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시인이 쓰는 말
[말사랑·글꽃·삶빛 11] ‘웃음’과 ‘미소’와 ‘스마일’

 


  오늘날 사람들이 쓰는 손전화 기계는 전화를 걸거나 받는 구실뿐 아니라, 인터넷을 누빈다든지 동영상이나 영화를 본다든지 노래를 듣는다든지, 여기에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을 찍는다든지 하는 데까지 쓰임새를 넓힙니다. 이름은 손전화라 하지만, 구실이나 쓰임새는 참 넓어요.


  저는 사진기라는 이름이 붙는 기계를 따로 쓰기에, 굳이 손전화라는 기계로 사진을 찍지는 않습니다. 저처럼 사진기라는 이름이 붙는 기계를 따로 안 쓰는 분들은 으레 손전화라는 기계로 사진을 찍으실 텐데, 언젠가 어느 분 손전화 기계에서 사진이 찍힐 때마다 ‘스마일!’ 하는 소리가 나오는 모습을 곁에서 보았습니다.


  서양사람은 사진을 찍을 때에 ‘치즈(cheese)’라 말한다 하고, 한국사람은 사진을 찍을 때에 ‘김치’라 말한다 하니까, 한국 회사가 만들어 한국사람이 쓸 한국땅 손전화 기계라면 ‘스마일’ 아닌 ‘김치’라는 말이 흐르거나 ‘웃어!’ 같은 말이 흘러야 알맞지 않을까 하고 살짝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사람 스스로 ‘손전화’ 같은 낱말조차 잘 안 써요. ‘휴대폰(携帶phone)’이라 할 뿐입니다. 적어도 ‘폰’을 ‘전화’로 바로잡아 ‘휴대전화’라 말하는 분조차 드물어요.


  어른들부터 말을 곰곰이 생각하며 사랑스레 쓰지 못하는 얼거리이다 보니, 푸름이와 어린이 또한 제 말을 곰곰이 생각하며 사랑스레 쓰도록 이끌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푸름이와 어린이는 바로 둘레 어른들이 여느 때에 늘 쓰는 말을 언제나 들으면서 익숙하게 말을 하고 글을 써요. 둘레 어른들이 곱고 예쁘게 말을 한다면, 푸름이와 어린이 또한 곱고 예쁘게 말을 할 테고, 둘레 어른들이 밉고 거칠게 말을 한다면, 푸름이와 어린이 또한 밉고 거칠게 말을 하고야 맙니다.


  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국문학과를 마치고, 시를 쓰며 살아가다가, 출판사 편집자로도 일한 적 있는, 예순 살 넘은 어느 분이 쓴 시를 읽다가 “헛간에 좀 늦게 들어온 호박이 쭈뼛거리다가 얼굴에 곧 환한 미소를 띠며 서로에게 등을 기대고 앉아(122쪽/늦가을)”라 노래하는 글줄을 봅니다. 《은빛 호각》(창비,2003)이라는 시집에 실린 싯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싯말을 찬찬히 곱씹고 호박꽃과 호박빛을 가만히 헤아리다가 ‘미소(微笑)’라는 낱말이 마음에 걸려 한참 생각에 잠깁니다. 시를 쓰는 예순 넘은 할아버지는 왜 ‘미소’라는 낱말을 싯말로 담았을까요. 책 만드는 일을 한 적 있는 할아버지는 왜 ‘미소’라는 낱말을 싯말로 그대로 남겼을까요.


  ‘미소’는 한자말입니다. 한자말 가운데 일본 한자말입니다. 이 낱말은 ‘웃음’이나 ‘빙긋 웃음’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들 얘기하지만, 막상 이처럼 올바로 바로잡는 사람은 퍽 드뭅니다.


  아무래도 ‘웃음’이라는 낱말로는 뜻이나 느낌이 살아나지 않겠다고 여겨 ‘미소’ 같은 낱말을 쓸는지 모릅니다. 어릴 적부터 ‘미소’라는 낱말을 둘레에서 익히 들었으니, 시를 쓰건 책을 엮건 말을 하건 이 낱말이 저절로 튀어나올는지 모릅니다. 요즈음에는 ‘생일잔치’라 말하지 않고 ‘생일파티’라 말하는 이가 무척 많은데다가, ‘생파’라고 줄여 말하기까지 한답니다. 한국사람이 쓸 한국말이면 마땅히 ‘잔치’이지만, 어른들부터 잔치를 누리지 않아요. 어른들부터 아이들과 함께 ‘파티’를 벌여요. 아이들은 아주 스스럼없이 ‘파티’라는 낱말에 길들어, ‘떡볶이잔치’ 아닌 ‘떡볶이파티’를 합니다. 짜장면을 먹을 때에도 ‘짜장면파티’가 되고, 김밥을 먹어도 ‘김밥파티’가 되고 말아요.


  어른들이 얼굴에 빙그레 웃음을 띠면 아이들도 얼굴에 빙그레 웃음을 띠겠지요. 어른들이 얼굴에 살며시 웃음을 비치면 아이들도 얼굴에 살며시 웃음을 비치겠지요. 방긋 웃는 어른이요 아이입니다. 발그레 웃는 어른이면서 아이입니다. 싱긋생긋 웃는 어른이기에 싱긋생긋 웃는 아이예요.


  이 나라 어른들은 웃음을 잃습니다. 어른들부터 웃음을 잃기에 아이들이 웃음을 잃습니다. 이 겨레 어른들은 웃음을 잊습니다. 어른들부터 웃음을 잊으니 아이들이 웃음을 찾기 어렵습니다.


  즐겁게 웃지 않고, ‘행복(幸福)한 미소’를 짓고, ‘해피(happy)한 스마일’을 띱니다. (4345.6.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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