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쓴 글을 읽기

 


  남이 쓴 글을 읽는 일이란, 남이 살아가는 나날을 읽는 일입니다. 글읽기란 언제나 삶읽기입니다. 왜냐하면, 글쓰기란 늘 삶쓰기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읽는 ‘남이 쓴 글’은 ‘남이 스스로 살아낸 나날을 쓴 글’이에요. 나는 언제나 ‘내 둘레 누군가 살아낸 나날에 하나하나 아로새겨진 글’을 읽습니다.


  나는 글을 읽으며 삶을 헤아립니다. 내 둘레 좋은 벗님들이 즐겁게 살아가기를 꿈꾸며 글을 읽습니다. 즐겁게 살아가는 좋은 사랑을 글에 담뿍 싣기를 바랍니다.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읽으며 나 또한 기쁩니다. 힘겨이 살아내는 사람들 이야기를 읽다가 나 또한 기운이 빠집니다. 때때로 내 작은 손길이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싶으면, 댓글이나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종이책을 손에 쥐어 읽는다면, 나로서는 그분한테 아무런 쪽글을 남기지 못해요. 이리하여, 내가 하는 일 가운데 하나는 느낌글 쓰기입니다. 어느 누리책방 한 군데에 꾸준하게 느낌글을 올린다면, ‘내가 읽은 책을 쓴 아무개’ 님이 내 느낌글을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내가 그분 책을 읽으며 받은 좋은 느낌, 서운한 느낌, 기쁜 느낌, 아쉬운 느낌, 모든 느낌을 있는 그대로 밝힙니다. 서로 좋은 지구별 삶을 함께 누리자는 생각을 나누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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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쓴 글을 누군가 읽습니다. 내가 쓴 글을 읽는 어느 누군가라 한다면 그이는 ‘내 겉모습’이 아니라 ‘내 삶’을 읽는 셈입니다. 내가 쓴 글에서 내 겉모습만 훑으려 한다면, ‘내 글 읽는 이’는 내 삶을 살피지 못하고 맙니다. 삶을 읽지 못하고 말투에만 목을 매달거나 말꼬리만 붙잡는다면, 서로 아무런 이야기를 나누지 못합니다.


  나는 어느 누가 쓴 글을 읽건, 그이가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틀린 대목’을 건드리지 않습니다. 그이가 ‘잘못되거나 어그러지거나 어긋나거나 엉뚱한 말투로 쓴 대목’을 굳이 바로잡아 주지 않습니다. 어느 대목 하나 좀 지나쳐서, 이 하나만은 잘 헤아리기를 바랄 때에만 슬쩍 밝힐 뿐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삶’을 즐거이 이야기하면서 ‘넋’을 북돋우고 싶거든요. 글 한 줄로 서로 좋은 꿈과 사랑을 주고받고 싶거든요.


  나는 내가 쓴 글을 나 스스로 되새겨 읽습니다. 내 삶을 찬찬히 되새깁니다. 나는 남이 쓴 글을 내 삶에 맞추어 아로새겨 읽습니다. 멀리 있어도 한마음입니다. 가까이 있으면 말없이 마주보아도 좋습니다. 오늘도 새벽 다섯 시 제비 노랫소리를 들으며 새 하루 맞이합니다. 한결같이 기쁘며 아름다운 나날입니다. (4345.6.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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