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은뱅이꽃 글 한 조각
내가 인천에서 국민학교를 다니고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일을 떠올립니다. 열두 해 학교를 다니며 내가 알아보는 꽃은 몇 가지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도시 한복판에 흐드러지는 들꽃은 퍽 드뭅니다.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새벽부터 밤까지 보내느라 학교 바깥 골목꽃이 피고 지더라도 들여다볼 겨를이 없습니다.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교과서에 목련을 노래하는 시가 나올 때에 비로소 목련 이름을 듣습니다. 그러나 글로 적힌 목련을 읊을 뿐, 목련꽃을 두 눈으로 들여다본다거나 목련꽃이 피는 목련나무가 어떤 씨앗에서 비롯해 어떤 나무로 크는가를 찬찬히 살피며 배우지 못합니다. 교과서에 진달래 노래하는 시가 실릴 때에 비로소 진달래 이름을 듣습니다. 그러나 막상 도시 한복판에 진달래가 피고 지는 일이란 없습니다. 도시를 떠나 들판이나 멧등성이로 나아가야 겨우 진달래를 바라볼 만하지만, 진달래가 흐드러지는 아침이나 한낮에 교실 아닌 들판을 뒹굴 수 있는 아이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도시 이런 학교라 하더라도, 민들레만큼은 어디에서나 뿌리를 내리며 노란 꽃봉우리를 터뜨립니다. 민들레꽃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아봅니다. 다만, 민들레가 꽃봉우리 터뜨리기 앞서까지는 민들레풀인지 아닌지 알아보지 못합니다. 꽃송이가 오르고 꽃봉우리가 터질 무렵 드디어 알아봅니다.
아이와 함께 들길을 거닐다가, 민들레 곁에서 나란히 피고 지는 제비꽃을 바라봅니다. 앉은뱅이꽃 두 가지가 나란히 피고 집니다. 제비꽃이 스무 날 즈음 먼저 피었고, 이제 민들레꽃이 어깨동무를 합니다. 한동안 두 꽃을 바라보다가 일어섭니다. 집으로 돌아갑니다. 제비꽃이 피고 지더라도 제비꽃을 볼 수 없는 곳에서 살아간다면 제비꽃을 보지도 못하지만 생각하지도 못합니다. 제비꽃을 보지도 생각하지도 못할 때에는 제비꽃 이야기를 떠올리거나 쓰지 못합니다. 제비꽃을 모를 뿐 아니라 생각하지 않는 동안에는 제비꽃을 사랑할 수 없고, 제비꽃을 그릴 수 없어요. 누군가 제비꽃을 노래하더라도 가슴으로 훅 끼치도록 맞아들이지 못해요.
아는 만큼 바라볼 수 있지 않습니다. 살아내어 몸으로 깨닫고 마음으로 새길 때에 비로소 바라볼 수 있습니다. 바라볼 때에 알 수 있지 않습니다. 바라보며 마음을 열고 사랑을 피워낼 때에 바야흐로 알 수 있습니다.
날마다 새롭게 꽃이 피고 새롭게 바람이 불며 새롭게 햇살이 드리웁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꽃은 피고 집니다. 누가 국회의원이 되든 바람이 불고 멎습니다. 누가 시장이나 군수가 되든 햇살은 온누리 곱게 비추며 따사로이 보듬습니다. (4345.4.8.해.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