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촌 유학 - 제13회 미메이 문학상 대상 수상작
나카야마 세이코 지음, 서혜영 옮김 / 도서출판 문원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도시에는 숲이 있어야 해요
 [푸른책과 함께 살기 93] 나카야마 세이코, 《산촌 유학》(문원,2012)

 


- 책이름 : 산촌 유학
- 글 : 나카야마 세이코
- 그림 : 우메다 후지오
- 옮긴이 : 서혜영
- 펴낸곳 : 문원 (2012.2.29.)
- 책값 : 9000원

 


  학교가 처음 생긴 뒤부터, 무언가 배우려는 뜻을 품은 사람들은 학교가 있는 곳으로 찾아갑니다. 학교는 깊은 두멧자락 시골마을에도 서지만, 사람들이 조금 더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읍내나 도시 한복판에 서곤 합니다. 시골마을에는 자그마한 학교가 있다면 도시에는 커다란 학교가 있습니다. 시골마을에 대학교가 자리잡는 일은 드물지만, 도시에서는 대학교가 쉽게 생깁니다. 다른 나라가 어떠한가를 살피기 앞서 이 나라를 살피면, 한국에서 내로라한다는 대학교는 으레 서울에 몰립니다. 서울 바깥에는 ‘내로라한다는’ 대학교가 서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쉬 드나들거나 자주 찾아올 만한 도시에 학교가 서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극장도 책방도 도서관도 학원도 이것도 저것도 모두 도시 한복판에 서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둘레에서 으레 이렇게 말하기에 나 또한 어릴 적부터 이 같은 생각에 천천히 물들었습니다. 제아무리 좋다 하는 학교나 시설이나 기관이라 하더라도, ‘더 많은 사람이 쉽고 빠르게’ 찾아갈 만하지 않다면 부질없지 않겠느냐 여겼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더 많이 살아가는 도시라서 모든 시설과 학교가 도시에 모여야 할까요. 나부터 내 생각을 다스리면서 깨닫습니다만, 학교가 도시에 서야 할 까닭이란 없었구나 싶어요. 도서관도 박물관도 기념관도 체육관도 …… 어느 하나 도시에 서야 할 까닭이 없구나 싶어요. 도시에 무언가 서야 한다면 꼭 한 가지라고 느껴요. 바로 ‘숲’이라고 생각해요.


.. 오른쪽을 봐도 왼쪽을 봐도,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온통 초록이다. 초록색 사이로 시냇물이라기에는 조금 큰 물길을 따라 맑은 물이 흐르고, 드문드문 보이는 기와지붕도 모두 같은 초록색이다 … “낡은 집이지? 지은 지 백 년은 됐을걸.” 현관의 큰 미닫이문을 열면서 아줌마가 말했다. 그 집은 무척 낡아 보였다. 에어컨도 달려 있지 않은 옛날 집이다. 그럼에도 집 안 공기가 서늘한 것은 지붕이 크고 천장이 높기 때문일까? … 별이 이렇게 밝게 빛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어쩐지 딴세상에 온 것 같았다. 일본은 어디나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소리, 냄새, 색깔, 빛, 바람…… 여기는 내가 사는 곳(도쿄)과는 완전히 다르다 ..  (7, 22, 26쪽)


  도시에는 다른 시설이나 기관은 한 가지도 없어도 되리라 느낍니다. 도시에 대학교뿐 아니라 박물관이나 기념관 또한 한 곳도 없어도 되리라 느낍니다. 그러나, 도시에 숲이 없다면, 나무그늘과 들판이 없다면, 논이랑 밭이 없다면, 냇물이랑 골짜기랑 멧자락이 없다면, 이런 데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도시에 사람들이 많이 몰린 까닭은 학교 때문이 아닙니다. 돈 때문입니다. 먼먼 옛날부터 어느 나라에서든 도시가 이루어지는 까닭은 돈이 모이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은 돈 때문에 도시를 만듭니다. 어른들은 돈을 거머쥐려고 도시를 더 크게 키웁니다. 이렇게 어른들이 웅성웅성 모여 돈벌이를 하다가 남녀가 짝을 지어 아이를 낳고, 아이를 낳다 보니 수많은 아이들을 가르칠 겨를이 없습니다. 시골에서는 어버이와 아이가 숲과 들과 바다에서 함께 뒹굴며 서로 가르치고 배우지만, 도시에서 어버이 자리에 설 어른들은 돈을 버느라 바빠요. 언제나 돈을 벌고 늘 돈을 생각합니다. 도시에서 돈을 버는 어른들은 아이들하고 하루 내내 복닥이거나 뒹굴면서 삶을 가르치고 배우는 흐름을 읽지 못해요.


  곰곰이 따지면, 학교는 시골에 서야 올바르지만, 시골에서는 따로 학교라는 울타리가 없어도 됩니다. 도시는 학교가 설 만한 터가 아니지만, 도시 어른들은 아이들을 즐거이 가르치고 아이들한테서 스스럼없이 배울 짬이 없는 나머지, 따로 학교를 세웁니다. 따로 세운 학교에 아이들을 넣고, 아이들한테 삶 아닌 지식을 물려줄 어른을 새로 전문직업인으로 키웁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전문직업인 자리에 설 어른한테서 삶을 배운다면 이 아이들은 ‘돈만 벌 뿐 삶을 가르치지 못하는 어버이’ 곁을 금세 떠나거든요. 삶을 배울 수 없는 어버이한테서는 사랑을 배우지 못합니다. 삶을 들려주지 못하는 어버이한테서는 꿈을 듣지 못합니다. 삶을 보여주지 않는 어버이한테서는 이야기를 얻지 못합니다.


.. 재밌는 건 학생수가 적어서 교장 선생님이 전교생의 얼굴을 모두 알고 있다는 것, 아이들을 부를 때도 별명으로 부른다는 것이다 … 우리 (도쿄) 학교에서는 다른 학년과는 사이가 좋아지는 일이 없다. 그런데 여기서는 학년이 다른 건 크게 상관이 없는 모양이다. 2학년 아이가 (5학년) 아키라를 친구처럼 그냥 “아키라!” 하고 불렀고 … 인원수가 적어서 여자아이들과 저학년 아이들도 함께 시합을 했다. 저학년이 들어오면 공의 힘이 약하거나 패스를 해도 공이 제대로 안 가서 좀 헤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런 데에는 이미 익숙한 듯, 그렇다고 저학년 아이를 빼놓고 시합을 하지는 않았다 ..  (22, 40∼41쪽)


  도시에는 책방이 없어도 됩니다. 도시에서 돈벌이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책방에 찾아가서 마음을 살찌우는 책을 읽을 겨를이 없으니까요. 도시에서 돈벌이 일에 매인 사람으로서는 책방으로 나들이를 하면서 마음을 착하고 환하게 빛낼 책을 끌어안을 틈이 없으니까요.


  도시에는 책방이 많아도 오늘날 도시사람은 책방마실조차 안 합니다. 인터넷으로 책을 삽니다. 인터넷으로 처세책과 자기계발책과 문학책과 인문책만 사다 읽습니다. 정작 삶을 밝히는 책은 사다 읽지 못하고, 애써 삶을 밝히는 책을 사다 읽어도 ‘이야기를 느낄 가슴’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 도시사람은 삶을 밝히는 책을 읽으면서도 삶을 못 느끼고 말까요.


  돌이키면 나부터 지난날 도시에서 살며 이와 같았다 할 텐데, 도시에는 숲이 없기 때문에 숲넋을 삶으로 아로새기지 못합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며 숲을 끌어안고 숲을 아끼며 숲을 어깨동무하는 매무새일 때라야 비로소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숲을 모르면서 책을 읽지 못합니다. 숲하고 사귀지 않으면서 책을 사귀지 못합니다. 숲을 사랑하지 않을 때에는 책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도시에는 다른 무엇보다 숲이 있어야 합니다.


.. 일어나자마자 집안일을 도우라니, 이건 또 뭐야! 야채 주스를 마시면서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밥이 나오는 게 아침이잖아? 집안일을 돕다니! …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이를 잃은 할머니에게는 아직도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거야. 지금도 때때로 꿈속에서 그 아이를 찾고 계신단다.” 등을 둥글게 웅크린 채 흐느끼는 할머니의 모습이 어둠 속에서 희뿌옇게 보였다. 잠이 완전히 깨고 말았다. 이부자리로 돌아왔지만 도저히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희생자 몇 명, 사망자 몇 명, 매일처럼 흘러나오는 텔레비전 뉴스나 신문의 글자. 하지만 숫자로는 아무것도 전할 수 없다. 사람을 숫자로 나타내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  (29, 102∼103쪽)


  숲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삶을 누리지 못합니다. 숲을 누리지 못하는 오늘날 도시사람은 삶을 누리지 못합니다. 다만, 도시에 가득한 돈을 누립니다. 도시에 넘치는 돈으로 값싸거나 값비싼 놀음놀이에 빠져듭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즐거운가를 생각하지 못하고, 어떻게 돈을 써야 할까를 따집니다. 어떻게 사랑할 때에 기쁜가를 헤아리지 못하고, 어떻게 돈을 굴릴까를 살핍니다.


  ‘산촌 유학’이란, 곧 ‘시골 배움마실’이란, 숲을 잃거나 잊은 도시에서 생각을 잃거나 잊고 싶지 않은 어른들이 당신 아이들한테 생각을 일깨우고 사랑을 보여주며 꿈을 들려주고 싶은 가느다란 끈과 같다고 느낍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며 이마저 하지 못한다면 아이한테나 어버이한테나 아름다운 삶 한 자락 누릴 수 없겠다고 여기며 함께하는 ‘학교’라고 느낍니다.


  이제 시골에서 도시로 떠날 아이들은 거의 다 떠났습니다. 앞으로도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갈 아이들은 이럭저럭 있기는 한데, 머잖아 이 아이들은 몽땅 도시로 갈는지 모릅니다. 거꾸로, 도시에 몰린 채 삶이 아닌 지식에 허덕이며 사랑 아닌 정보에 둘러싸인 채 파리해지고 쓸쓸해지는 아이들이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갑니다. 흔히들 ‘귀농’이나 ‘귀촌’을 말하는데, 이제야말로 시골로 가지 않고서야 사람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여길밖에 없습니다. 도시에 남는다 하더라도 끼니를 이으며 돈을 벌 수 있겠지요. 도시에서는 돈벌이가 끊이지 않을 테니까, 어떡해서든 이웃나라하고 무역을 하며 공산품을 내다 팔아 먹을거리를 사들이면 밥은 먹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참말 어른도 아이도 사람답게 살아남고 싶다면, 아니 사람답게 살아가고 싶다면,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갈밖에 없습니다.


.. “응, 그랬어. 하지만 나랑 아키라 오빠는 굉장히 기다렸어. 케이 오빠가 오는 거.” 나나는 나를 보면서 뒷걸음질 치며 걸었다. “왜?” “그냥…… 그게 그러니까, 친구가 생기는 건 기쁜 일이잖아!” …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엥? 그런데 그게 무슨 말이에요! “하지만 여름이 끝나면 말라 버리지. 다른 꽃들도 겨울이 되면 말라 버려서 어디에 있었는지조차 모르게 돼. 눈 아래에 묻히고 나면 다시는 꽃이 피지 않을 것 같지. 하지만 봄이 됐는데 꽃이 안 핀 적이 있니?” ..  (35, 89쪽)


  천천히 생겨 천천히 퍼지는 산촌 유학입니다. 시골살이를 하나도 모르는 채 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편의점과 유흥시설과 텔레비전과 전자제품에 익숙합니다. 도시 아이들뿐 아니라 도시 어른들은 전철도 버스(도시처럼 자주 많이 다니는 버스)도 비행기도 없는 시골에서 어떻게 지내야 하는가를 알지 못합니다. 자가용 없이 다니는 길, 두 다리로 걸어서 다니는 길, 온몸을 움직여 살아가는 나날을 알지 못합니다.


  도시에서는 그야말로 몸 한 번 움직이지 않아도 밥을 먹고 옷을 입으며 잠을 잡니다. 돈이 있으면 도시에서는 내 몸이 뚱뚱해지건 말라비틀어지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돈만 있으면 도시에서는 내 삶이 어떻게 뒤틀리거나 비틀리거나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시골에서도 돈만 있으면 다 될까요. 시골에서도 돈만 있으면 아무 걱정거리가 없을까요. 시골에서도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지낼 만할까요.


.. 친구들과 함께 채소를 거두기도 하고, 논밭의 김매기를 돕기도 했다. 맨발로 흙 위에 서면 부드럽고 근질거리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 엄마는 슈퍼에서 사는 채소가 비싸다, 비싸다, 불평하곤 했지만, 출하까지 이렇게 품이 많이 드니 어쩔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모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버스에 올라타려는데, 할머니의 감자 같은 손이 내 등에 닿았다. “언제든지 돌아오렴.” ..  (43, 59, 141쪽)


  나카야마 세이코 님이 빚은 푸른문학 《산촌 유학》(문원,2012)을 읽습니다. 이 문학책은 푸름이가 읽도록 쓴 이야기인데, 푸름이 가운데에서도 시골 아닌 도시에서 살아가는 푸름이가 읽도록 썼습니다.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이 책을 읽을 일이 아예 없지는 않겠으나, 이 책을 읽을 아이라면 도시에서 도시살이에 젖은 채 지내는 아이라고 느낍니다. 그런데, 도시 아이들이 이 책을 즐겁게 뽑아들어 읽을까 모르겠습니다. 도시 아이들은 도시에서 누리는 갖가지 놀음놀이를 들려주는 이야기책을 읽지, 시골마을 나들이 이야기를 읽을까요. 도시 아이들 가운데 스스로 깨우치거나 깨달아 도시를 떠나려 하는 아이가 있을까요. 도시 아이들 가운데 교사나 어버이가 이 책을 건네기 앞서 스스로 알아보거나 알아채어 기쁘게 읽어 제(푸름이) 삶을 고치려고 땀흘릴 아이가 있을까요.


  틀림없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틀림없이 도시 삶이 어딘가 비틀리렸다고 느낄 푸름이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틀림없이 입시지옥과 제도권교육과 사회제도 모두 어딘가 튀들렸다고 느낄 푸름이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한 사람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뜻을 되새길 도시 푸름이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한 목숨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빛을 톺아볼 도시 푸름이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한 사랑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꿈을 보듬을 도시 푸름이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제 어버이와 교사를 이끌고 도시를 떠나자고 씩씩하게 외치며 시골 삶을 찾아 빛·꿈·사랑을 일구려 할 도시 푸름이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4345.5.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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