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외버스 텔레비전 책읽기

 


  시외버스에 붙은 텔레비전에 역사연속극이 나온다. 역사연속극은 어느 해 어느 역사를 보여주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칼과 창과 활을 갖춘 사내들이 서로 죽이고 죽는 모습이 끝없이 이어진다. 곰곰이 생각한다. 역사연속극이나 역사영화라 이름을 붙이며 보여주는 모습이란 으레 ‘싸움’이고 ‘죽임’이며 ‘칼부림’이다. 지난날 사람들은 늘 싸우고 언제나 죽이며 노상 칼부림을 했다는 소리인가 궁금한데, 연속극이나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든 연속극이나 영화를 보는 사람이든 이 굴레에서 헤어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초·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란 그저 땅빼앗기 역사이다. 어느 해 어느 임금이 나라땅을 어느 만큼 넓혔고, 어느 해 어느 임금이 나라땅을 어느 만큼 잃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아이들이 달달 외워 시험문제 잘 맞추도록 이끈다.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궁금해 하지 않는다. 땅빼앗기가 역사가 될 만한가 아닌가를 깨달으려 하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내 할머니 할아버지가 임금님들 쓸데없는 싸움짓에 휘둘리며 피를 흘려야 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얼마나 많은 내 할머니 할아버지가 임금님들 궁궐을 짓고 성곽을 쌓느라 집과 고향 잃은 채 서울 언저리에서 눈물을 흘려야 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임금님 수라상은 역사일까. 임금님 으리으리한 옷은 문화일까. 임금님을 둘러싼 신하들과 심부름꾼들은 사회일까.


  아이들과 함께 탄 시외버스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역사연속극은 온통 죽이고 죽는 외침과 목소리뿐이다. 아이들이 이런 연속극이나 영화를 볼 때에 역사를 생각할 수 있을까. 역사라 할 때에는 이렇게 죽이고 죽여야 역사가 된다고 생각해야 옳을까.


  학자들은 임금님 밥상이나 옷차림이나 살림살이를 옛 신하들이 남긴 책을 살피고 유물과 유적을 캐내어 되살린다고 한다. 그런데, 학자들 가운데 이 나라 98%를 넘게 차지하던 여느 흙일꾼 밥상이나 옷차림이나 살림살이를 적바림하거나 되살리거나 알아보려 하는 몸짓을 보여주는 이는 없다. 옛날뿐 아니라 오늘날 여느 흙일꾼 밥상이나 옷차림이나 살림살이를 오늘날 학자들은 얼마나 잘 읽거나 헤아리거나 살필까.


  아이랑 쌀보리 놀이를 한다. 내가 아이랑 하는 쌀보리 놀이는 언제 누구부터 했는지 알 길이 없다. 아이하고 가위바위보를 한다. 내가 아이랑 하는 가위바위보는 언제 누구부터 했는지 알 노릇이 없다. 왜냐하면, 역사책이나 문화책이나 사회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하나도 안 적히니까. 다만, 곰곰이 생각을 기울인다. 내 어버이를 생각하고 내 어버이를 낳은 어버이를 생각한다. 하나하나 되짚으며 먼먼 옛날 한아비 삶과 놀이를 생각한다. 생각을 좇고 생각을 밝히다 보면, 뿌리를 알고 줄기를 알며 잎사귀와 꽃봉우리를 알 수 있겠지. (4345.5.7.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