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속 생물 이야기 보고 느끼는 도감
오오노 마사오 글, 마쓰오카 다스히데 그림, 김창원 옮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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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이 있어 살아갈 수 있는 목숨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37] 마쓰오카 다쓰히데·오오노 마사오, 《땅속 생물 이야기》(진선출판사,2001)

 


  겨울눈이 온누리 흙을 하얗게 덮습니다. 겨울눈은 논밭을 덮고 멧자락을 덮으며 들판을 덮습니다. 겨울눈은 아파트 옥상을 덮고 아스팔트 까만 길을 덮으며 원자력발전소 지붕을 덮습니다. 춥디추운 겨울이 저물 무렵 온누리에 맑은 빗물 촉촉히 내립니다.


  맑은 빗물은 겨우내 앙상하던 나뭇가지를 적시고 새봄을 알리는 작은 들꽃 풀잎을 덮으며 네 철 푸른잎으로 우거진 숲을 덮습니다. 이윽고 맑은 빗물은 큰도시 한복판 자동차 빗물을 때립니다. 높직한 아파트 유리창을 때립니다. 관공서와 초·중·고등학교 유리창을 때립니다. 이제 이 빗물은 나무를 타고 냇물이 되고, 시멘트로 만든 하수구를 거쳐 바닷물이 됩니다.


.. 나무가 자라면서 땅속의 모습도 달라집니다. 나무가 땅속 깊이 뿌리를 뻗으면 뿌리를 먹고 자라는 생물들이 많아집니다 ..  (6쪽)

 


  바람이 붑니다. 겨우내 차디차게 불던 바람이 잦아들며 봄내 포근하게 부는 바람으로 바뀝니다. 여름 동안 후덥지근하게 바람이 붑니다. 가을 동안 살랑살랑 따사롭게 바람이 붑니다.


  바람은 모든 목숨들한테 고운 숨결을 건넵니다. 아이도 어른도 고운 숨결을 누립니다. 해바라기도 수수꽃다리도 민들레도 냉이도 고운 숨결을 마시며 기운을 냅니다. 들쥐도 들고양이도 참새도 까치도 고운 숨결을 마시며 기운을 차립니다.


.. 썩어서 넘어진 나무 밑은 그늘이 져서 시원하고 눅눅합니다. 이런 곳에도 땅속에 사는 생물이 삽니다 ..  (15쪽)

 


  햇살이 따스합니다. 햇살은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따스합니다. 겨울이라서 차가운 햇살인 적은 없습니다. 여름에만 따스한 햇살이지 않습니다. 겨울에도 햇살이 따사로이 내리쬐며 사람들을 살리고 푸나무를 살립니다. 봄에도 햇살이 따사로이 펼쳐지며 지구별을 살리고 지구별을 덮은 흙을 살립니다.


  사람은 흙을 밟고 살아갑니다. 곰도 흙을 밟으며 살아갑니다. 까마귀도 흙을 밟으며 살아갑니다.

  보리는 흙에 뿌리내리고 살아갑니다. 벼도 흙에 뿌리내리고 살아갑니다. 시금치도 배추도 무도 당근도 하나같이 흙에 뿌리내리고 살아갑니다.


  흙이 있기에 좋은 나날입니다. 흙이 있어 기쁜 삶입니다. 흙이 없을 때에는 아무런 목숨도 더 살아가지 못합니다. 흙하고 한몸이 되는 풀과 나무가 있어 흙에 보금자리를 트는 짐승이 있습니다. 범도 여우도 승냥이도 멧돼지도 모두들 흙이 있을 때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먹이를 얻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흙이 얼마나 고마운 줄 짐짓 잊습니다. 흙을 잊은 사람들이 흙을 파헤치고 돌을 파묻습니다. 흙을 잊는 사람들이 흙을 치우고는 바닥에 돌을 깝니다. 집을 으리으리하게 짓습니다. 궁궐을 으리으리하게 올립니다. 흙에서 열매와 푸성귀를 얻던 사람들이 흙을 저버리고는 창을 만들고 칼을 갈아 전쟁을 만듭니다. 흙에서 삶을 누리고 사랑을 익히던 사람들이 흙을 등지고는 돈을 만들고 이름값을 만들며 무리힘을 만듭니다.


  사람도 살고 푸나무와 벌레와 뭇짐승이 살던 터에 사람만 다닐 수 있는 길이 생깁니다. 사람만 들어설 수 있는 높은 탑과 절집과 무덤이 생깁니다. 오래지 않아 제철소며 발전소며 공장이며 하나하나 생깁니다. 그나마 흙으로 이루어졌던 길은 시멘트로 덮여 풀 한 포기 나지 않고, 더 두껍고 단단한 아스팔트로 바뀝니다.


  어느덧 도시가 나타납니다. 도시에서는 흙 한 줌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래도록 흙 한 줌 없던 도시에서 사람들이 죽고 쓰러집니다. 온통 공장과 가게와 건물과 길로 넘치던 도시에 조그맣게나마 공원이라는 이름을 붙인 숲터가 생깁니다. 그런데 이 숲터는 흙이 햇살과 바람과 물을 머금어 이루는 고운 삶터가 아닙니다. 돈으로 짓고 돈으로 가꾸며 돈으로 허무는 땅입니다.

 

 


.. 매미의 애벌레는 나무 뿌리의 영양분을 빨아먹고 자랍니다. 그런데 그 매미 애벌레의 몸을 자기 집으로 만들어 사는 버섯도 있습니다. 땅속에서 썩은 잎을 먹고 자라는 장수풍뎅이의 애벌레가 보입니다 ..  (24쪽)


  사람들 숫자는 차츰 늘어납니다. 10억이니 20억이니 30억이니 하다가는 50억을 넘고 60억을 넘습니다. 앞으로 사람들 숫자는 어디까지 늘어날 수 있을까요. 지구별을 온통 뒤덮다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공룡처럼, 사람들 또한 끝없이 늘어나며 흙을 없애는 짓을 일삼을 테니, 사람들 스스로 언제 어떻게 사라지는구나 하고 깨닫지 못하면서 사라지지 않을까 궁금합니다. 사람들 모두 온통 화석으로 남으면서 먼먼 뒷날 새로운 목숨이 이 지구별에 깃들 때에 ‘지구별에서 사라진 공룡’처럼 ‘지구별에서 사라진 사람’을 파내어 박물관에 놓거나 전시관에 세우지 않을까 궁금합니다.


  사람들이 ‘공룡 그림책’을 그리고 ‘공룡 영화’를 찍듯, 아마, 즈믄 해쯤 뒤에는, 아니 고작 백 해나 쉰 해쯤 뒤에는 사람이 싸그리 사라지고, 이대로 십만 해나 백만 해쯤 지나서 새로운 목숨이 태어나고는 ‘백만 해 앞서 잘난 척하며 지구별을 망가뜨리던 사람’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그리고 영화로 찍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도서관은 어떤 곳일까요. 도서관에는 어떤 책을 꽂으며 사람들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가요. 도서관은 사람살이를 어떻게 바라보도록 이끌며, 사람들 스스로 어떠한 삶을 일굴 때에 아름다운 꿈을 품으며 착한 사랑을 나눌 수 있다고 가르칠 수 있는가요.


  학교는 어떤 데일까요. 학교에서는 어떤 교과서로 어떤 학문을 갈고닦아 사람들이 서로서로 어떤 이야기를 꽃피우도록 이끄는가요. 흙이 무엇이고 흙이 어떠하며 흙으로 무엇을 이루는가를 이 지구별 학교는 얼마나 보여주거나 들려주거나 알려줄까요.

 


.. 얕은 곳이나 깊은 곳이나 땅속에는 생물이 살고 있습니다. 흙이 딱딱하든 부드럽든 생물의 집이 없는 곳은 없습니다. 아무리 어둡고 눅눅해도 이들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땅속은 언제나 많은 생물들로 북적거립니다 ..  (30쪽)


  마쓰오카 다쓰히데 님 그림과 오오노 마사오 님 글로 이루어진 그림책 《땅속 생물 이야기》(진선출판사,2001)를 읽습니다. 흙이 있어 살아갈 수 있는 숱한 목숨붙이 가운데 흙땅 아래쪽에서 지내는 목숨들 삶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이 흙땅 아래쪽 목숨들을 눈여겨볼 일이 드뭅니다. 사람들은 이 흙땅 아래쪽 목숨들이 있기에 사람이 사람다이 삶을 누릴 수 있는 줄 알아채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흙땅 아래쪽 목숨들은 어제도 오늘도 글피도 살아갑니다.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으며 살아갑니다. 흙에 깃들어 흙을 사랑하고, 흙을 품에 안으며 흙을 아끼는 하루하루를 누립니다.


  우리 집 두 아이가 마당에서 달리고 기고 뛰며 놉니다. 큰아이는 신나게 달리고 작은아이는 볼볼 깁니다. 큰아이는 세발자전거를 타고 작은아이는 이것저것 손에 쥐고는 입에 넣습니다. 마당이 흙땅이라면 아이들은 틀림없이 땅을 파며 놀겠지요. 시골집도 이제 모두 시멘트 마당이 되었기에, 아이들은 시멘트로 덮인 마당에서 뛰고 기며 놉니다. 시골에서 살아가지만, 시골에서조차 흙을 만지거나 누리거나 보듬기는 퍽 어렵습니다. 앞으로는 이 시멘트 마당에서 시멘트를 어떻게 걷어내야 할까를 생각합니다. 시멘트 없이 흙으로 바닥을 이룬 터에 흙으로 살림집 하나 짓는 나날을 꿈꿉니다.


  그림책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삶은 흙에서 오고, 삶은 흙에서 마무리합니다. 숨결은 흙에서 샘솟고, 목숨은 흙에서 얻습니다. 사랑은 흙에서 태어나고, 믿음은 흙에서 꽃피웁니다. 새 봄철, 따순 바람을 느끼며 큰아이하고 뒤꼍 땅뙈기 한쪽에 씨앗을 심습니다. 우리 네 식구 좋은 밥이 될 좋은 푸성귀 얻기를 꿈꾸며 씨앗을 심습니다. 봄비는 씨앗을 살찌우고, 봄바람은 씨앗을 품으며, 봄햇살은 씨앗을 어루만집니다.


  오늘 흙땅 아래쪽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작은 씨앗들은 흙땅 아래쪽에서 어떤 나날을 누릴까요. 작은 씨앗들은 언제쯤 흙땅 위쪽으로 새싹 하나 틔우며 새로운 나날을 맞이할까요. (4345.3.16.쇠.ㅎㄲㅅㄱ)


― 땅속 생물 이야기 (마쓰오카 다쓰히데 그림,오오노 마사오 글,김창원 옮김,진선출판사 펴냄,2001.4.2./8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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