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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루의 양말 - 앙-앙 3 ㅣ 앙-앙 시리즈 3
세나 게이코 지음, 김난주 옮김 / 비룡소 / 2000년 3월
평점 :
절판

온 우주를 담는 살뜰한 사랑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55] 세나 게이코, 《루루의 양말》(비룡소,2000)
세나 게이코 님 그림책 《루루의 양말》(비룡소,2000)을 들여다보는 아이는 싱글싱글 웃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제 또래 아이가 양말 한 짝을 잃고는 허둥지둥 찾는 모양새를 재미있게 들여다봅니다. 우리 집 첫째 아이도 그림책 아이마냥 양말을 아무 데나 벗어 던지기에 제 짝을 못 찾기 일쑤입니다. 참말 양말을 곱게 ‘벗어 두는’ 일이 없어요. 게다가 짝양말 신기를 좋아합니다. 한쪽에는 요 양말을 신고 다른 한쪽에는 조 양말을 신습니다. 자꾸자꾸 새 양말을 꺼내 신습니다. 한 번 신고 한참 놀다가는 다른 양말을 신고 또 한참 놀고, 다시금 새 양말을 신고 거듭 한참 놉니다.
.. 루루가 양말을 잃어버렸대. 아이 참, 어디 간거지 .. (2쪽)

마실을 다닐 때마다 양말 때문에 어수선을 피우기 싫어, 아이 양말을 아이 손이 안 닿는 좀 높은 곳에 올려둡니다. 그러나 아직 짝을 못 찾은 양말이 있습니다. 첫째 아이는 곧잘 동생 양말을 신으며 놉니다. 동생 양말이라고는 하나, 가만히 따지면 첫째 아이가 더 작은 아이였을 때에 신던 양말입니다. 옳게 동생 양말이라고만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신고 누나가 신던 양말은 누나인 첫째가 맨 처음 신던 양말이 아니라 다른 언니나 오빠가 신다가 물려준 양말이기도 합니다. 아주 새 양말도 있으나 물려받은 양말이 꽤 있어요.
나는 두 아이와 살아가기 앞서 미처 깨닫지 못하거나 돌아보지 못하거나 헤아리지 못한 대목이 아주 많습니다. 어쩌면 두 아이와 살아가며 날마다 새롭게 배우고 언제나 새삼스레 배우지 않나 싶어요. 나도 이 아이들처럼 어렸을 적에 양말이며 옷가지이며 아무렇게나 팽개치곤 했겠지요. 내 양말 내 옷 하나 옳게 간수하지 못하던 어린 나날을 보냈겠지요. 내 어머니가 나 때문에 얼마나 애먹었을까 하고 떠올립니다. 내 어버이가 나 때문에 얼마나 고단했을까 하고 되새깁니다. 우리 형이 나 때문에 얼마나 속썩였을까 하고 헤아립니다.
.. 아까 낮잠 잘 때 벗어 두었는데 정말 어디 간 거지 .. (4쪽)

아이들과 복닥이는 하루하루는 놀라운 사랑이라고 느낍니다. 찌푸린 어머니 아버지 얼굴에 웃음으로 꽃이 피도록 이끕니다. 슬프거나 고단하거나 힘겨운 어버이 어깨를 조물딱조물딱 풀어 주는구나 싶어요.
개구진 몸짓이든 앙증맞거나 귀여운 모습이든, 아이들은 고운 이야기 서린 살뜰한 사랑을 들려줍니다. 잃어버린 양말 한 짝 때문에 여러모로 번거롭게 하지만, 참 아이답습니다. 참 아이답게 놀고, 참 아이답게 뛰며, 참 아이답게 살아갑니다. 아이들은 한쪽 발에 양말을 안 신어도 예쁩니다. 아이들은 두 발 모두 맨발이어도 예쁩니다. 짝양말을 신어도 예쁩니다. 아예 짝신을 신어도 예뻐요.
생각해 보면,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짝양말을 신을 만합니다. 짝신을 신어도 됩니다. 짝옷을 입어도 될 테지요.
옷차림이야 어떠하든, 마음이 사랑스러울 때에 사랑스러운 사람인걸요. 옷맵시야 어떠하든, 넋이 아름다울 때에 아름다운 사람이에요. 입성이야 어떠하든, 꿈이 빛날 때에 빛나는 사람입니다.
아이도 어른도 사랑스럽고 아름다우며 빛날 때에 더없이 즐거우면서 멋진 나날을 누린다고 느껴요.
.. 아님, 지금쯤 어디서 울고 있을까 .. (20쪽)


아무렇게나 벗어 던지는 바람에 짝을 잃고 버려진 양말 하나는 틀림없이 어디에선가 울겠지요.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어른이라면 우리 둘레 누군가는 틀림없이 어디에선가 울 테지요. 아무렇게나 생각하거나, 아무렇게나 돈벌거나, 아무렇게나 일한다면, 바로 이런 우리 어른들 매무새 때문에 우리 이웃 누군가는 틀림없이 어느 구석에 쪼그려앉아 훌쩍훌쩍 눈물을 삼킬 테지요.
권정생 할아버지가 쓴 〈강아지똥〉을 읽으면, 시골 흙일꾼 아저씨는 ‘미처 모르고 떨어뜨린 당신 밭뙈기 흙 한 덩이’를 되찾으려고 돌아옵니다. 흙 한 덩이쯤 그냥 두고 돌아서도 될 만하다 생각할는지 모르나, 흙일꾼 아저씨가 밭뙈기를 기름지게 일구려고 흘린 땀을 생각하면, 흙 한 줌에 뭇목숨이 피어나도록 누린 기나긴 해를 헤아린다면, 온 우주와 온 사랑이라 할 흙 한 줌이에요. 나도 〈강아지똥〉 흙일꾼 아저씨와 같은 마음이에요. 밭자락 흙을 갈아엎고 나서 집으로 돌아올 때면, 고무신짝에 붙은 흙을 밭자락에 알뜰히 털어야 마음이 홀가분해요.
감자를 캐며 감자알에 붙은 흙을 알뜰히 텁니다. 쟁기질과 호미질을 마친 다음 쟁기와 호미에 붙은 흙을 알뜰히 뗍니다. 옛날 옛적 흙일꾼들은 논밭을 기름지게 일구려고 멀디먼 멧자락에서 흙을 떠서 지게로 하나하나 날라서 일구었다 하니까요. 가랑잎이 삭으며 오래오래 천천히 이루어진 좋은 흙을 밭뙈기로 옮기며 좋은 밭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오래오래 땀을 흘렸다 하니까요.
그림책 《루루의 양말》에 나오는 루루는 잃은 양말 한 짝을 되찾았을까요. 짝 잃은 양말 여러 켤레를 알록달록하게 신었을까요. (4345.4.12.나무.ㅎㄲㅅㄱ)
― 루루의 양말 (세나 게이코 글·그림,김난주 옮김,비룡소 펴냄,2000.3.25./45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