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나라 1
김진 지음 / 시공사(만화) / 1998년 6월
평점 :
품절



 네가 다치면 내 마음 아프지
 [만화책 즐겨읽기 114] 김진, 《바람의 나라 (1)》

 


  아이가 다치면 생채기가 아물도록 함께 아픕니다. 아이가 울면 아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눈물이 납니다. 내 살붙이가 아프거나 힘겨울 때이든, 내 이웃이나 동무가 아프거나 힘겨울 때이든, 언제나 더없이 아프며 힘겹습니다. 거꾸로, 내가 아프거나 힘겨울 때에는 내 살붙이와 이웃과 동무가 함께 아프며 힘겨울 테지요.


- “그 애가 천민 출신이라, 늘 마음 걸려 하시는 건 알고 있지만, 그 일을 문제삼아 수시로 아이를 창피 주시니 어째서 그러시는지 모르겠다.” (16쪽)
- “형님, 사람의 마음이란 풀씨 같은 건가 봐. 이렇게 수없이 떠다니고 옆에 가득한데도 잡을 수가 없지. 하지만 형님은 내가 잡지 못하는 민들레씨를 잡듯이 사람의 마음도 그리 잡을 수 있을 거야.” (90쪽)


  아이들이 웃으면 곁에 있는 어른도 웃습니다. 아이들이 웃으면 함께 노는 어린 동무들도 웃습니다. 어른들이 웃으면 함께 살아가는 아이들도 웃습니다. 어른들이 웃으면 어른들 둘레 다른 어른도 웃습니다.


  좋은 일은 좋은 넋에 따라 좋은 흐름을 타고 널리널리 퍼집니다. 슬프거나 궂은 일은 슬프거나 궂은 얼에 따라 슬프거나 궂은 물결을 타고 두루두루 퍼집니다.


  서로 좋은 꿈을 품으며 살아갈 때에는 참말 좋은 꿈을 이룹니다. 서로 슬프거나 궂은 꼼수를 부린다거나 못난 꿍꿍이를 키울 때에는 그야말로 슬프거나 궂은 일이 잇달거나 못난 일이 자꾸 터집니다.


  따사로이 보듬는 손길로 따사로이 싹을 트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는 푸나무입니다. 따사로이 쓰다듬는 손길로 따사로이 자라고 크며 튼튼해지는 아이들입니다.


  밥 한 그릇에 사랑을 담습니다. 옷 한 벌에 사랑을 싣습니다. 잠자리 이불깃을 여미며 사랑을 나눕니다. 언제 어디에서라도 고운 사랑으로 고운 이야기를 길어올립니다.

 

 


- ‘내 아이가 태어나면 절대로 내 아버님처럼 사랑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언제나 사랑하면서 화를 내고 미워하면서 자상하다. 후회하고 눈물 흘리는 사람, 죽음을 대가로 하는 마음의 감정, 의심하여 살피는 마음, 그건 아버지의 마음이 아니다. (18∼19쪽)
- “꿈이 뒤숭숭하여 몹시 무서워요. 밤이 이렇게 흉흉하니 잡귀가 시샘하면 어쩌지요. 아버지가 지켜 주어야 아기가 안심하고 세상에 나올 텐데요.” (20쪽)
- ‘아니, 네가 이긴 게 아니다, 검은 요물아. 단지 목숨 하나와 다른 목숨 하나를 슬픈 마음으로 맞바꾼 것뿐. 지금은 네가 이 작은 목숨 앗은 듯 보이지만, 너는 천기를 거스르는 자이니, 필히 지금의 대가를 과하게 치를 것이다.’ (210쪽)


  김진 님 만화책 《바람의 나라》(시공사,1998) 첫째 권을 읽으며 가만히 헤아립니다. 만화책 《바람의 나라》는 고구려 적 이야기를 담았을까요. 고구려 적 궁중 둘레 이야기를 보여줄까요.


  아마 만화 무대는 한겨레 퍽 옛날 옛적 이야기라 할 만합니다. 즈믄 해쯤, 또는 즈믄 해에 오백 해를 더한 옛날쯤, 또는 즈믄 해에 즈믄 해가 더 흐른 옛날쯤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세 즈믄이나 네 즈믄이라 해도 됩니다. 아득히 먼 옛날이면서 그리 멀잖은 어제 일이라 여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나 이제나 어버이가 있고 아이가 있어요. 어른이 있고 어린이가 있습니다. 사랑을 먹으며 자라 어른이 됩니다. 사랑을 먹으며 자란 어른이 새롭게 사랑을 꽃피울 짝꿍을 만나 아이를 낳습니다. 이 아이를 사랑으로 돌볼 때에는 이 아이 또한 사랑을 먹으며 자라고, 이윽고 씩씩하면서 튼튼한 어른으로 우뚝 서며 또다시 새롭게 사랑을 꽃피울 짝꿍을 만나 아이를 낳아요.


  사랑스러운 삶은 곧게 이어집니다. 사랑스러운 삶 못지않게 슬프거나 아프거나 밉거나 고단한 삶도 곧게 이어져요. 사랑은 사랑을 먹으며 자랍니다. 슬픔은 슬픔을 먹으며 자랍니다. 사랑은 새로운 사랑한테 거름이 됩니다. 슬픔 또한 새로운 슬픔한테 거름이 돼요.


  좋은 마음으로 좋은 나날을 누리며 나와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 좋은 꿈을 빚는 누리를 북돋울 수 있습니다. 짓궂은 마음으로 짓궂은 싸움을 일으켜 나와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 고단한 굴레에 사로잡히며 눈물짓거나 아파하는 누리로 휘저을 수 있습니다.

 

 


- ‘어른이 되는 건 싫어. 언제까지고 아이였으면, 그러면.’ (76쪽)
- ‘그런 냄새는 정말 싫어. 씻어도 씻어도 어디엔가 남아 있는 것 같아. 싸움터 냄새, 피비린내, 난 그런 내가 나는 곳에 가는 게 정말 싫어. 하지만 가야만 하는 거지? 왜냐하면 내가 왕이 될 테니까. 내가 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누군가 그 싫은 냄새를 맡아야 하니까. 난, 연아, 세상에 왜 꽃이 피고, 왜 사람들이 그 향기 속에서 행복한지를 알아. 꽃은 마음을 안아 주는 누군가의 품 속 같은 거야. 내가 지치고 울적할 때, 또는 슬플 때, 꽃은 따뜻하고 다정하고 행복해. 그러니, 나, 절대로 그걸 잃으면 안 되겠지?’ (100쪽)


  꽃내음이 좋으면, 꽃들이 좋은 내음 물씬 풍길 수 있게끔 좋은 흙을 살리고 좋은 햇살을 비추도록 하며 좋은 바람이 부는 한편 좋은 물이 흐르는 터전으로 가꾸어야 합니다.


  꽃내음보다 돈내음이 좋거나 애틋하다면, 어쩌는 수 없이 꽃터를 뒤엎어 아스팔트를 깔고 높은 건물을 세우며 돈벌이에 나서야 할 테지요.


  곧, 누구나 꿈꾸는 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누구라도 살아가는 결이 고스란히 꿈으로 바뀝니다.


  서로서로 아리땁게 이야기를 엮을 수 있지만, 서로서로 툭탁툭탁 다투거나 겨루면서 돈이든 이름이든 힘이든 더 차지하거나 홀로 차지한다며 아옹다옹할 수 있어요.

 

 


- ‘나도 모르겠어. 사람은 생각대로 간다는데, 왜, 난, 늘, 그에 대해 그런 슬픈 생각만 하는 걸까.’ (98쪽)
- “내가 다치면 마음이 아프니?” (201쪽)
- ‘이제 나 죽으면 나 죽어 기다리면, 그가 와 곁에 누워 줄까요? 여태 그랬듯이 이후로도 줄곧 달빛 찬 밤을 노래 불러 위안해 줄까요? 아니, 아니요, 나 죽으면 그는 남의 사람 될 터인데, 기다려도 기다려도 아니 오시겠지요.’ (213쪽)


  만화책 《바람의 나라》에 나오는 어른들은 무슨 꿈을 꾸나요. 만화책 《바람의 나라》에 나오는 아이들은 어떤 모습을 지켜보며 어른이 되나요. 만화책 《바람의 나라》에 나오는 사람들은 서로서로 어떤 넋과 어떤 사랑으로 어떤 삶을 일구고 싶을까요.


  나는 오늘 이곳 내 좋은 보금자리에서 무슨 일을 하는 어떤 사람으로 아이들하고 어깨동무를 하는 나날을 누리려 하나요. 아픔을 나눌 수 있는 어른인가요.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인가요. 슬픔을 나누는 어버이인가요. 즐거움을 어깨동무하는 목숨인가요. (4345.3.15.나무.ㅎㄲㅅㄱ)


― 바람의 나라 1 (김진 글·그림,시공사 펴냄,1998.6.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