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없이 마땅하지만, 이 사진책은 여느 새책방에서 살 수 없고, 도서관에도 없습니다)

 

 

 


 전두환 대통령 사진은 ‘돈이 될’까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32] 한국연합광고, 《全斗煥 대통령》(문화공보부,1982)

 


  “‘世界 속의 韓國’을 向한 意志와 獻身”이라 하는 이름이 붙은 사진책 《全斗煥 대통령》은 문화공보부에서 펴냈습니다. 이 사진책에 사진을 넣은 사람들 이름은 따로 나오지 않습니다. 신문사 사진기자가 찍은 사진인지, 문화공보부 사진기자나 공무원이 찍었는지, 청와대 사진기자나 공무원이 찍은 사진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오래 묵은 사진은 헌책방으로 흘러들곤 합니다. 나는 아직 헌책방에서 ‘이승만 대통령 사진’을 구경해 보지 못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 사진이 헌책방에 나오면 이 사진도 퍽 돈이 될 만하다고 여길는지 어떠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헌책방을 다니다가 ‘김대중 대통령 사진’이라든지 ‘노무현 대통령 사진’이라든지 ‘이명박 대통령 사진’은 곧잘 구경합니다. 그런데 이 세 대통령 사진은 아직 돈이 안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들에 앞선 ‘김영삼 대통령 사진’도 돈으로 치지 않습니다. 누군가 달라 하는 사람이 없으면 폐휴지에 섞어 동네 할머니나 할아버지한테 드리면서 고물상으로 가져가도록 한답니다.


  그런데, 이 나라 숱한 대통령 가운데 ‘박정희 대통령 사진’이 헌책방에 흘러들면, 이 사진만큼은 제법 돈이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대통령으로 지낸 나날이 길 뿐더러, 정치 홍보 사진이 많은 터라 헌책방으로 흘러들 만한 사진도 많은데, 다른 어느 사람보다 박정희 대통령 사진만큼은 돈값이 쏠쏠하다고 합니다.


  1980년부터 1987년까지 대통령 노릇을 한 전두환이라는 분 사진은 어떤 값어치가 있을까 궁금합니다. 우표도감을 살피면,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세 분은 다른 어느 누구보다 자주 얼굴을 보여줍니다. 우리 옆나라에서도 이와 같다 하는데, 민주정권 아닌 독재정권을 꾸린 이들은 ‘우표에 얼굴을 자주 선보인다’고 해요. 이를테면, 북녘나라에서 정치권력을 거머쥔 분도 북녘 우표에 참 자주 얼굴을 선보여요. 다만, ‘우표에 얼굴을 자주 선보이는 정치 지도자는 독재자’라고 하는 이야기를 헤아린다면, 영국 여왕은 어떤 사람이라 할 만한지 알쏭달쏭하곤 합니다. 영국 우표에 영국 여왕 옆얼굴이 참 많이 나오거든요. 그 나라에서도 여왕이 독재자이기 때문에 우표에 자주 나타나는지, 아니면 다른 뜻에서 널리 우러르기 때문에 우표에 자주 나타나는지 아리송합니다.

 

 

 

 


  전두환이라는 분 뒤를 이어 대통령 자리를 지킨 노태우라는 분은 ‘기념우표에 꼭 한 번만 얼굴을 내밉’니다. 내가 한동안 우표를 곧잘 모았기 때문에 이 같은 얘기를 들었는지 모릅니다만, 1988년부터 대통령 자리를 물려받은 분은 ‘우표에 얼굴 자주 내미는 일은 독재정권 지도자나 하는 짓’이라는 소리를 듣고는, 이러한 ‘국민 목소리’를 귀담아들어서 딱 한 번만 얼굴을 내밀겠다고 밝혔다고 해요.


  사진책 《全斗煥 대통령》을 생각합니다. 이 사진책에서 대통령 이름은 한자로 적고 ‘대통령’은 한글로 적습니다. 문득 떠오르는데, 내가 국민학생이던 1982∼1987년에 ‘대통령 이름을 한자로 적을 줄 알아야 한다’는 숙제를 곧잘 받았습니다. 학교에서 으레 이런 짓을 숙제로 내주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世界 속의 韓國’을 向한 意志와 獻身”도 온통 한자투성이입니다. ‘세계 속의 한국’도 ‘의지와 헌신’도 아닙니다. 그예 한자 자랑입니다. 마치 오늘날 대통령이 영어 자랑을 하듯, 1982년 이무렵에는 한자 자랑을 드러냅니다.


  사진책 《全斗煥 대통령》을 넘기면, 미국 레이건 대통령을 만났다는 사진부터 지구별 수많은 나라 정치 지도자를 만났다는 사진이 가득합니다. 한국땅 대통령은 나라밖 수많은 정치 지도자한테 ‘훈장’을 달아 줍니다. 나라밖 정치 지도자보다 ‘키가 작은’ 한국 대통령이기에, 나라밖 정치 지도자는 한국 정치 지도자 앞에서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경제를 살리고 복지를 살찌우며 민주를 이루겠다는 세 가지 뜻을 밝힌다는 전두환 대통령이라 하는데, 사진책 《全斗煥 대통령》에 나오는 모습 가운데 95%는 나라밖 정치 지도자하고 손을 맞잡거나 푹신한 걸상에 다리 벌리고 앉아 웃는 모습입니다.


  틀림없이 누군가 사진을 찍었고, 틀림없이 누군가 책으로 묶었으며, 틀림없이 누군가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이 사진책을 비매품으로 널리 뿌렸으니까, 이 사진책은 스무 해를 흐르고 흘러 헌책방 책시렁에 꽂힙니다. 어쩌면 이 사진책은 앞으로 스무 해가 더 흐르도록 ‘애써 장만하는 사람’ 없이 먼지만 먹을 수 있으나, 어떤 쥐대기를 만나 조용히 사고팔릴 수 있어요.

 

 

 

 


  내가 떠올리는 전두환 대통령 사진으로는, 예전 〈중앙일보〉 사진기자였던 오동명 님이 찍은 ‘술에 절어 고래고래 소리지르던 모습’ 사진이 있습니다. 사진기자한테 필름 아끼라고 소리지르면서 2차이고 3차이고 더 술을 푸러 가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또렷이 떠올라요. 참 마땅한 노릇인데, 전두환 대통령도 노태우 대통령도, 또 박정희 대통령이나 이승만 대통령도 사람이에요. 게다가, 이들 모두 할아버지예요. 어여쁜 손자가 있겠지요. 사랑을 물려주고픈 아이들이 있을 테지요.


  그러면, 당신들은 이와 같은 사진책, 나라돈으로 찍고 나라돈 받는 공무원이 널리 퍼뜨린 《全斗煥 대통령》 같은 사진책을 당신 귀여운 손자한테 어떻게 보여줄 만할까요. 백 해나 이백 해쯤 흐른 뒤, 이 나라에서 살아갈 뒷사람은 이 사진책을 헌책방이나 도서관에서 들추며 무엇을 생각할 만할까요. 이 사진책 귀퉁이에 적힌 대로 ‘1980년대 대통령 전두환 씨는 나라를 지키고 살찌우며 일으킨 멋진 군인’으로 되새길 만한가요.


  아마, 앞으로 이백 해쯤 흐른다면, 전두환 대통령 사진도 이럭저럭 돈이 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온누리 모든 물건은 ‘나이를 먹으’면 돈이 된다 하니까요.


  그나저나, 1980년부터 1987년까지 전두환 대통령 곁에서 ‘대통령 사진’을 찍은 사람은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이들은 이동안 대통령 사진을 찍으면서 돈을 얼마나 벌었을는지 궁금합니다. 이들은 이무렵 대통령 사진을 찍으면서 사진밭에서 권력이나 권위를 내세웠을까요, 아니면 당신 이름을 숨겼을까요. 대통령을 비롯해 국회의원이나 이런저런 정치권력자 곁에서 사진을 찍은 이들이 제법 많을 텐데, 이들 이름은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사진을 찍으며 돈을 벌던 사진기자나 사진 공무원으로는 누가 있었을까요. 너무 배고픈 나머지 식민지 제국주의자 돈이든 독재정권 대통령 돈이든 어쩔 수 없이 받으면서 사진을 찍어야 했다 할 수도 있는데, 이런 사진 저런 사진을 찍던 그분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이분들은 오늘날 어떤 마음으로 사진기를 쥐며 당신 뒷사람한테 사진삶을 물려주는가요.

 

 


  1980년대에 전두환 대통령을 찍던 분은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마음이었을까요. 당신 사진이 묶여 사진책으로 태어났을 때에 당신 벗님들한테 ‘자, 보라구, 내 사진으로 이런 사진책이 나왔다구.’ 하면서 선물할 수 있었을까요. 독재정권을 휘두르는 자리에 있던 사람이랑 독재정권을 휘두르는 자리에 있던 사람 곁에서 사진을 찍던 사람은, 어떤 꿈을 꾸면서 사진기를 손에 쥐었을까요. 이분들은 사진 한 장에 사랑을 담을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아름다운 삶인 줄 조금이나마 헤아린 적 있을까요. (4345.5.29.불.ㅎㄲㅅㄱ)

 


― 全斗煥 대통령 (한국연합광고 엮음,문화공보부 펴냄,1982.12./비매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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