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민방위 소집, 마늘밭, 한미자유무역협정

 


  시골마을 민방위 소집을 이태째 치른다. 지난해에는 충청북도에서 치렀고 올해에는 전라남도에서 치른다. 지난해에 민방위 소집을 치를 때에는 ‘리’를 아울러 사람들이 모였고, 올해에 민방위 소집을 치를 때에는 ‘면’을 아울러 사람들이 모인다. 내가 사는 마을에서도 내가 모르는 젊은 분이 한 사람 왔다. 누구일까. 어느 집 젊은 분일까. 주소는 이쪽으로 되었으나 광주라든지 순천이라든지 광양에서 살아가는 분일까. 고흥군 도화면을 통째로 아울러 민방위 소집을 한다고 느낀다. 민방위 소집을 하는 이웃마을 회관에서, 이웃마을 이장님이 이름 적으라고 내민 종이에 찍힌 소집자 주소를 보니, 도화면 맨 아래쪽 지죽리까지 있다. 지죽에서 면 소재지까지는 면 소재지부터 읍내까지 될 만큼 먼 길인데.


  ‘면’을 아우른 전라남도 고흥군 시골마을 민방위 소집에 나온 젊은 사람들, 이른바 서른 첫머리부터 막바지인 사람들은 대여섯. 소집자 이름에 올랐으나 안 나온 사람까지 치면 모두 열서넛 즈음. 면을 통틀어 민방위 소집을 받는 젊은 사람이 고작 이만큼이라 한다면, 젊은 사람이 참 없다는 뜻일 테지. 가만히 보면, 면내 우체국이건 면사무소이건 파출소이건 농협이건, 이런저런 데에서 일하는 마을 젊은이는 얼마 없다고 느낀다. 하나같이 순천에서 오고 광주에서 오며 여수나 광양 같은 데에서 온다. 그리고, 시골마을 젊은이는 순천으로 나가고 광주로 나가며 여수나 광양 같은 데로 나가지만, 이보다는 서울이나 부산으로 가고 싶어 한다.


  서울에서 고흥으로 일하러 오고프다 하는 젊은 교사나 공무원이 있을까. 부산을 떠나거나 대구를 떠나거나 인천을 떠나거나 대전을 떠나면서, 전라남도 맨 끄트머리에 자리한 고흥으로 일하러 가겠다 하는, 또는 살림집을 옮기겠다 하는, 끝없는 가게와 아스팔트와 아파트 물결하고는 동떨어진 숲으로 들어가고 논밭 사이로 들어가며 바다를 품에 안는 터로 옮기겠다 하는, 이런 젊은 사람은 백만 사람 가운데 몇쯤 될까.


  앞으로 몇 해 더 지나면 내 민방위 소집은 끝난다. 나는 군대를 좀 일찍 갔으니 올해로 끝일는지 이듬해에 끝일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민방위 소집마저 끝날 무렵, 우리 면 테두리에서 민방위 소집을 받을 젊은 사람은 얼마나 남을까. 이 시골마을에서 예비군 훈련을 받을 더 젊은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시골마을 젊은이 숫자로는 예비군 훈련은 못하지 않을까.


  날이 폭하다며,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마늘밭에 서서 허리 구부정하게 김을 맨다.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가 마늘밭에서 김매기 하는 모습을 벌써 한 달째 바라본다. 농약을 안 치고 손으로 풀을 잡는다며 모두들 땀을 흘린다. 나이 일흔 여든에 옛날 옛적 흙일을 한다. 풀약 안 친 마늘을 거두려고 힘쓰는 2012년 3월 15일 하루를 마무리하며 생각한다. 바로 오늘 3월 15일부터 한미자유무역협정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시골 면사무소도 조용하고, 시골신문도 조용하며, 시골 논밭도 조용하다. 그런 협정 한두 가지 때문에 갑자기 온누리가 달라지겠는가. 그러나, 이제 참말 도시사람들은 ‘풀약 안 친 마늘을 제값 치르며 사는 일’하고는 아주 동떨어진 채 ‘더 값싸게 사먹는 마늘’에 손이 갈 테지. 풀약 안 치며 거두는 쌀이나 보리나 밀이 아닌, 더 값싸게 사먹는 쌀이나 보리나 밀에 손이 갈 테고, 되도록 사료는 안 주고 짚과 소죽으로 키우는 소를 잡은 고기보다는, 관세가 사라져 아주 값싸게 사먹을 만하다는 소고기에 손이 가리라. 시골에서 살아가지 않으니, 어느 곡식 어느 짐승한테 농약·비료·항생제·사료를 어떻게 얼마나 주는가를 어느 만큼 깨닫거나 느끼겠는가. 다 똑같다 여기며 값이 더 싸다는 쪽으로 손이 갈밖에 없다. 먹고살기 힘들다는 말을 앞세우고, 돈벌기 힘겹다는 말을 들이밀며, 아이들한테 고기를 먹여야 키가 큰다는 말을 외치잖는가.


  보름달이 훤하게 마을을 비추다가는, 찬찬히 초승달로 이운다. (4345.3.1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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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3-17 19:10   좋아요 0 | URL
이글을 읽으니 참 시골에 젊은 사람이 없기 없네요.서울에서 귀농한다는 분들이 많다고 하지만 다 자식 공부 다시킨 분들이 대다수니 시골은 나이드신 분들만 계시는것 같네요.

숲노래 2012-03-18 07:07   좋아요 0 | URL
서울이나 도시는
사람이 너무 많이 모여
서로서로 사랑할 줄을 모르는구나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