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책 《My Paris》는 다시 살 수 없는 사진책이기에,
다른 로베르 두와노 사진책에 이 글을 붙입니다.



사랑하는 고장과 이야기를 사진으로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48] 로베르 두와노(Robert Doisneau), 《My Paris》(Macmillan,1972)
더 잘 찍는 사진이란 없기 때문에, 더 사랑스레 느낄 사진이란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느 사진이든, 이 사진 하나는 옹글게 태어납니다. 더 못났다 싶은 사진이나 더 잘났다 싶은 사진이란 없습니다. 초점이 어긋나거나 초점이 빈틈없이 맞거나 대수롭지 않아요. 흔들렸거나 안 흔들렸거나 대단하지 않습니다. 사진으로 태어났으면 어느 사진이든 사랑스러운 넋이 깃듭니다.
서울이 인천보다 나은 삶터가 아닙니다. 인천이 수원보다 나은 삶터가 아닙니다. 수원이 보성보다 나은 삶터가 아닙니다. 보성이 부산보다 나은 삶터가 아닙니다. 부산이 도쿄보다 나은 삶터가 아니에요, 도쿄가 파리보다 나은 삶터가 아니에요.


어느 곳이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한테 가장 걸맞으면서 좋은 삶터입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서울을 가장 따스하거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럽거나 즐거이 받아들일 만합니다. 파리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파리를 가장 좋거나 멋스럽거나 기쁘게 받아들일 만해요.
굳이 쿠바 아바나를 사진으로 담아야 대단하지 않습니다. 애써 네팔 카트만두를 담아야 빛나지 않습니다. 인도 캘커타를 담거나 일본 훗카이도를 담아야 아름답다 하지 않아요. 내가 사랑하는 터전에서 나 스스로 사랑하는 삶을 일구면서 사진을 찍어야 비로소 즐겁게 읽을 만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마을에서 내 좋은 이야기를 오순도순 나누는 나날을 고스란히 담을 때에 바야흐로 기쁘게 나누는 사진이라 이름 붙입니다.


로베르 두와노(Robert Doisneau) 님이 빚은 사진책 《My Paris》(Macmillan,1972)를 읽습니다. 로베르 두와노 님한테는 아주 마땅히 “내가 살던 파리”요 “우리 파리”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파리”일 테고 “나와 파리”가 돼요.
프랑스이든 파리이든 밟은 적 없는 나로서는 사진책으로 프랑스와 파리를 헤아립니다. 프랑스마실을 한 적조차 없지만 프랑스사람을 만난 적마저 없지 않느냐 싶어, 이 사진책을 펼치며 비로소 프랑스 이야기를 곰곰이 돌아봅니다.


파리라서 대단할까? 파리라서 돋보일까? 파리라서 눈부신가? 파리라서 남다른가?
글쎄, 나는 사진책 《My Paris》를 읽는 내내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남다르거나 빛다르다 할 만한 이야기는 느끼지 못합니다. 로베르 두와노 님이 살아가는 파리는 이러한 모습이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내가 파리에서 살아간다 하면 이러한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일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로베르 두와노 님이 좋아하는 꿈이 깃든 파리는 이러한 모습이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내가 파리에서 나고 자라며 파리를 바라본다면 아주 다른 빛깔과 느낌과 이야기를 나눌 사진을 찍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로베르 두와노 님은 다른 사람들한테 프랑스 파리를 이렇게 보여주고 싶었구나 하고 느낍니다. 나는 프랑스 파리이든 한국땅 고흥이든 이 사진책에서와는 사뭇 다르게 사람들 삶과 사랑과 꿈을 들려주고 싶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스스로 사랑하는 고장과 이야기를 사진으로 찍습니다. 누구나 스스로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나날을 사진으로 옮깁니다. 누구나 스스로 즐거이 누리는 꿈과 노래와 밥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프랑스에 가면 에펠탑을 오른다든지 몽마르트에 간다든지 하란 법이 없습니다. 무슨 박물관에 간다거나 무슨 도서관에 간다거나 누구 무덤에 간다든지 하란 법도 없어요.
누군가는 프랑스에 펼쳐진 숲을 느끼고 싶겠지요. 누군가는 프랑스를 싱그러이 북돋우는 멧자락을 느끼고 싶겠지요. 누군가는 프랑스에 있을 갯벌과 바다를 느끼고 싶겠지요. 누군가는 프랑스에서 올려다볼 뭉게구름을 느끼고 싶겠지요. 또, 누군가는 프랑스에 있을 헌책방을 느끼고 싶을 테고요.



어느 모습을 어떻게 담더라도 프랑스 모습이요 프랑스 이야기입니다. 어떤 빛깔을 어찌저찌 옮기더라도 프랑스 파리 이야기입니다. 어떤 꿈과 사랑이 감도는 모습을 담더라도 프랑스 파리를 이루는 사람들 이야기예요.
스스로 사랑하는 고장이 아니라면 섣불리 사진을 찍지 못합니다. 스스로 사랑하는 이야기를 느끼지 못하면 필름과 메모리카드만 끝없이 채울 뿐, 고운 빛살을 보여주지 못해요.


날마다 우중충한 빛살을 느껴 우중충한 빛살을 보여줄 수 있어요. 날마다 어두컴컴한 시멘트 그늘을 느껴 어두컴컴한 그늘을 보여줄 수 있어요. 날마다 시원한 여름바람 나무그늘을 느껴 시원한 여름바람 나무그늘을 보여줄 수 있어요.
하루 동안 새벽부터 밤까지 돌아다니며 내 이야기 찾을 수 있습니다. 예닐곱 해나 스무 해에 걸쳐 오래도록 바라본 내 이야기 찾을 수 있습니다. 한 해 네 철 따라 바라본 내 이야기 찾을 수 있겠지요.
내가 좋아하는 삶결 그대로 내가 즐거이 빚는 사진입니다. 내가 누리는 삶결 고스란히 내가 애틋하게 보살피며 예쁘게 빚는 사진이에요.
슬프다고 느끼며 살아가면 슬프다고 느낄 사진이 태어나요. 기쁘다고 느끼며 살아가면 기쁘다고 느낄 사진이 태어나요. 서럽다 여기며 살아가면 서럽다 느낄 사진이 태어나고, 외롭다 느끼며 살아가면 외롭다 느낄 사진이 태어나요.
옳거나 맞거나 틀리거나 그릇된 사진은 없어요. 모두 다 다른 사람들, 모두 다 다른 삶, 모두 다 다른 사랑과 아픔과 이야기 아로새기는 사진이에요. (4345.2.4.흙.ㅎㄲㅅㄱ)






(사진 잘 보셨으면, 구경삯으로 추천 한 번을~ ^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