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가운 상말
 605 : 남아수독오거서

 

잊힌 꿈에 대해 생각을 하곤 한다. 어릴 적 ‘남아수독오거서’라는 한자를 배울 때 처음 꿈을 가졌던 것 같다. 그때, 나도 다섯 수레 분량의 책을 읽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물만두 홍윤-별 다섯 인생》(바다출판사,2011) 23쪽

 

 “꿈에 대(對)해 생각을 하곤”은 “꿈을 생각하곤”이나 “꿈이 무엇이었나 생각을 하곤”으로 손보고, “가졌던 것 같다”는 “가진 듯하다”나 “가졌으리라 본다”로 손볼 수 있습니다. “다섯 수레 분량(分量)의 책”은 “다섯 수레만큼 되는 책”이나 “책 다섯 수레”로 손질합니다.

 

 학교를 다니며 한문을 배워야 하는데, 이때에 으레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 같은 한문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남자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 정도의 책은 읽어야 한다”는 뜻이라는데, 중국 옛글에 나오는 말마디입니다.

 

 남아수독오거서
 男兒須讀五車書
 남자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 정도의 책은 읽어야 한다
 사내는 모름지기 책 다섯 수레는 읽어야 한다
 사람은 책 다섯 수레는 읽어야 한다
 …

 

 내가 중학생 때에 이 말마디를 처음 들었는지 국민학생 때에 처음 들었는지 가물가물합니다. 아마 중학생에 앞서 국민학생 때에 들었으리라 떠오르는데, 이 말마디를 처음 들으면서 ‘책을 많이 읽으라’는 뜻보다 ‘왜 ‘사람’이 아닌 ‘남자’라고 말하나’ 싶어 몹시 거슬렸습니다. 척 보아도 남자와 여자를 갈라 놓는 말마디이니까요.

 

 중학생이 되어 영어를 처음 배울 때에 ‘man’이나 ‘men’이라는 낱말이 꼭 ‘사내’만 가리키지는 않는다고 듣습니다. 으레 ‘사내’를 가리키는 낱말이지만, 때와 곳에 따라서는 ‘사람’을 일컫는다고 했어요.

 

 나는 이때에도 퍽 거슬렸습니다. 그렇다고 영어를 쓰는 나라나 겨레나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았어요. 말마디에 이토록 ‘사내와 가시내를 금긋는 넋’을 담아야 하는가 싶어 슬펐어요.

 

 이모저모 곰곰이 생각합니다. 한겨레가 예부터 쓰던 여느 사람들 여느 말에서는 사내와 가시내를 따로 금긋는 말마디가 거의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람은 똑같이 사람이고, 사내를 가리키는 말마디이든 가시내를 일컫는 말마디이든 서로 고르게 어우러져요. 1900년대로 접어들어 소설을 쓰는 이들이 일본 말투를 엉성하게 들여와 ‘그 = 3인칭 사내 가리키는 대이름씨’, ‘그녀 = 3인청 가시내 가리키는 대이름씨’처럼 엉뚱하게 쓰며 이 말마디가 퍼지고 말았지만, 한겨레 말글에서 ‘그’는 ‘사내와 가시내를 가리지 않고 누구한테나 두루 쓰는 대이름씨’일 뿐입니다.

 

 다섯수레 책읽기
 다섯수레 책
 다섯수레

 

 국어사전을 뒤적이면 ‘남아수독오거서’라는 말마디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이에요. 이 말마디는 한국말 아닌 중국말이거든요. 중국사람 스스로 즐겁게 쓰려고 지은 말마디입니다.

 

 다시금 생각을 기울입니다. 나는 한겨레붙이입니다. 나는 한국땅에서 태어나 한국사람이랑 이웃으로 지내며 한국말을 씁니다. 나는 한국말을 예쁘게 빛내고 싶습니다. 사람들한테 책을 넉넉히 읽으며 생각을 넉넉히 살찌우라는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면, 아무래도 나는 한국말로 이 뜻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이를테면, “다섯수레 책읽기”라 할 수 있어요. 한 마디로 간추려 ‘다섯수레’라는 낱말 하나 빚을 만해요.

 

 뿌리는 중국 옛글입니다. 중국 옛글에 나온 이야기를 한겨레 나름대로 삭히면 ‘다섯수레’로 옮길 만해요. 글잣수는 한결 적고, 뜻은 한결 또렷하며, 쓰거나 말하거나 듣기에 한결 살갑다고 느낍니다.

 

 한국말 빛깔을 살리면서 조금 더 재미나게 말삶을 북돋울 수 있습니다. ‘다섯수레’뿐 아니라 ‘여섯수레’나 ‘일곱수레’라 할 수 있어요. ‘열수레’나 ‘여든수레’라 할 수 있습니다. 열 살에는 ‘열수레’, 스무 살에는 ‘스무수레’, 서른 살에는 ‘서른수레’라 하면 돼요. 나이에 따라 수레 하나씩 늘려, 일흔 살에는 ‘일흔수레’가 되고, 여든 살에는 ‘여든수레’가 됩니다.

 

 우리는 우리대로 우리 삶과 넋을 살찌우는 말을 빛냅니다. “모름지기 열 살에는 열 수레어치 책을 읽고, 일흔 살에는 일흔 수레만큼 책을 읽으라 했다.” 하는 새 한겨레 이야기를 빚으면서 꿈과 사랑을 일굽니다. (4345.2.2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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