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와 통하는 윤리학 - 함규진 선생님이 들려주는 윤리와 도덕 이야기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6
함규진 지음, 스튜디오 돌 그림 / 철수와영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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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리·도덕·예의, 착함·참됨·고움
 [푸른책과 함께 살기 92] 함규진, 《10대와 통하는 윤리학》(철수와영희,2012)

 


- 책이름 : 10대와 통하는 윤리학
- 글 : 함규진
- 그림 : 돌 스튜디오
- 펴낸곳 : 철수와영희 (2012.4.19.)
- 책값 : 11000원

 


  1988년부터 1990년까지 다닌 중학교에서 ‘도덕’ 과목을 배웠습니다. 1991년부터 1993년까지 다닌 고등학교에서 ‘철학’과 ‘국민윤리’ 과목을 배웠습니다. 교사들은 우리를 바라보며 “너희는 도덕을 배우면서도 도덕적이지 않다”고 말하기 일쑤였고, “국민윤리를 배우면서 윤리를 지킬 줄 모른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이런 말을 들으며 교사들한테 대꾸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무렵 교사한테 대꾸 한 마디 할라치면 뺨따귀를 올려붙이거나 몽둥이로 등짝 머리통 허벅지를 마구마구 두들겨팼기 때문입니다.


  1982년부터 1987년까지 다닌 국민학교에서는 ‘바른생활’ 과목을 배웠습니다. 교과서에 실린 이야기는 하나같이 옳고 바른 길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우리한테 이런 ‘옳고 바른 길’을 가르치는 교사 스스로 옳고 바른 모습을 보여주었다고는 느끼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학교에서는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도록 닦달하고 새마을청소를 시키며 제식훈련과 교련 따위로 우리들 가슴에 군국주의 넋이 스며들도록 내몰았어요.


.. 윤리가 왜 유익할까? 어떤 단체든, 사람이 모여서 만들어진 단체는 질서를 잡기 위한 규칙이 있어야 해 … 법에 앞서 도덕이 있어야 그 사회가 건강해질 수 있고, 그러기에 도덕에 근거해서 행동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윤리가 필요한 거란다 …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주어지는 간섭과 통제, 참 힘든 문제지 … 윤리학적으로 보면, 이것은 전에 말한 윤리의 정신에서 배려가 너무 지나친 경우라고 볼 수 있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너무 큰 나머지, 그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게 되는 거지 ..  (16∼17, 34쪽)


  고등학생이던 때, 국민윤리 교사한테 한두 차례쯤 여쭌 적 있습니다. 윤리나 도덕이나 철학이란 ‘착한 삶’을 말하려 하지 않느냐고. 그러나 마땅하다 싶은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습니다. 오직 대입시험을 잘 치르는 일 하나와 중간·기말시험에서 내신성적이 잘 나오도록 하는 데에 마음을 쏟으라는 이야기만 듣습니다.


  나는 혼자서 생각합니다. 착하게 살고 참답게 살며 곱게 살아갈 때에 아름답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바른생활이든 도덕이든 국민윤리이든 철학이든, 동양철학이든 서양사상이든 하나도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좌파가 되든 우파가 되든 무슨 보람이 있을까요. 중도가 되든 극좌나 극우가 되든 무엇이 대수로울까요. 어느 갈래인가를 묻지 않으면서 가장 아름답게 내 삶을 꾸릴 때에 가장 즐겁게 누리는 날이 아닐까요.


  동무들은 거의 모두 책상에 엎드려 자던 고등학교 교실에서 나는 엎드려 자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국민윤리와 철학 과목을 귀기울여 듣지 않습니다. 나는 혼자서 생각에 잠깁니다. 내가 가장 착하게 살아가고 참다이 살림을 꾸리며 곱게 사랑할 길은 어떠한 모습일까 하고 꿈을 꿉니다.


  알맞춤하다 싶을 만한 땅을 얻어 스스로 흙을 일구어 밥과 옷과 집을 마련할 때에 가장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삶이 되리라 느낍니다. 그런데, 나는 흙일을 배운 적 없습니다. 흙일을 가르치는 어른이 없습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며 도시 인문계 학교를 다니며 대학시험에 목매다는 학생으로서, 도무지 흙일을 어떻게 해야 좋을까를 헤아리지 못합니다.


  대학교에 가면 흙일을 가르쳐 줄까. 나 혼자 시골마을로 찾아가서 배울 수 있을까. 논밭은 어떻게 마련하지. 논밭을 일구는 동안 밥은 어떡하나.


  혼자서 생각에 잠기고 꿈을 꾸지만, 이런 걱정 저런 근심이 뒤따릅니다. 국민학교 여섯 해와 중학교 세 해에 이어 고등학교 세 해에 다시금 제도권교육에 길들여지면서, 아름다이 꿈꾸며 즐거이 살아가는 일보다, 이런 논리 저런 이론을 앞세워 걱정과 근심을 쌓는 데에 더 마음이 기울어집니다.


.. 그런데 이상하잖아? 지식보다 함께 사는 법, 윤리적 생활방식을 배워야 하는 학교에서 왜 전보다도 더 비윤리적인 일들이 그토록 자주 일어나는 거지? 학교를 윤리적으로 비람직한 공동체로 만들려면 학생들의 주체적인 노력이 필요한 건 아닐까? 선생님들도 옛날이 좋았다는 타령만 늘어놓지 말고, 좋은 대학 보내는 일에 급급해 하지 말고, 학생들이 훌륭한 가치관을 정립하게 하게끔 도와야 하는 게 아닐까? … 전쟁 덕분에 발전한 기술은 ‘목적’조차 아니지. 그저 ‘부수적 효과’일 뿐이지. 로켓이나 인터넷을 개발하려고 전쟁을 벌인 건 아니잖아? ..  (61, 130쪽)


  함규진 님이 쓴 《10대와 통하는 윤리학》(철수와영희,2012)이라는 푸른책을 읽는 동안 지난일이 떠오릅니다. 학교에서 이만 한 깊이와 너비로 바른생활·도덕·국민윤리를 가르치려 했으면 생각이나 삶이나 꿈이 꽤 달라질 수 있었겠다고 느낍니다. 학교에서는 적어도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조차 들려주지 못했습니다. 아니, 학교는 이와 같은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를 안 다루거나 멀리하도록 내몰았습니다.


  학교는 아이들을 입시기계가 되도록 몰아붙입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푸른 넋 푸른 꿈을 키우지 못하도록 해야, 이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마치고 나서 기꺼이 군대에 들어가 젊은 넋 젊은 몸을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푸른 사랑 푸른 살림을 살피지 못하도록 해야, 이 아이들이 공무원이나 회사원이 되어 돈벌이하는 일에만 매이도록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책이 교과서보다 넓고 깊게 생각을 담는다 하더라도 이론 이야기와 논리 이야기 테두리에서 벗어나지는 않아요. 교과서보다 이론을 넓게 살피고 논리를 깊이 들여다본다 하더라도 이론이랑 논리 울타리에서 맴돌기는 서로 엇비슷해요.


  스스로 빚는 생각을 엿보지 못합니다. 스스로 누리는 좋은 마음을 깨닫지 못합니다. 교사이든 교사 아닌 사람이든, 책을 많이 읽고 학교를 오래 다녔으며 나라밖으로 배우러 다녀오기까지 한다지만, 그닥 윤리·도덕·예의를 지킨다고 느끼기 어렵습니다. 훌륭하다는 책을 많이 읽었다거나 대단하다는 학교를 마쳤다 하지만 막상 착함·참됨·고움을 빛내지 못하는구나 싶어요.


.. ‘제 앞가림 못 하는 어른들’ 대부분이 이처럼 청소년기에 ‘도야’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방치되거나 야만적인 억압에 시달렸던 사람들이란다 … 오국이 스스로 의지와 결단으로 국가에 충성한다면 윤리적으로 잘못을 찾기 어렵지만, 누군가가 그런 생각을 오국이에게 주입한 것이라면 결코 옳다고 볼 수 없으니까 … 아렌트가 본 아이히만은 피에 굶주린 야수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거든. 그러나 그런 사람이 광기에 찬 체제의 하수인이 되면,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악행을 저지르게 된다는 거야 ..  (79, 100, 140쪽)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신문읽기도 배웁니다. 신문을 제대로 읽는 길을 익힙니다. 그렇지만, 막상 스스로 ‘신문쓰기’를 하지는 못합니다. ‘제도권 신문 틀’에 맞게 학급신문이나 학교신문을 만들기는 하지만, 아이들 스스로 ‘아이인 내 삶’을 아끼고 사랑하는 이야기를 담아 내 나름대로 내 꿈을 펼치는 ‘내 신문’을 빚도록 돕거나 이끌지 않아요.


  아이들한테 권장도서나 추천도서를 읽히고 독후감 숙제를 하도록 몰아세우는 어른들입니다. 아이들 스스로 ‘저마다 마음과 몸에 알맞다 싶은 책’을 스스로 느끼며 찾도록 북돋우지 않습니다. 아이들 스스로 도서관·새책방·헌책방 나들이를 즐기면서 독후감 숙제나 대학입시에서 홀가분한 채 마음닦기를 거드는 책을 찾아 읽도록 살찌우지 않아요. 더 생각한다면, 아이들 스스로 ‘내 삶을 내가 손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진을 찍어 엮는 책’을 짓도록 일깨우지 않아요. 무엇보다, 어느 책이든 내가 꾸리는 삶이 밑바탕이 되어 태어나는 줄 찬찬히 들려주지 못해요.


  학교급식은 얼핏 보면 평등한 교육 문화입니다. 그러나, 학교급식이라는 굴레로 다 다른 아이들 다 다른 몸 다 다른 입맛을 다 똑같이 맞춥니다. 가장 좋은 밥을 학교에서 마련해 준다고 하지만, 다 다른 아이들 삶을 살필 수 없는 학교급식입니다. 어느 아이는 고기를 먹을 수 있을 테지만, 어느 아이는 고기를 먹을 수 없습니다. 어느 아이는 소젖을 마실 수 있을 테지만, 어느 아이는 소젖을 마실 수 없습니다. 달걀이나 치즈나 기름이 안 맞는 아이가 있습니다. 밀가루나 유산균이 안 맞는 아이가 있습니다. 채식이라 해서 다 같은 채식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곰곰이 짚을 대목이 있는데, 풀을 먹는 소한테 고기 성분 깃든 사료를 주면 소가 미쳐요. 고기를 안 먹는 아이한테 고기 반찬을 내주는 일이란, 고기를 썰어 넣고 끓인 카레를 주는 일이란, 소한테 고기를 먹이는 일하고 똑같아요. 밀가루나 유산균이 몸에 안 받는 아이한테 국수나 김치나 냉면이나 동치미를 먹으라 하는 일이란, 갈매기한테 새우깡을 먹이며 내장을 망가뜨리는 일하고 같아요.


  아이들한테 가르친다는 윤리란 무엇일까요. 아이들한테 들려준다는 도덕이란 무엇인가요. 아이들한테 다그치는 예의란 무엇이려나요.


.. 우리는 스스로 마음에 비추어,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을 아름답게 여기고 있지. 그 느낌을 느낌으로 끝내지 않고 남을 돕는 일은 옳은 일이야 ..  (119쪽)


  《10대와 통하는 윤리학》이라는 책을 생각합니다. 초·중·고등학교에서 쓰는 교과서란 참 부질없다고 느낍니다.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교과서 지식을 외우도록 한대서 아이들은 착함·참됨·고움하고 사귈 수 어려우리라 느낍니다. 그러나, 학교에서 교과서 지식을 외우도록 한다면 윤리·도덕·예의라 하는 지식을 집어넣을 수 있겠지요.


  착하게 살아가는 길 아닌 윤리를 따지는 일을 생각하도록 이끕니다. 참다이 살림하는 길 아닌 도덕을 찾는 일을 생각하도록 이끕니다. 곱게 사랑하는 길 아닌 예의를 살피는 일을 생각하도록 이끕니다.


  그렇다고 《10대와 통하는 윤리학》이라는 작은 책 하나에 이 모두를 어우르는 사랑과 꿈과 이야기를 담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이 작은 책 하나는 대한민국에서 제도권학교에 다니며 입시지옥에 시달리며 대학바라기를 해야 하는 아주 많은 아이들이 교과서 윤리와 도덕과 예의 울타리에서 홀가분하게 지내는 넋을 보듬으려 할 뿐이니까요.


  삶을 바꾸고 싶으면 넋을 바꿀 노릇이고, 넋을 바꾸고 싶으면 말을 바꿀 노릇이며, 말을 바꾸고 싶으면 삶을 바꿀 노릇입니다. 학벌사회를 고치고 싶으면 나부터 학벌하고는 홀가분하게 살아가면 됩니다. 가부장사회를 뜯어고치고 싶으면 나부터 서열이나 돈이나 직장을 내세우며 집일하고 등지는 매무새를 뜯어고치면 돼요.


  윤리에 앞서 착한 삶이에요. 도덕에 앞서 참된 넋이에요. 예의에 앞서 고운 말이에요. (4345.4.2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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