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샤의 특별한 날 - 타샤 할머니가 들려주는 열두 달 이야기 타샤 튜더 클래식 2
타샤 튜더 글.그림, 공경희 옮김 / 윌북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날마다 좋은 이야기가 모여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50] 타샤 튜더, 《타샤의 특별한 날》(윌북,2008)

 


  낮부터 내린 비는 밤새 지붕을 때리고 들판과 멧자락을 적십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적시려나 하고 생각하며 잠듭니다. 깊은 밤, 지붕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비가 그칩니다.


  빗줄기가 그치지 않던 봄날 낮나절, 아이 둘을 데리고 마실을 다닐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비가 오든 말든 가붓이 걸을 만하지만, 아직 두 아이 모두 어리다고 느껴, 집안에서만 내내 맴돕니다.


  해가 떨어진 저녁나절, 둘째를 품에 안고 섬돌에 앉아 빗소리를 듣습니다. 첫째는 어느새 뽀르르 좇아 나옵니다. 나란히 섬돌에 앉아 저녁 빗소리를 듣습니다. 저녁 빗소리를 들으며 노래 몇 가락 불러 봅니다.


  비가 내려 온 들판은 물기를 촉촉하게 머금습니다. 도랑물은 더 잘 흐르고 골짝물이나 냇물 모두 한결 잘 흐를 테지요. 새눈을 틔우고 새꽃을 피우는 봄풀 봄나무 모두 좋은 빗물을 마시며 더 기운을 차릴 테고요. 사람도 나무도 풀도 짐승도, 이처럼 알맞춤하게 내리는 빗줄기가 있어 목숨을 이어요. 햇살이 비추고 빗방울이 들며 바람이 살랑이는 날씨를 누리며 저마다 제 보금자리를 곱게 건사합니다.

 


.. “할머니, 엄마가 저만 했을 때는 어땠어요?” “정말이지, 즐거운 날이 아주 많았지. 한 해의 마지막 날이 되면 아이들은 모닥불을 피웠어. 다들 모닥불 주위에서 춤추며 큰소리로 외쳤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7∼8쪽)


  내 어버이는 형을 낳고 나를 낳으며, 두 아이가 앞으로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을까 궁금합니다. 서울이나 인천 언저리에서 달삯 더 받을 만한 일자리를 얻어 예순 언저리까지 느긋하게 살림을 꾸리다가 연금 푼푼이 받으며 지내는 삶을 바랐을까요. 두 아이가 저마다 좋아하는 길을 찾아 저마다 사랑하는 삶을 꾸리기를 바랐을까요.


  좋은 옆지기와 함께 아이 둘을 낳고 살아가는 나는, 우리 집 두 아이가 앞으로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면 아름다울까 하고 헤아릴 수 있을까요. 우리 집 두 아이는 어떤 삶을 누리면서 어떤 사랑을 나눌 때에 저마다 아름다운 빛을 곱게 드리울 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어버이로서 나부터 어떤 나날을 누리면서 아이들한테 보여주고, 아이들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만할까요. 하루하루 자라나는 아이들한테 무엇을 물려주고 무엇을 가르칠 만할까요.


  나로서는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한 어느 하나 제대로 못 갖추었는지 모릅니다. 나로서는 내 가슴에 아이들한테 물려줄 모든 열매를 건사하는지 모릅니다.

 

 


.. “그 시절 우리 집에는 자그마한 우체국이 있었단다. 참새 우편으로 밸런타인데이 카드가 도착했지. 물론 인형 가족도 밸런타인데이 카드를 받았어. 코기 강아지들도 선물을 받았고.” ..  (12∼13쪽)


  타샤 튜더 님 그림책 《타샤의 특별한 날》(윌북,2008)을 읽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온통 즐거운 날’이었다던 옛날 옛적 삶을 떠올리는 할머니가 아이들한테 ‘무엇이 그토록 즐거웠던가’ 하고 이야기합니다. 1월부터 12월까지 차근차근 이야기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겨레도 예부터 이렇게 온갖 이야기 누리며 살았습니다. 1월부터 12월까지 다 다른 삶 다 다른 놀이 다 다른 즐거움을 누렸어요. 커다란 명절이 있기에 즐거운 나날이 아닙니다. 작은 한 가지 모두 즐겁습니다. 짚신을 삼아도 즐겁고, 땔감으로 쓸 나무를 하러 지게를 짊어져도 즐겁습니다. 아버지가 지게를 만들어 내놓는 날도 즐겁고, 어머니와 빨래를 하고 다듬이질을 하고 풀을 먹이고 길쌈을 하는 모든 일이 즐겁습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일거리라 여길 수 있지만, 끝도 없이 누리는 삶이라 여길 만합니다. 서로 돕고 함께 어깨동무합니다. 서로 믿고 함께 사랑합니다. 씨앗을 갈무리하고 나물을 말립니다. 씨앗을 건사하고 장을 담급니다. 집을 손수 짓고 손질합니다. 이웃이 찾아와 집을 함께 고치고 나란히 잔치마당을 엽니다.

 


.. “11시 간식 시간에는 사과나무 아래 아이스티와 쿠키를 차려놓고 맛있는 파티를 열었단다.” ..  (27쪽)


  유럽에서든 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일본에서든, 중국에서든 필리핀에서든, 나라와 겨레마다 다 다른 터전에 걸맞게 다 다른 삶을 누립니다. 1월부터 12월까지 즐겁게 삶을 누리는 사람들한테는 꼭 한 가지만 없습니다. 서로를 괴롭히거나 죽이는 전쟁 한 가지가 없습니다. 마을이나 나라를 다스린다는 정치꾼이나 임금님 같은 사람 이야기가 깃들지 않습니다. 임금님이 마을을 ‘행차’ 하는 일이란 대수롭지 않을 뿐더러, 딱히 바라지 않습니다. 나라를 다스린다는 아무개가 없어도, 사람들 스스로 조그마한 마을에서 1월부터 12월까지 즐겁게 얼크러집니다.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전쟁무기를 만들지 않습니다. 젊은이도 푸름이도 총싸움이나 칼싸움을 하지 않습니다. 저마다 제 몸에 알맞게 일거리를 나누어 받고, 저마다 제 마음에 맞게 놀이거리를 찾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사랑하는 길을 걷습니다. 사람들은 서로서로 사랑하는 길을 살핍니다. 사람들은 다 함께 사랑하는 길을 북돋웁니다.


  다달이 무언가 남달리 기리는 날이 있기도 하다지만, 어느 하루만 남다르지 않아요. 한 해 가운데 어느 하나를 더 기리거나 생각한다지만, 이 하루만 바라보며 한 해를 살아가지 않아요. 언제나 모든 하루가 대단합니다. 늘 모든 하루가 좋습니다. 한결같이 사랑스러운 하루요, 노상 기쁜 하루입니다.

 

 


.. “9월에는 잔치가 열리는 달이지. 노동절에는 인형들의 잔치가 열리곤 했어. 당연히 모든 인형들이 총출동했지. 그 친구들도 모두 나오고. 우리는 단추를 돈으로 삼았단다. 인형 크기의 케이크랑 파이, 사고 싶은 건 뭐든 단추만 있으면 살 수 있었어.” ..  (40∼41쪽)


  내 어릴 적을 되새깁니다. 내가 즐겁게 웃으며 떠들 수 있던 까닭이란 무엇이었는가 하고 되새깁니다. 내 오늘 하루를 돌아봅니다. 내가 오늘 하루 집식구하고 맑게 웃으며 떠들 수 있자면 무엇이 있어야겠느냐고 돌아봅니다.


  날마다 좋은 삶을 누리자면, 어버이로서 무슨 사랑으로 내 삶을 돌보아야 하느냐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날마다 좋은 삶을 즐기자면, 어버이로서 이 아이들하고 어떤 이야기를 빚어야 하느냐고 생각합니다. 좋은 짝꿍이랑 날마다 좋은 삶을 빛내자면, 옆지기로서 어떤 꿈을 가꾸어야 아름답겠느냐고 생각합니다.


  이제 비는 멎고, 바람은 조용합니다. 들새와 멧새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새 아침을 맞이합니다. 비가 더 흩뿌리지 않는다면 들판과 길바닥 물기는 시나브로 마르겠지요. 구름은 걷힐까요. 햇살이 살며시 고개를 내밀까요. 기저귀 빨래를 마치고 나서 오늘 하루 어떤 이야기를 네 식구 같이 예쁘게 누릴 만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4345.3.23.쇠.ㅎㄲㅅㄱ)


― 타샤의 특별한 날 (타샤 튜더 글·그림,공경희 옮김,윌북 펴냄,2008.10.1./98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