지, 무술 자격증이란 얼마나 덧없을까요. 대통령이나 아기 어버이가 되는 일도 자격증이 있어야 할까요. 아니에요. 우리가 하는 어느 일이든, 사랑이 밑받침되어야 비로소 할 수 있어요. 사랑과 믿음과 꿈, 이 세 가지를 고루 섞어 슬기와 땀과 웃음, 이 세 가지로 신나게 펼칠 때에 비로소 우리가 하는 일이 돼요.


  좋은 마음이어야 합니다. 착한 마음이어야 합니다. 고운 마음이어야 합니다. 곧,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아갈 때에 비로소 교사가 될 만하고, 중장비나 자동차를 다룰 만하며,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될 만할 뿐더러, 의사이든 변호사이든 작가이든 시인이든 농사꾼이든 노동자이든 될 만합니다. 가장 사랑스럽고 가장 믿음직하며 가장 좋은 넋으로 살아가야 비로소 ‘한 사람’입니다.


.. 같은 동아시아에 있는 한국에서는 자전거가 그다지 일상적인 교통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지 않은 게 신기하다 … 한국에서는 자전거를 타느니 다소 무리를 하거나 대출을 받아 차를 사는 게 낫다고 여겨진다 … 내 눈에는 도무지 우스운 게 없는데 무엇이 우스운지 궁금해 했더니 여학생 중 한 명이 “교수님, 일본에서는 치마를 입고도 자전거를 타나요? 속옷이 보이지 않아요?”라며 창피한 듯 말했다. “괜찮아요. 나도 일본에서는 근처에 장을 보러 갈 때 치마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데요.” 내 대답에 여학생들 모두 당황스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한 듯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  (169, 171쪽)


  사이토 아케미 님은 강원도 춘천에 있는 한림대학교에서 일본말을 가르치는 자리에 있다고 합니다. 나이가 제법 많으니 언제까지 대학교수로 일하실 수 있는지 모르겠는데, 한국에서 한국사람한테 일본말 가르치는 일을 하며 겪은 이야기를 담아 《다른 듯 같은 듯》(소화,2006)이라 하는 책을 내놓은 적 있습니다. 이 책은 일본에서 먼저 내놓고 한국에는 나중에 내놓았다는데, 이 책을 처음 쓰신 지 어느덧 열 해가 훌쩍 지난 만큼, 그 뒤 겪거나 느낀 다른 이야기를 새로 묶을 만한데, 아직 다른 책은 안 내놓으신 듯합니다. 여러모로 바쁘기에 이 같은 책을 새롭게 내놓을 겨를이 없을는지 모르는데, 따스하게 마음을 다스리며 마주한 두 나라 사람들 이야기를 꾸준히 들려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야기책 《다른 듯 같은 듯》은 한국과 일본 두 나라를 견주는 ‘비교 문화 체험’이 아닌, 두 나라를 마음 깊이 아끼며 사랑하는 고운 꿈을 보여줍니다.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가는데, 사랑 가운데에서도 따순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4345.6.9.흙.ㅎㄲㅅㄱ)

 


― 다른 듯 같은 듯 (사이토 아케미 글,소화 펴냄,2006.7.15./85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