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색잉꼬 2
테츠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하고 싶은 일
 [만화책 즐겨읽기 153] 데즈카 오사무, 《칠색 잉꼬 (2)》

 


  하고 싶은 일을 할 때에 즐겁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할 때에 안 즐겁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하루하루 누릴 때에 사랑스럽고, 하고 싶지 않으나 밥벌이나 돈벌이라서 놓지 못한다면 안 사랑스럽습니다.


- “잠깐, 비켜 줄래, 꼬마 아가씨. 사인은 못 해 줘. 난 대역이거든.” “선생님, 제자로 삼아 주세요!” (7쪽)
- “어떻게 여길 찾았지?” “온 도시의 호텔과 여관을 다 뒤져서. 선생님의 인상착의와 비슷한 손님이 있는지 물어 봤어요.” “저기 말이지, 난 선생도 아니고 스타도 아니야. 스타를 뒤쫓아 다닐 생각이라면 헛다리를 짚은 거야. 사람 잘못 봤다고.” “선생님의 무대를 보고, 온몸이 떨릴 정도로 감동했어요! 전 배우가 되고 싶어요.” (9쪽)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사진을 찍고, 아이들과 살아가며, 옆지기와 살림을 꾸리고, 자전거를 타는 한편, 시골에서 보금자리를 돌보고, 서재도서관을 꾸리며, 늘 풀숲과 멧자락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나는 내 삶대로 내 하루를 느끼고, 내가 느끼는 대로 온누리를 톺아보며, 온누리를 톺아보는 결이 고스란히 내 눈길과 손길로 돌아옵니다.


  무엇보다 책으로 놓고 보자면, 나는 내가 읽고픈 책을 읽어야 합니다. 읽어야 할 책을 읽을 수 없습니다. 읽고픈 책이 되어야 읽습니다. 아름답다 싶은 이야기를 다루든, 놀랍다 싶은 이야기를 다루든, 내 마음속에서 어느 책 하나 읽고프다는 꿈이 피어올라야 비로소 읽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책읽기란 ‘줄거리 읽기’가 아닌 ‘삶읽기’이기 때문에, 책을 읽으며 받아들인 좋은 넋은 고스란히 내 삶으로 스며들어, 내 꿈과 넋과 말이 새삼스레 거듭나도록 이끌어요. 어떤 책을 읽고 싶다 할 때에는, 오늘 내 삶을 한결 아름답거나 알차거나 빛날 수 있게끔 다스리고 싶다는 뜻이에요.


  읽고 싶지 않은 책은 읽을 수 없습니다. 쓰고 싶지 않은 글은 쓸 수 없습니다. 찍고 싶지 않은 사진은 찍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적잖은 사람들은 ‘직업’이라는 허울을 뒤집어쓴 채 돈을 벌며 집식구 먹여살린다는 뜻을 내세워 스스로 길을 잃곤 합니다. 이를테면, 직업사진가라든지 신문사 사진기자로 일하는 이들은 ‘사진을 늘 찍’지만, 스스로 가장 좋아할 만한 사진을 못 찍는 이가 너무 많습니다. 회사에서 바라는 사진, 주문한 손님이 바라는 사진, 신문사 편집장이나 사장이 바라는 사진 틀에 얽매이면서 ‘잘 팔릴 만하고 빈틈이 없으며 눈길 끌 만한 사진’으로 기울어져요. 즐겁게 찍는 사진이라거나 사진쟁이 삶을 밝히는 사진을 찍지 못해요.


  기자들이 쓰는 글이나 작가들이 쓰는 글도 이와 비슷해요. 스스로 마음으로 우러나오는 삶이 드러나는 글이 아니라면 글이라 할 수 없어요. 내 손가락 같은 글이요, 내 발가락 같은 글이고, 내 머리카락 같은 글이에요. 내 허파와 같은 글이며, 내 염통과 같은 글이고, 내 콩팥과 같은 글입니다. 남한테 보여주거나 읽히려는 글이 아니라, 스스로 내 삶을 밝히면서 빛내는 글이에요.

 

 


- “부잣집 아가씨라는 건가. 좋은 신분이군. 하지만 명배우는 돈이 있다고 되는 게 아니야. 의사라면 돈의 힘으로 될 수 있겠지만.” (10쪽)
- “남의 흉내만으론 무엇으로도 될 수 없어. 내가 프로 배우가 될 수 없는 것은 그 때문이지. 나는 왕부터 거지까지 여자든 아이든 노인이든 어떤 흉내라도 낼 수 있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배우라고 할 수 없어! 잉꼬나 앵무새처럼 … 흉내라도 감동은 시킬 수 있어. 하지만 너는 그렇게 되길 바라지 않아.” (16∼17쪽)


  누구나 스스로 하고픈 일을 할 때에 빛납니다.


  어느 나무나 스스로 맺고픈 꽃을 피워 열매를 맺고 씨앗을 낼 때에 빛납니다. 뽕나무는 오디를 맺습니다. 감나무는 감을 맺습니다. 능금나무는 능금을 맺고, 살구나무는 살구를 맺어요. 저마다 스스로 가장 빛날 만하며 좋아할 만한 꽃과 열매와 씨앗입니다. 포도나무는 배를 맺지 않아요. 배나무는 복숭아를 맺지 않아요. 복숭아는 모과를 맺지 않아요.


  장미가 더 예쁘지 않습니다. 민들레가 더 곱지 않습니다. 원추리가 더 맑지 않습니다. 호박꽃이 더 아름답지 않습니다. 솜다리가 더 그윽하지 않습니다. 모든 꽃은 저마다 가장 빛나는 무늬요 빛깔이며 결이고 냄새입니다. 탱자꽃은 탱자꽃으로서 가장 아름다우며 빛나요. 찔레꽃은 찔레꽃으로서 가장 어여쁘면서 맑아요. 콩꽃은 콩꽃으로서 가장 아리따우면서 향긋해요.


  사람은 숫자로 따질 수 없습니다. 사람은 주민등록번호 같은 숫자로 잴 수 없습니다. 사람은 은행계좌 길이로 살필 수 없습니다. 사람은 성적표 등수라든지 행동발달사항 점수로 매길 수 없습니다.


  사람은 오직 하나, 사랑으로만 생각할 수 있습니다.

 

 


- “이제부터는 너 혼자의 힘으로 노력하는 거야. 너라면 분명 10년 후에는 대스타가 되어 있을 거야.” (28쪽)
- “자, 덤벼 보게. 알겠나, 응. 진정한 배우는 자신의 훈련을 위해 검술, 승마부터 발레까지 습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라네.” (140쪽)


  나는 개구리 노랫소리를 좋아합니다. 지난겨울 된바람을 견디면서 봄철 개구리 노랫소리를 기다렸습니다. 마음속으로 개구리 노랫소리를 그렸습니다. 봄을 맞이해 여러 달째 보내며, 날마다 개구리 노랫소리를 마음에 담습니다. 아이 둘을 옆에 나란히 누여 재워 자장노래를 부르는 동안에도 귀로는 개구리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우리 집을 둘러싼 들판마다 거침없이 목청 높이는 개구리 노랫소리는 온 집안을 울립니다. 아이들은 아버지 자장노래에 개구리 노랫소리를 나란히 듣겠지요. 개구리 노랫소리는 아버지 자장노래를 뒷받침하는 결 고운 가락일 테지요.


  나는 들새 노랫소리를 좋아합니다. 지난가을에도 올봄에도 새벽부터 이듬날 새벽까지 쉬잖고 들새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까치이든 까마귀이든 좋습니다. 참새이든 노랑할미새이든 좋습니다. 왜가리이든 해오라기이든 좋습니다. 제비도 직박구리도 동박새도 모두 좋습니다. 들새 스스로 가장 빛나는 목청을 돋우면서 들려주는 노래가 아주 좋습니다.


  나는 이 고운 소리를 들으며 내 마음을 다스려요. 나는 이 고운 소리로 내 마음을 다스리면서 내 곁 고운 살붙이를 아끼고 싶어요. 내 목소리가 개구리와 닮다가는 또다른 개구리처럼 노랫소리 읊을 수 있기를 빕니다. 내 말소리가 들새와 닮다가는 새삼스러운 들새와 같이 노랫소리 종알거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 “후후, 일본은 신기한 나라군요. 증거만 없다면 나쁜 사람도 대낮에 활보하면서 살 수 있다니 말이죠.” “네, 정치가부터 재판관까지 도둑은 넘치니까요.” “우리 나라에서는 증거 같은 게 없어도 도둑은 바로 참수형이죠. 그래도, 일본은 좋은 나라예요. 누구든 자유롭고, 일본에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어떤 일을 하는 것도 자유겠죠. 일본으로 유학 온 나는 좋은 추억을 만들고 가요.” “고국으로 돌아가면 결혼을 하십니까?” “우리 나라에서는 말이죠, 아직 여자는 관습에 묶여서 자유가 없답니다. 좋아하는 연극도 아마 할 수 없겠죠. 이게 생에 마지막일 거예요.” (64∼65쪽)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책 《칠색 잉꼬》(학산문화사,2011) 둘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칠색 잉꼬’는 스스로 하고 싶어 연극을 합니다. 언제나 대역 배우로 그치는 연극 일이지만, ‘칠색 잉꼬’는 어릴 적부터 ‘대역’이 될밖에 없는 삶을 스스로 굴레로 짊어졌어요. 대역을 훌훌 털고 ‘주역이나 조역이나 단역’과 같이, 무대를 함께 빛내는 자리를 찾아가지 못해요.


  어쩌면, ‘칠색 잉꼬’로서는 스스로 가장 좋아하면서 가장 잘 할 수 있다고 여기는 대목이 ‘대역’이기 때문에 대역을 할는지 몰라요. 주역이나 조역이나 단역으로 얼크러지기보다는, 스스로 가슴이 불타오르는 때에 대역으로 살짝 찾아들어 녹아들다가는 다시 조용히 사라지는 삶을 사랑하는지 몰라요.


- “뭐야! 모처럼 내가 일부러 왔는데 도망가는 거야? 내 기분을 좀 알아주면 좋잖아, 이 둔탱아.” (135쪽)
- “아이들의 연극은 응, 어른들의 연극하고 달라서 어둠이나 우울함은 필요가 없는 거지, 응. 그 대신 영웅이 필요해. 아이들은 응, 영웅을 동경하고 있으니까. 피터 팬은 응, 강하고 마음 착한 소년이니까 말이지.” “그렇군요.” “자네는 저 아이들을 실망시켜선 안 돼, 응.” (143쪽)

 

 


  ‘칠색 잉꼬’는 슬픈 사람일까요. 어쩌면, 이이는 슬픈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슬픔에 젖고 스스로 슬픔에 갇히는지 몰라요. 그러나, 슬픔은 기쁨과 같습니다. 기쁨은 슬픔과 같습니다. 스스로 아끼는 삶이라 한다면, 기쁨이 되든 슬픔이 되든 좋은 벗님입니다.


  아픔을 먹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어요. 괴로움을 먹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어요. 웃음을 먹거나 이야기를 먹어도 좋을 텐데, 자꾸자꾸 고된 길로 나아가고야 마는 사람이 있어요.


  어느 모로 본다면 스스로 길을 못 느끼거나 못 찾거나 못 알아본다 하겠지요. 어느 모로 본다면 스스로 바라는 대로 살아갈 뿐이라 하겠지요.


  데즈카 오사무 님은 만화를 그릴 수 있으면 좋다고 여긴 한삶이었습니다. 전쟁통에도 가난에도 고단한 일더미에도 늘 만화를 그릴 수 있으면 좋다고 여긴 한삶이었으리라 느껴요. 그러니까 ‘칠색 잉꼬’가 되든, 한국땅 아무개가 되든, 스스로 가장 좋다고 여기는 대로 스스로 가장 좋다고 여기는 마을에서 살림을 꾸리리라 느낍니다.


  나로서는 자동차 소리와 배기가스가 싫어 자동차한테서 가장 멀찌감치 떨어질 만한 호젓한 시골에서 살붙이들과 오순도순 어울릴 수 있습니다. 나로서는 개구리와 들새랑 예쁘게 사귈 만한 한갓진 시골에서 살붙이들과 도란도란 삶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참말 하고픈 일을 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혁명을 이루고픈 이는 혁명을 이루며 살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옳다’거나 ‘바르다’거나 ‘좋다’거나 ‘아름답다’고 하는 일이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가장 ‘사랑하면서 즐기고 누릴’ 만한 일을 할 때에 활짝 웃고 빙그레 웃을 수 있다고 느낍니다. (4345.6.2.흙.ㅎㄲㅅㄱ)

 


― 칠색 잉꼬 2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학산문화사 펴냄,2011.11.25./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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