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 책 없는 책읽기
집을 떠나 며칠 먼길 마실을 하는 동안 읽을까 싶어 책 두 권 챙긴다. 되도록 얇고 가벼운 책으로 골라 가방에 챙기는데, 얇고 가벼운 책을 챙겼기 때문은 아닐 테지만, 잠자리맡에서 펼치고 집으로 오는 고속버스에서 아이를 무릎에 누여 재운 다음 읽어 보지만 좀처럼 책장을 넘기지 못한다. 내 마음에 새로운 넋과 얼을 불러일으킬 만한 삶이 드러나지 않는 글이기 때문이다.
무겁고 두껍더라도 내 마음 사로잡는 책을 골라서 가방에 챙겨야 한다고 새삼스레 깨닫는다. 먼길 마실을 하며 만나는 사람들하고 어우러지는 나날이 즐거우니 굳이 종이책은 없어도 될 만하다. 다만, 숨을 돌리는 짬이라든지 느즈막하게 잠자리에 드는 때라든지 아침에 혼자 일찍 일어난 때라든지, 하루 가운데 몇 분쯤 책장을 넘길 겨를이 있다. 이동안 읽을 책을 한 권쯤 챙기려 한다.
읽을 책 없는 책읽기는 너무 고단하다. 눈도 마음도 머리도 몸도 몹시 고단하다. 읽을 만한 책이어야 비로소 책읽기를 즐길 만하다. (4345.2.14.불.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