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음표 한자말 165 : 감우(甘雨)
.. 문자 그대로 감우(甘雨)로구나 싶었다. 들과 풀과 나무와 내와 배꽃, 복숭아꽃이 달디달게 목을 축이고 무럭무럭 자라는 게 보이는 듯했다 .. 《박완서-혼자 부르는 합창》(진문출판사,1977) 16쪽
“문자(文字) 그대로”는 “말 그대로”로 다듬고, “자라는 게”는 “자라는 모습이”로 다듬어 줍니다.
이 글월에서는 ‘배꽃’이라 적지, ‘이화(梨花)’라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학교 이름이라든지 적잖은 데에서는 ‘이화’라는 낱말을 곧잘 씁니다. 배나무에 핀 꽃은 배꽃이라 하면 될 텐데, 굳이 한자로 덮어씌우고야 말아요.
이리하여, 한겨레가 예부터 쓰던 말마디는 ‘단비’이지만, 이 글월에서는 ‘감우(甘雨)’라는 한자말이 튀어나옵니다. 한글로만 적는다면 자칫 헷갈릴까 싶어 묶음표를 치고 ‘甘雨’를 달아 놓습니다. 그런데, 보기글 뒷자리를 보면 “달디달게 목을 축이고”라는 대목이 있어요. 이러한 말마디는 ‘달다’라고 적으나, 빗물이 달디달다고 하는 자리에는 왜 ‘단비’라 적지 못할까 궁금합니다.
감우(甘雨) : 때를 잘 맞추어 알맞게 내리는 비
- 7년 대한에 감우를 만나니 어찌 즐겁지 않겠느냐
감우(甘雨)로구나 싶었다
→ 단비로구나 싶었다
→ 반가운 비로구나 싶었다
→ 달콤한 비로구나 싶었다
→ 고마운 비로구나 싶었다
…
‘감우’나 ‘甘雨’는 한국말이 아닙니다. 한자말이요 중국말입니다. 한국사람이 쓸 말이 아닙니다. 한국사람이 주고받을 한국말은 ‘단비’입니다. 같거나 비슷한 뜻으로 “달디단 비”라 할 수 있고 “달콤한 비”라 할 수 있습니다. 글흐름을 살피면, “반가운 비”나 “고마운 비”나 “즐거운 비”나 “좋은 비”라 해도 잘 어울립니다.
“알맞게 내리는 비”라든지 “제때에 내리는 비”라든지 “목마를 때 내리는 비”라든지 “가뭄을 씻는 비”처럼 적을 수 있어요. “목마름을 씻는 비”나 “타는 목을 씻는 비”나 “가문 땅을 적시는 비”라 해도 됩니다.
알맞게 살릴 말마디를 헤아리면 좋겠습니다. 살가이 북돋울 글줄을 톺아보면 반갑겠습니다. 기쁘게 일굴 겨레말을 꿈꾸면 고맙겠습니다. (4345.1.30.달.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