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는 글쓰기
봄에 새로 돋는 잎사귀는 아주 반딱반딱합니다. 얼마나 반드르르한지 빗물 한 방울 톡 떨어지면 또르르 굴러 땅으로 떨어질 만합니다. 아주 조그마한 물방울 하나 새 잎사귀에 남지 않을 만합니다.
아이들 볼을 만지면 내 손이 부끄럽습니다. 거칠고 투박하며 못생긴 내 손이 이 곱고 보드라운 아이들 볼을 만지다니, 하며 내 나이와 삶을 헤아립니다. 아이들은 사랑어린 말 한 마디에 사랑을 느끼며 자라고, 아이들은 미움박힌 말 한 마디에 미움을 느끼며 웁니다.
겨울을 견디는 잎사귀를 가리켜 ‘늘푸른잎’이라 할 텐데, 늘푸른잎도 푸른 빛깔이지만, 새봄에 돋는 잎사귀처럼 싱그러이 옅은 풀빛이 아닙니다. 추위와 눈과 바람을 견딘 거칠고 투박한 풀빛이에요.
요즈음 도시 아이들한테 읽히려고 나오는 자연 그림책을 장만해서 읽습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며 자연 그림책을 굳이 들추지 않아도 되지만, 자연 그림책을 읽을 도시 아이들이 자연을 얼마나 잘 사귈 수 있도록 만드는가 궁금해서 꾸준히 장만합니다.
요즈음 자연 그림책은 그야말로 번쩍번쩍 무지개 같습니다. 빛깔이 초롱초롱합니다. 그림 그리는 솜씨가 빼어납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나오는 자연 그림책을 우리 아이들한테 읽히고 싶다는 생각은 좀처럼 안 듭니다. 나라밖 자연 그림책도 그리 다르지는 않아요. 나 혼자 넘기다가는 조용히 덮고 아이한테 안 보여주기 일쑤입니다. 이웃한 일본에서 나오는 몇 가지 자연 그림책은 아주 훌륭해서 늘 곁에 두기는 하지만, 일본 자연 그림책이라 하더라도 어딘가 어설프거나 서글픈 모습이 있기는 비슷비슷합니다.
봄잎은 여름잎이랑 다릅니다. 여름잎은 가을잎이랑 다릅니다. 가을잎은 겨울잎이랑 다릅니다. 이 다 다른 잎빛과 잎결과 잎무늬는 눈으로 바라본대서 그림으로 옮기지 못합니다. 이 다 다른 잎빛이랑 잎결이랑 잎무늬는 눈으로 쳐다본대서 사진으로 찍지 못합니다.
손으로 만지며 느껴야 합니다. 입으로 씹으며 냄새를 느껴야 합니다. 늘 곁에서 지켜보며 느껴야 합니다. 가만히 볼따구니로 쓰다듬으며 느껴야 합니다.
반딱반딱한 봄잎을 봄잎대로 그리는 한국 그림쟁이로 누가 있을까 궁금합니다. 시린 겨울 이긴 겨울잎을 겨울잎대로 그리는 한국 그림쟁이로 누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잎마다 다 다른 빠르기로 다 달리 물들며 가랑잎으로 바뀌는 잎사귀를 찬찬히 살펴 가을잎 빛깔을 살릴 줄 아는 한국 그림쟁이로 누가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눈이 부시게 푸른 여름잎을 눈이 부실 뿐 아니라 마음을 환히 틔우도록 담을 줄 아는 한국 그림쟁이로 누가 있으려나 궁금합니다.
생각해 보면, 그림으로뿐 아니라, 사진으로도, 글로도, 잎사귀 한삶 고이 그려 이야기꽃 피우는 사람은 매우 드물어요. (4345.2.23.나무.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