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눈이 들려주는 학교 숲 이야기 - 겨울철 학교에서 만난 나무의 한살이와 생태 철수와영희 그림책 4
노정임 지음, 안경자 그림, 구자춘 감수 / 철수와영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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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 푸른 숨결은 나무가 되어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43] 안경자·노정임, 《겨울눈이 들려주는 학교 숲 이야기》(철수와영희,2012)

 


 학교는 겨울을 맞이해서 방학으로 접어듭니다. 겨울날 학교는 조용히 텅 빕니다. 운동장에 눈이 그득그득 쌓여도 뛰어노는 아이가 없습니다. 날이 환히 개어 눈부시더라도 흙을 박차는 아이가 없습니다. 참으로 조용한 겨울 학교인데, 이 조용한 겨울 학교를 빙 둘러싸며 자라는 나무는 새봄을 맞이하려고 부산합니다. 한편으로는 추위를 견디고, 한편으로는 새숨을 키웁니다. 한편으로는 겨울철 따스한 살결로 고이 잠을 자고, 한편으로는 머잖아 찾아올 따순 바람에 따라 맑고 밝은 꽃을 피우며 푸른 잎사귀 틔울 꿈을 꿉니다.


.. 나무는 여러 해를 살아. 그러려면 추운 겨울을 견뎌내야 하지. 겨울을 끄떡없이 보내는 나무들에게는 지혜로운 방법이 있어. 바로 ‘겨울눈’이야 ..  (8쪽)


 아이들은 시골에서나 도시에서나 나무를 쉽게 만납니다. 시골에서는 어디에나 자라는 나무이고, 도시에서도 길가나 학교 운동장 가장자리에 심는 나무입니다. 도시는 시골처럼 숲이나 멧자락이 없다 하더라도 나무만큼은 곳곳에서 자랍니다. 비록 시골처럼 파란 빛깔 하늘이랑 시원히 흐르는 바람이 없다 하더라도, 나무들은 저마다 뿌리내린 터에서 기운차게 살아갑니다. 예삐 바라보는 사람이 없어도, 고이 돌보는 사람이 없어도, 나무는 꿋꿋하며 씩씩하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도시에서 살아가는 아이들로서는 둘레에 나무가 흔히 있더라도 쉬 가까이 하지 못합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어른들부터 둘레 나무랑 가까이 사귀지 않거든요.

 

 도시 어른들은 나무를 보러 자가용을 몰거나 기차나 버스를 타고 멀리멀리 시골로 갑니다. 도시 어른들은 동네 나무를 살펴보지 않습니다. 도시 어른들은 동네 나무를 아끼지 않습니다. 도시 아이들은 도시 어른들 매무새를 고스란히 물려받아요.

 

 도시 아이들 또한 동네에서 흔히 마주할 나무를 가만히 들여다보지 않아요. 나무를 보려면 멀리 시골로 가야 하는 줄 생각합니다. 곁에서 자라는 어여쁜 나무를 어여쁜 손길로 보듬는 꿈을 키우지 못합니다. 동네 나무 한 그루에 내 사랑을 고이 나누어 서로서로 싱그러이 웃음꽃 피우는 길을 찾지 못해요.

 

 단풍나무는 도시에서도 붉게 물듭니다. 은행나무는 도시에서도 노랗게 물듭니다. 도시 한복판 단풍나무나 은행나무보다는 설악산이나 오대산이나 지리산이나 가야산 단풍나무랑 은행나무가 한결 보기 좋거나 곱다면, 설악산이나 가야산은 도시 한복판보다 물과 바람과 햇살이 맑고 흙이 기름지기 때문이에요.

 

 옳게 바라보고 제대로 헤아릴 노릇입니다. 도시에는 자동차가 너무 많아요. 도시에는 흙이 몽땅 시멘트랑 아스팔트한테 깔려서 앓아요. 도시에는 나무가 느긋하게 숨을 쉴 터가 모자라요. 도시에는 밤에도 불을 환하게 켜서 나무들이 새근새근 잠을 잘 수 없어요.

 

 나무한테 너무 괴로운 터전입니다. 나무한테 너무 모진 터전입니다. 나무한테 너무 힘든 터전입니다. 이러한 곳에서 나무가 단풍빛이나 은행빛을 더 곱게 물들일 수 없어요. 살기 괴로운 데에서 나무더러 단풍빛이 왜 해맑지 못하느냐고 나무랄 수 없어요.

 

 


.. 화려한 꽃을 보려고 심어 길러. 백 일 동안 핀다고 ‘백일홍나무’라고도 해. 따뜻한 남부 지방에서 많이 심어 길러 ..  (25쪽)


 나무가 괴롭게 살아가는 터에서는 아이들도 괴롭게 살아가고야 맙니다. 아이들이 괴롭게 살아가는 터라면 어른들이라 해서 즐거이 살아갈까 궁금합니다.

 

 나무가 힘겨워 헉헉거리거나 앓는다면 아이들 또한 힘겨워 헉헉거리거나 앓으리라 생각합니다. 나무가 뿌리를 튼튼히 내리고 널찍하게 퍼뜨리기 힘든 도시에서는 아이들 또한 즐거이 뛰놀 빈터나 흙땅이 없는 셈입니다.

 

 곧, 나무한테 좋은 삶터는 아이들한테 좋은 삶터입니다. 아이들한테 좋은 삶터는 어른들한테도 좋아, 서로서로 환하게 웃으면서 어깨동무할 만한 삶터예요. 우리는 누구나 사랑을 나누면서 사랑을 씨앗으로 심고 사랑으로 열매를 맺을 때에 보람차며 기쁜 나날일 테니까요.

 

 


.. 잎이 넓은 나무 가운데에 대표적인 늘푸른나무야. 한겨울에 탐스러운 붉은 꽃을 피우지. 동백나무는 제주도나 여수 같은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만 스스로 자라 ..  (30쪽)


 안경자 님이 그리고 노정임 님이 글을 쓴 그림책 《겨울눈이 들려주는 학교 숲 이야기》(철수와영희,2012)를 읽습니다. 겨울을 맞이해 새눈을 다부지게 북돋우는 나무들 이야기를 다루는데, 학교 언저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나무들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감나무 대추나무 모과나무는 학교에서 쉽게 보기 어려울 텐데요. 호두나무를 학교에 심는 곳이 있을까요. 아파트나 동네에서도 찾아보는 나무를 담았다고 합니다만, 앵두나무 잣나무 보리수나무 탱자나무 포도나무를 심는 학교는 거의 없지 않으랴 싶어요. 곰곰이 돌이키면, 도시에서도 이 같은 나무를 쉽게 찾아볼 만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탱자나무를 좋아해서 마당에 기르기도 하겠지요. 누군가 배씨를 받아 마당 한쪽에 배나무를 기르기도 할 테지요.

 

 인천 골목동네에서 아이들과 나들이를 즐기던 지난날, 곳곳에서 호두나무 앵두나무 탱자나무 포도나무 밤나무를 만났습니다. 골목집은 그리 크거나 넓지 않아 온갖 나무를 두루 심는 집은 드물지만, 한두 나무를 오래오래 아끼며 돌보는 집은 쉬 만날 수 있었어요. 석류나무를 예닐 곱 그루나 돌보는 집을 보았고, 이웃 여러 골목집이 저마다 석류나무를 심은 동네를 보았어요. 도시에서도 감나무를 알뜰히 심고 알차게 돌보아 스무 해나 서른 해나 마흔 해를 함께 살아가는 어르신을 어렵잖이 만났어요. 굵직한 대추나무에 굵게 달린 대추알을 호젓한 골목길에서 흔히 마주치곤 했어요.

 

 그러고 보면, 《겨울눈이 들려주는 학교 숲 이야기》는 “학교 숲 이야기”라기보다는 “마을 숲 이야기”나 “동네 숲 이야기”라고 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학교에서는 느티나무나 벚나무나 버드나무나 소나무나 향나무를 흔히 심잖아요. 열매나무는 좀처럼 안 심어요. 좀 따분하다 싶지만, 열매나무를 심으면 아이들 손을 너무 타니 잘 안 심을는지 모르지요.

 

 그런데, 아이들 많은 학교일수록 열매나무를 심어, 아이들이 열매 한 알 어떻게 맺는가를 찬찬히 지켜보도록 이끌면 훨씬 즐거우며 뜻있으리라 생각해요. 겨울 새눈부터 봄 새잎을 거쳐 꽃이랑 열매 무르익는 모습을 날마다 들여다보도록 이끄는 일만큼 좋은 가르침은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열매를 맺으면 이 열매에서 씨를 갈무리해 아이들이 집이나 마을에서 씨앗을 심도록 하지요. 이듬해부터 아이들 스스로 새 열매나무를 천천히 보살피며 지켜보도록 하면 되지요.

 


.. (회양목은) 겨울에도 잎이 지지 않는 늘푸른나무야. 촘촘히 심어 울타리를 만들기도 하고, 여러 가지 모양으로 다듬어서 가꾸기도 해. 그늘이나 공해가 심한 곳에서도 잘 자라고, 산에서도 잘 자라 ..  (55쪽)


 아이들은 저마다 어여쁜 꽃입니다. 아이들은 누구나 추운 겨울을 즐거이 누리며 새봄을 맞이해 활짝 피어나는 어여쁜 꽃입니다. 식물원이나 비닐집에서 바람 한 점 맞지 않으며 크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너른 흙땅에 맨 처음 씨앗으로서 뿌리를 내리고 새싹을 틔워 씩씩하게 줄기를 뻗는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은 푸른 숨을 쉽니다. 아이들은 푸른 숨을 마을 곳곳에 흩뿌립니다. 아이들은 푸른 숨결로 푸른 꿈이랑 사랑을 키웁니다.

 

 아이들 푸른 숨소리 귀기울여 들을 수 있도록 자동차가 줄어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아이들 푸른 바람이 시원히 불 수 있도록 찻길이 줄고 거님길이랑 흙길이 되살아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아이들 푸른 눈빛 반짝이도록 높직높직 아파트와 건물 줄어들고 너른 들판이랑 멧자락이 곳곳에 넘실거리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4345.2.23.나무.ㅎㄲㅅㄱ)


― 겨울눈이 들려주는 학교 숲 이야기 (바람하늘지기 기획,안경자 그림,노정임 글,철수와영희 펴냄,2012.2.19./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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