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 더 3
야마카와 나오토 지음, 오지은 옮김 / 세미콜론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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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하며 살아가는 하루
 [만화책 즐겨읽기 104] 야마카와 나오토, 《커피 한 잔 더 (3)》

 


 무언가 답답하니 말을 안 합니다. 무언가 꽁 하고 맺히니 말문을 못 엽니다. 무언가 괴롭기에 말을 안 합니다. 무언가 슬픈 나머지 말길을 못 틉니다.

 

 내가 태어나 살아가는 이 나라에서 내가 쓰는 말은 한겨레말입니다. 내가 오늘 쓰는 말이랑 오백 해 앞서 살던 사람들이 쓰는 말은 꼭 같지 않을 테지만 모두 한겨레말입니다. 천오백 해 앞서 살던 사람들이나 이천오백 해 앞서 살던 사람들이 쓰는 말 또한 서로 같지 않을 테지만 모두 한겨레말이에요.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겨레는 언제부터 말을 나누었을까요.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겨레는 언제부터 입으로 생각을 털어놓으며 살림을 꾸렸을까요. 십만 해쯤 앞서는, 백만 해쯤 앞서는, 어떤 겨레가 어떤 말로 어떤 생각을 주고받았을까요.


- “저기, 괜찮으세요? 어디 안 좋으신 데라도?” “……. 그러는 자네는 잘 진나? 상태는 괜찮은가?” “……. 좋은 밤 되세요∼.” “음냐 음냐.” (10쪽)


 말이 넘치는 온누리입니다. 글이 춤추는 지구별입니다. 날마다 수많은 이야기가 쏟아지고, 나날이 갖가지 책이 태어납니다.

 

 나는 어떤 삶을 누리면서 어떤 말을 내놓을까요. 내 이웃이나 동무는 어떤 삶을 즐기면서 어떤 글을 쓸까요.

 

 서로서로 생각을 나누려고 말을 하나요. 서로서로 사랑을 꽃피우려고 글을 쓰나요. 다 함께 따순 마음이 되고자 말을 하나요. 모두 함께 좋은 꿈을 이루고자 글을 쓰나요.


- “부르는 소리 전혀 안 들렸어? 우산 써.” “요다 형.” “아무 말도 안 하고 연습 중에 나가 버리면 어쩌나.” “죄송합니다.” “그 가방은 뭐야.” “돌아갈 생각이었나?” “죄송합니다.” (25쪽)


 이야기하며 살아가는 하루입니다. 좋은 이야기이든 나쁜 이야기이든, 반가운 이야기이든 고달픈 이야기이든, 기쁜 이야기이든 슬픈 이야기이든, 서로서로 한 마디 두 마디 주고받는 하루입니다.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말을 배웁니다. 어버이는 둘레 이웃이나 동무한테서 새로운 말을 듣고 배웁니다. 새로 겪는 삶은 새로 일구는 말이 됩니다. 새로 마주하는 삶터는 새로 샘솟는 글이 됩니다.

 

 날마다 빨래를 하더라도 날마다 새로운 빨래입니다. 날마다 호미질을 하더라도 날마다 새로운 호미질입니다. 날마다 자전거를 몰거나 두 다리로 걷더라도, 날마다 새로운 자전거 타기가 되고 날마다 새로운 걷기가 돼요.

 

 서른 해를 살아온 사람은 서른 해하고 하루를 더 살면, 서른 해하고 하루를 더 산 만큼 이야기를 합니다. 이틀을 더 살면 이틀을 더 살아낸 이야기를 합니다. 하루를 즐거이 누렸으면 하루를 즐거이 누린 만큼 말꽃을 피웁니다. 하루를 슬프게 보냈으면 하루를 슬프게 보낸 만큼 말잎이 돋습니다. 즐거워도 말이고 슬퍼도 말입니다. 튼튼해도 말이며, 아파도 말이에요.


- “시골에 계신 아버지가 쓰러지셨어.” “그래도 요다 형, 형님이 있으니까 괜찮다고 전에 말했잖아요.” “다 사정이 있다. 그것보다 더 뭐 사왔나 보자. 포테이토칩, 커피? 너 인마, 남의 집에 올 때는 좀더 생각을 하고 사오란 말이야. 잘 먹겠다만.” (33쪽)


 사람들은 생각을 말로 빚습니다. 사람들은 생각 아닌 꿍꿍이나 속셈이나 꾐수 따위를 말로 빚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사랑을 말로 짓습니다. 사람들은 사랑 아닌 미움이나 시샘이나 따돌림이나 들볶음 따위로 말을 짓기도 합니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어떤 무늬 어떤 결 어떤 내음 어떤 빛깔 어떤 소리일 때에 나부터 즐겁고 내 이웃과 동무 모두 즐거이 받아들일까요. 내가 듣는 말은 어떤 무늬 어떤 결 어떤 내음 어떤 빛깔 어떤 소리일 때에 나한테 말을 거는 사람부터 즐거우면서 내게 즐거운 선물을 나누어 줄까요.


-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나팔꽃의 묘목을 받았다. 이가라시 형이 매일 아침 물을 주고 있다니! 그러고 보니 이가라시 형, 담배도 피우지 않았더랬지.’ (80쪽)


 야마카와 나오토 님 만화책 《커피 한 잔 더》(세미콜론,2010) 셋째 권을 읽습니다. 꼭 차례대로 읽지 않아도 되는 만화책이라 셋째 권부터 읽습니다. 커피를 한 잔 더 마시겠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만화책은 아니고,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만화책 또한 아닙니다. 커피가 되어도 좋고 맥주가 되어도 좋으며 맹물이 되어도 좋습니다. 아무것 없어도 돼요. 서로서로 예쁘게 살아가고픈 꿈으로 예쁘게 나눌 이야기를 생각하는 나날을 어깨동무할 수 있으면 됩니다.

 

 사랑은 억지스러울 수 없습니다. 삶은 억지스러울 수 없습니다. 사람은 억지스러울 수 없습니다.

 배움이나 가르침은 억지스러울 수 없습니다. 일이나 놀이는 억지스러울 수 없습니다. 밥이나 집이나 옷 모두 억지스러울 수 없어요.

 

 정치를 하든 경제를 하든 문학을 하든 억지스럽다면 정치도 경제도 문학도 아닙니다. 신문기사이든 방송소식이든 늘 같습니다. 억지스레 만들 때에는 억지스러울 뿐이에요. 아무런 이야기가 샘솟지 않아요. 돈을 버는 자리에서든 자격증을 따는 곳에서든 억지스러운 틀에 매인다면 좋은 삶을 일구지 못해요. 틀에 갇힌 돈과 틀에 박힌 재주로는 아무런 꿈이 피어나지 않아요.

 

 수수하게 살아가며 수수하게 어우러지는 수수한 사람입니다. 수수한 이야기로 수수한 나날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밥 한 그릇이 수수하고, 옷 한 벌이 수수하며, 집 한 채가 수수합니다. 수수한 햇살과 수수한 흙과 수수한 바람과 수수한 물이 얼크러지며 모든 아름다운 목숨이 태어납니다. (4345.1.31.불.ㅎㄲㅅㄱ)


― 커피 한 잔 더 3 (야마카와 나오토 글·그림,오지은 옮김,세미콜론 펴냄,2010.7.16./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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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2-01-31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만화 재밌을 것 같아요.
그런데 억지스러운 게 넘 많잖아요.
나의원 성형수술비 550만원밖에 안 썼다는 것도 억지스럽고.
더구나 딸래미랑쓴 게 그 정도라면 믿겠습니까?
자연스러움조차 억지스럽게 짜맞추듯이 하는 세상이니...ㅠ

숲노래 2012-01-31 14:06   좋아요 0 | URL
억지로 꾸미려 하는 이야기 아니고
수수하게 펼치는 이야기라서
꽤 포근하게 읽을 만한 만화로구나 싶어요.

아쉽다고 한다면,
왜 한국 만화쟁이는 이렇게 수수한 멋 담는
만화를 못 그리느냐... 하는 대목이에요...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