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순난앵 열린어린이 창작동화 13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홍재웅 옮김, 일론 비클란드 그림 / 열린어린이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아이들 사랑하는 이야기를
 [어린이책 읽는 삶 21]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그리운 순난앵》(열린어린이,2010)

 


- 책이름 : 그리운 순난앵
- 글 :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 그림 : 일론 비틀란드
- 옮긴이 : 홍재웅
- 펴낸곳 : 열린어린이 (2010.3.30.)
- 책값 : 9500원

 


  새벽 여섯 시에 아이들이 잠에서 깨어 부시럭거리다가 일어나 슬금슬금 돌아다닙니다. 좀 늦잠을 자면 안 되겠니 싶지만, 이때에 잠에서 깨어 부시럭거리다 일어나겠다 하는데 어찌할 길 없습니다. 어제 일찍 잠들었나 돌아보지만, 썩 일찍 잠들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아이들입니다.


  어버이인 내가 늦게 자면서 일찍 일어난다면, 아이들 또한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삶에 맞추어 하루하루 맞이하리라 느낍니다. 어버이인 나부터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난다면, 아이들 또한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 버릇할는지 모릅니다.


  그러고 보면, 시골 아이는 늦게 자도 일찍 일어납니다. 시골은 밤이 일찍 찾아들고 새벽 또한 일찍 찾아듭니다. 먼동이 트는 새벽 네 시 무렵이면 시골 어른들 누구나 잠을 털고 일어납니다. 어둠이 깔리는 저녁 여덟 시쯤 지나면 시골 어른들 누구나 잠자리에 듭니다. 어른도 아이도 자연이 베푸는 선물을 마음껏 받아들이고, 아이도 어른도 자연이 들려주는 소리를 가만히 귀기울여 듣습니다.


.. 순난앵 마을에 살던 마티아스와 안나는 뮈라 마을의 한 농가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들이 아주 영리해 보인다거나 착해 보이는 눈을 가지고 있어서, 혹은 성실하게 일할 것 같은 작은 손을 가지고 있어서 데려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아이들이 힘겨워하자 이를 안타깝게 여겨 데려온 것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마티아스와 안나를 데려온 농부는 아이들에게 오로지 일을 시킬 생각뿐이었습니다 … 그들(마티아스와 안나)도 짐작했던 것처럼 가난뱅이 잿빛티를 벗어 버리는 일은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눈이 숲길을 덮어 버려도, 추위에 발톱이 갈라져서 아파도, 샌드위치와 팬케이크로 도시락을 싸 올 수 없을 만큼 가난해도, 어린 남매는 거르지 않고 매일매일 성실하게 학교에 나갔습니다 ..  (7, 16쪽)


  어제 하루, 자전거수레에 두 아이 태우고 먼 나들이를 해 보았습니다. 으레 면내까지만 천천히 논둑길을 돌고 돌아 나들이를 했는데, 다음에 옆지기랑 넷이 자전거를 타면 어디로 돌 때에 좋을까 하고 헤아리다가 그만 한 시간 남짓 고흥 시골마을 멧길과 바닷길까지 돌았습니다.


  우리 시골마을에도 자동차 드나들 일이 뜸하지만, 이웃 시골마을에도 자동차 드나들 일이 뜸합니다. 자전거수레에 두 아이를 태우고 달리자니, 이곳도 호젓하고 저곳도 한갓져요. 면 소재지 둘레만 자동차 여러 대 지나갈 뿐입니다.


  자동차도 사람도 없는 조용한 멧길을 자전거로 오르다가 살짝 멈춥니다. 숨을 돌리고 싶다기보다, 찻길로 길게 뻗는 칡덩굴 때문입니다. 새로 뻗는 칡덩굴을 끊거나 잡아뽑으면 집에서 만나게 풀물을 짜서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천천히 오르막을 오릅니다. 오르막을 지난 다음에는 싱 하고 내리막을 달립니다. 바다가 펼쳐지면 내리막이더라도 자전거를 멈춥니다. 넓은 바다를 바라봅니다. 넓은 바다 품이 있어, 사람도 다른 목숨도 좋은 숨결 누릴 수 있구나 싶습니다.


.. “오빠, 내 발이 그러는데, 보드라운 모래랑 푹신푹신한 잔디가 너무 좋대.” … “아니야, 같이 가면 좋아하실 거야. 어머니는 모든 아이들을 좋아하시거든.” … 비록 말린의 집이 부유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곳은 아름다웠고 재미있는 것이 많았습니다. 상상해 보세요. 봄이 오면 창밖에 서 있는 사과나무가 꽃을 피우는 모습을, 그리고 은방울꽃들이 가득 피어난 숲을 말입니다 … 말린은 밤도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뭇잎과 꽃, 잔디와 나무는 살아숨쉬는 봄의 영혼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손톱만큼 작은 식물과 지푸라기도 영혼과 생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26∼27, 39, 57쪽)


  나는 좋은 목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좋은 목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칡덩굴도, 봄풀도 여름풀도, 들새도 멧새도, 개구리도 왜가리도, 모두 좋은 목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밤에 두 아이 토닥이며 재우는 동안 생각해 봅니다. 왜가리가 개구리를 잡아 넙죽 먹을 때에는 날것 그대로 삼킬 텐데, 그 작은 목구멍으로 토실토실 개구리가 꾸물꾸물거리며 들어가다가 천천히 삭겠지요. 개구리는 왜가리가 되고, 왜가리는 개구리가 됩니다.


  시골 흙일꾼이 거둔 벼를 깎은 쌀알을 먹습니다. 쌀알은 내 몸으로 들어와 내가 되고, 나는 쌀알을 먹으며 쌀알이 됩니다.


  비트잎을 먹으며 비트잎이 됩니다. 가지를 먹으며 가지가 됩니다. 달걀을 먹으며 달걀이 되고, 과자를 먹으며 과자가 됩니다. 먹는 그대로 내 몸으로 이루어지고, 내 넋이 이루어지며, 내 사랑이 이루어집니다.


.. “문이 왜 닫히지 않은 걸까?” 안나가 물었습니다. “이 문은 한 번 닫히면 다시는 열리지 않는다고 했잖아. 기억 안 나?” 마티아스가 말했습니다. “응, 이제 기억나. 다시는, 영원히 열리지 않는다는 걸…….” 안나가 말했습니다. 마티아스와 안나는 서로를 쳐다보았습니다. 오랫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어린 남매는 서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그들은 문을 아주 조용히, 닫았습니다 … 말린은 자신의 손을 조용히 나무줄기 위에 얹었습니다. 바로 그때, 생명도 없이 혼자서 연주하는 것이 라임오렌지나무에게 얼마나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말린은 죽어 있는 나무에게 자신의 영혼을 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 그렇지만 라임오렌지나무 안에 내가 살아 있을 거야 ..  (34, 58쪽)


  아이들 사랑하는 이야기를 생각합니다. 어느 어버이라 하더라도 아이들만 사랑하지 못합니다. 어버이인 내 삶을 사랑할 때에 아이들 삶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한테만 좋다 싶은 밥을 먹이지 못합니다. 어버이 스스로 좋은 밥을 먹을 때에 아이들 또한 좋은 밥을 먹습니다. 어버이 스스로 좋은 옷을 입어야 아이들 또한 좋은 옷을 입어요.


  좋은 밥이란 비싼 밥이 아닙니다. 좋은 옷이란 비싼 옷이 아닙니다. 좋은 사랑을 들여 차린 밥이 좋은 밥입니다. 좋은 꿈을 실어 좋은 손길로 보듬는 옷가지가 좋은 옷입니다.


  곧,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은 보금자리를 이루어야 합니다. 사람이 이룰 보금자리는 ‘회사와 가깝다’거나 ‘나중에 부동산이 될 만하다’거나 ‘편의시설이 가까이 있다’는 대목을 살피며 얻어서는 안 됩니다. 좋은 삶을 누릴 만한 좋은 보금자리를 얻어야 합니다. 내 주머니에 있는 돈에 따라 마련하는 보금자리가 아니라, 내 사랑을 살찌우거나 북돋우거나 보살필 수 있는 보금자리로 마련해야 합니다.


  즐겁게 누릴 삶이지, 돈을 벌 삶은 아니에요. 기쁘게 어깨동무할 이웃이지, 어떤 권력 관계나 잇속으로 사귀는 옆사람이 아니에요.


.. 말린이 부엌에서 부인이 건넨 미음을 먹고 있을 때, 방문이 반쯤 열려 있던 침실에서 어떤 말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말소리는 너무나 아름다워서 듣고 있노라니 온몸이 떨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가 어린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는 소리였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말소리는 방문을 지나 말린의 귀에 와 닿았습니다 … 그는 손이 뒤로 묶였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꼿꼿했습니다. 그의 눈빛은 오히려 평온해 보였고, 그의 얼굴은 환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  (45, 127쪽)


  아이 둘을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오르막을 올라가기란 참 벅찹니다. 끙끙대는 아버지는 수레에 탄 아이들한테 말합니다. 오르막 올라가기 힘드니까 뒤에서 잘 올라가라 북돋워 주렴. 아버지 말을 들은 첫째 아이는 수레에 앉은 채 신나게 노래합니다. 노래하고 또 노래합니다. 나는 아이들 노래를 받아먹으며 기운을 냅니다. 시골마을 푸른 숲과 파란 바다를 누리면서 자전거를 달립니다.


  누렇게 잘 익은 밀밭 앞 전깃줄에 쉰 마리 즈음 줄지어 앉은 참새를 바라봅니다. 밀밭 건너편에 잘 익은 멧딸을 바라봅니다. 멧딸 몇 알 따서 아이들한테 건넵니다. 나는 작은 알 하나만 먹습니다.


  논 옆을 달리면서 논마다 우렁차게 노래하는 개구리들 이야기를 듣습니다. 개구리들은 무논에서 서로서로 어떻게 얼크러질까요. 무논에서 살아가는 개구리는 얼마나 많을까요.


  우리 집에도 우리 마을에도, 또 이웃 마을에도 이웃이웃 마을에도 제비들이 날아다닙니다. 우리 자전거 앞으로도 날고, 옆으로도 날며, 위로도 납니다. 내가 이름을 알아보는 멧새가 우리 곁을 스칩니다. 내가 이름을 못 알아보는 들새가 우리 둘레에서 지저귑니다. 나는 모든 소리들을 좋게 여기며 맞아들입니다. 바람과 햇살과 흙과 풀과 나무와 벌레와 새가 나란히 들려주는 노래를 곱게 받아들입니다.


.. 그렇지만 남을 아프게 하는 사람은 평생 동안 마음을 편하게 가질 수 없습니다 … 공작의 검은 영혼 속에서 피어난 두려움이 어두운 대지에 뿌린 씨처럼 순식간에 그의 마음을 뒤덮어 버렸습니다. 그저 가난한 악사 하나가 이곳에 왔을 뿐인데 말입니다 … 하지만 망누스 왕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어둠 속에서 왕의 곁에 있었습니다. 그는 볼 수는 없었지만, 그 친구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왕의 생명을 보호하려는 그 친구의 팔뚝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97, 101, 119쪽)


  사람은 밥만 먹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사람은 햇볕도 먹고, 바람도 먹습니다. 사람은 물만 마시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물이 흐르는 길도 함께 먹습니다. 물에 서린 기운도 나란히 먹습니다.


  마늘을 먹을 때에는 마늘이 뿌리내린 흙이랑 마늘이 받아들인 햇살이랑 마늘이 늘 쐬던 바람을 함께 먹는 셈입니다. 벼 한 톨 또한 벼 한 톨을 사랑한 흙이랑 햇살이랑 바람이랑 빗물이랑 골고루 먹는 셈이에요.


  목숨이란 아름답습니다. 나는 내 삶대로 아름답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 삶대로 아름답습니다. 참 예쁘구나 하고 방긋 웃으며 바라본 멧딸이니까, 아이들은 빨간 멧딸을 예쁘게 따서 예쁘게 먹고 예쁜 시골 아이로 자랍니다. 나는 예쁜 아이들 예쁜 웃음짓을 바라보며 늘 같이 지내니까, 나도 예쁜 시골 어른으로 살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흔들릴 때에 내가 손을 내밀어 붙잡습니다. 내가 흔들릴 때에 아이들이 손을 내밀어 붙잡습니다. 서로 믿고 서로 아낍니다. 서로 좋아하고 서로 사랑합니다. 서로 한식구 되기에 저녁에 잠자리에 들 무렵 목청을 가다듬어 자장노래를 부릅니다.


.. 가난한 소작농 오두막집에 다시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은 모두 닐스의 침대 주위로 몰려들었습니다. 닐스가 세상과 이별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가족들은 모두 기쁨에 겨워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어머니는 블라인드를 위로 잡아당겨 침실로 따스한 아침 햇살이 들어오게 했습니다. 동생들은 숲에서 딴 산딸기를 닐스에게 주었습니다. 아직 설익어서 산딸기가 줄기에 조그맣게 달려 있었지만, 올해 나온 첫 산딸기였기에 동생들은 기쁜 마음으로 닐스에게 선물했습니다. 동생들은 닐스가 깨어나서 산딸기를 먹을 수 있게 된 것이 너무나 기뻤습니다 ..  (135쪽)


  우리 집 처마 밑 둥지에서 드디어 새끼 제비가 고개를 내밉니다. 새끼 제비 울음소리를 때때로 듣습니다. 이제 이 새끼 제비는 날갯짓을 익히겠지요. 제 어미 제비한테서 좋은 날갯짓을 물려받겠지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 이야기책 《그리운 순난앵》(열린어린이,2010)을 읽습니다. 린드그렌 님이 당신한테 사랑스러운 아이들한테 들려주려고 남긴 이야기책입니다. 당신한테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보살피는 여느 어버이한테 함께 들려주려고 남긴 이야기책입니다.


  아이들은 《그리운 순난앵》을 읽으며 따순 사랑을 받아먹습니다. 아이들 어버이 또한 《그리운 순난앵》을 읽으며 따순 사랑을 나누어 먹습니다. 서로서로 새로운 사랑을 빚습니다. 다 같이 맑은 사랑을 키웁니다. 기쁨을 찾는 넋이 서립니다. 즐거움을 꿈꾸는 얼이 담깁니다. 예쁜 웃음과 아픈 눈물이 어우러지며 삶을 이룹니다. 스웨덴 할머니 순난앵마을은 아름답고, 우리 집 두 아이 동백마을도 아름답습니다. (4345.6.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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