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아이 타로오 창비아동문고 230
마쯔따니 미요꼬 지음, 타시로 산젠 그림, 고향옥 옮김 / 창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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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다섯 가운데 별 하나만 매기는 일이란 너무 슬프다.

그러나 내 마음을 속일 수 없다.

마음이 움직이지 못한 작품에 별 둘조차 붙일 수 없다.

 


 나한테 아름다운 삶이란 무엇일까
 [어린이책 읽는 삶 15] 마쯔타니 미요꼬, 《용의 아이 타로오》(창비,2006)

 


- 책이름 : 용의 아이 타로오
- 글 : 마쯔타니 미요꼬(마쓰타니 미요코)
- 그림 : 타시로 산젠
- 옮긴이 : 고향옥
- 펴낸곳 : 창비 (2006.11.30.)
- 책값 : 8500원

 


 밤에 쉬를 누러 마당으로 나와 논둑에 섭니다. 시골마을 고샅길 곳곳에 등불이 밝습니다. 고샅길 등불이 없다면 이 시골마을은 아주 깜깜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고샅길 등불이 있더라도 밤하늘 별이 초롱초롱합니다. 맑고 환하게 빛납니다. 불빛 하나 없다면 달빛이랑 별빛이 훨씬 맑고 환하겠다고 느끼지만, 시골마을 등불은 달빛이랑 별빛을 못 누리게 할 만큼 거치적거리지 않습니다.

 

 겨울날 밤바람이 차갑습니다. 겨울이니 마땅히 차갑겠거니 생각하며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땅에 불빛이 적으면 하늘에 별빛이 가득하고, 땅에 불빛이 많으면 하늘에 별빛이 사라집니다. 땅에 풀빛이 가득하면 하늘에 파란빛 넘실거리고, 땅에 까만 아스팔트빛 넘치면 하늘에 시커먼 잿빛이 그득합니다.


.. 뚝배기 깨지는 소리로 노래만 불러댔습니다. 배가 고프면 일어나서 경단을 먹었습니다. 토끼가 있으면 토끼와 함께, 쥐가 있으면 쥐와 함께 먹었습니다 ..  (11쪽)


 밤에 별을 볼 수 있는 곳에서 살아가니 좋구나 하고 생각하다가는, 막상 밤에 별을 볼 수 있는 이 시골에서 밤에 한두 시간 즈음 아주 느긋하게 별을 올려다본 적은 없구나 싶습니다. 살짝살짝 나와서 올려다보았을 뿐입니다. 파랗고 높은 낮하늘을 올려다볼 때에도 이와 비슷해요. 살짝살짝 나와서 올려다볼 뿐, 막상 흙을 밟거나 보살피며 오래오래 올려다보지 못합니다.

 

 이 겨울이 가고 봄을 맞이하면 아주 흙에서 살아야지 하고 생각하지만, 겨울에 겨울대로 겨울흙을 마주하지 않는다면, 봄이라 해서 갑작스레 달라지는 삶이 될까요. 아이들이 모두 더 자라 스스로 걷고 달리고 호미를 쥘 무렵에야 비로소 흙하고 마음껏 뒹굴 수 있을까요.

 

 바로 오늘부터 만날 흙이고, 바로 오늘부터 부대낄 바람이며, 바로 오늘부터 등에 질 햇살이에요. 내 삶이 집에서 빨래하고 밥하며 청소하는 삶이 아니라 한다면, 빨래랑 밥이랑 청소는 이대로 즐거이 누리면서 흙을 보듬는 삶이라 한다면, 이 좋은 결을 곱게 즐기면서 누리는 쪽으로 조금씩 거듭나야 합니다.


.. “할머니는 어른이 돼야 한다고 했지만 난 못 기다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엄마를 찾아올게. 옛날처럼 사람의 모습으로 만들어서 할머니한테 데려올 거야. 갑자기 용이 됐으니까 틀림없이 다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할머니, 꼭 기다려야 해!” ..  (42쪽)


 마쯔타니 미요꼬 님이 쓴 동화책 《용의 아이 타로오》(창비,2006)를 읽는 내내 곰곰이 생각합니다. 곡식 얻을 땅뙈기가 너무 모자란 멧골 깊은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널따란 논을 얻는 줄거리가 나오는 동화책인데, 어쩐지 그닥 가슴이 울렁울렁 뛰지 않습니다.

 

 왜 논에 모를 심고 벼를 거두어 쌀을 얻은 다음 밥을 해서 먹어야 하나요. 사람은 쌀만 먹어야 살아갈 수 있나요. 사람이 목숨을 건사할 만큼 먹을 곡식은 어느 만큼 거두어야 하나요. 사람한테 얼마나 널따란 땅뙈기가 있어야 하나요.

 

 무나 당근이나 감자나 고구마나 온갖 푸성귀랑 열매랑 다른 곡식이 있지 않나요. 풀을 뜯고 잎을 먹으며 뿌리를 캘 수 있지 않나요. 물고기를 잡거나 들짐승을 잡을 수 있지 않나요.


.. 타로오는 얼굴까지 시뻘게져서 화를 냈습니다. “농부들에게 가장 소중한 물줄기를 가지고 못된 짓을 서슴지 않는단 말이지. 좋아, 내가 꼭 없애 주겠어.” ..  (70쪽)


 용이 되고 말았다는 어머니를 다시 사람으로 돌리고픈 꿈을 품은 아이 타로오는 머나먼 길을 떠나고, 온갖 모험을 거친다고 합니다. 그나저나, 흙일꾼을 성가시게 구는 이를 죽여서 없애는 일이 참말 흙일꾼을 돕는 일인지 궁금합니다.

 

 나쁜 동화나 아쉬운 작품이라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들한테 집어넣으려 하는 교훈이 너무 뻔하게 드러납니다. 전쟁이 싫으면 더 힘이 세져서 전쟁에서 이기면 될까요. 주먹다짐으로 괴롭히는 이가 못마땅하다면 주먹힘을 더 키워서 이 몹쓸 녀석을 물리치면 되나요.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전쟁을 전쟁으로 이길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를 밴 어머니가 얼마나 크게 잘못을 했기에 ‘용이 되는 벌’을 받고 ‘두 눈까지 잃어야 하는’지 참으로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다르게 느낍니다. 논일을 하기에 흙일꾼한테 물줄기가 “가장 소중하다” 말할 수 있을 테지만, 물이란 “흙일에서 가장 소중한” 무엇이 아니라, 모든 목숨이 살아숨쉴 때에 밑바탕이 되는 무엇이 아닌가 싶어요. 물과 바람과 햇살이 없으면 어떠한 목숨도 살 수 없어요. 곧, 흙일을 하는 흙일꾼한테는 무엇보다 ‘흙’이 가장 대수로우며 거룩하지 않느냐 싶어요.


.. “그렇지만 이런 보물을 그저 아낌없이 죄다 먹어치울 순 없어. 씨앗으로 둠세. 어때, 우리도 벼농사를 짓자고.” ..  (130쪽)


 《용의 아이 타로오》를 덮습니다.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이 동화책을 쓴 분은 아이들한테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을까 찬찬히 돌아봅니다. 나는 내 옆지기와 아이들하고 이야기를 나눌 때에 무엇보다 ‘나한테 아름다운 삶이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합니다. 나한테 아름다운 길과 옆지기한테 아름다운 길과 아이들한테 아름다운 길을 곰곰이 생각합니다. 다 함께 아름다운 길을 걷는 삶이라면 어떠한 모습과 매무새와 몸짓이어야 할까 하고 찬찬히 돌아봅니다.

 

 옆지기는 나한테 교훈을 들려줄 수 없습니다. 나는 옆지기한테 교훈을 들려줄 수 없습니다. 서로서로 가장 사랑하는 꿈을 나눌 뿐입니다.

 

 꿈이란 무엇일까, 그래, 동화라 한다면, 동화 아닌 어른문학이라 하더라도 이와 마찬가지일 텐데, 어린이문학이든 어른문학이라 하든 문학이라 한다면, 바로 ‘어떤 꿈을 들려줄 이야기’인가 하는 대목을 깊고 넓게 다룬다고 느껴요. 그러니까, 나는 《용의 아이 타로오》를 읽는 내내, 이 문학에서 아이들하고 나누고픈 ‘꿈’이 무엇인가를 도무지 읽지 못했습니다.


.. 용은 말없이 계속 생각했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자. 이 아이의 생각에 힘을 실어 주는 거야.’ ..  (164쪽)


 옛이야기를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일이 훌륭하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옛날 옛적 이야기이든 오늘날 이야기이든 앞으로 맞이할 이야기이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면, ‘어떤 사랑을 담는 사람들 꿈’인가를 조곤조곤 밝혀야지 싶어요. ‘어떤 사랑을 담는 사람들 꿈’인가를 낱낱이 드러내지 못한다면, 살가이 꽃피우지 못한다면, 어여삐 북돋우지 못한다면, 이러한 작품은 어린이문학으로나 어른문학으로나 글맛이 없는 노릇이구나 싶어요. 글맛이 없다면 삶맛 또한 없는 셈이구나 싶어요.

 

 애써 옛이야기를 빚으려 하지 않아도 좋아요. 꼭 문학이나 작품이나 예술이나 문화라는 틀에 넣지 않아도 돼요. 좋은 사랑과 착한 꿈과 빛나는 슬기를 이야기 한 자락에 담으면 기쁘겠어요. 나 스스로 오늘 하루 아름답구나 싶은 삶을 누리면, 나는 오늘부터 가장 좋은 문학이 될 이야기를 일군다고 느껴요. 이 이야기는, 내가 눈을 감고 흙으로 돌아간 뒤에, 내 아이들과 내 아이들이 낳을 아이들한테 사랑스러울 ‘옛이야기’가 되리라 믿어요. 굳이 ‘오늘 옛이야기 틀을 만들어 뭔가를 써야’ 문학이 되지 않아요. (4345.1.1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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