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씻어내며 우리 말 살리기
 (164) -화化 164 : 의식화 1

 

.. 딸애는 다행히 지금 ‘여자도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은 엄마인 나의 생활을 보며 의식화된 것인데, 가끔 “나는 크면 회사 다닐 거야” 하곤 “회사에서 돈벌어서 엄마 이쁜 옷 사 줄 거야” 한다 ..  《김수미-그리운 것은 말하지 않겠다》(샘터,1987) 100쪽

 

 ‘다행(多幸)히’ 같은 말마디는 굳이 다듬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때와 곳에 따라 조금 더 헤아려 볼 수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는 ‘고맙게도’나 ‘뜻밖에도’나 ‘반갑게도’로 다듬을 수 있어요. “-는 사실(事實)을 당연(當然)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또한 그대로 두어도 됩니다. 그저 이 자리에서는 “-는 생각을 마땅하게 받아들인다”라든지 “-는 삶을 즐겁게 받아들인다”로 손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다듬거나 손보면서 글흐름을 돌아볼 때에,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똑같은 느낌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굳이 이처럼 다듬거나 손보는 까닭은, 말하고자 하는 이가 어떤 이야기를 말하고자 하는가를 찬찬히 돌아보면서 말과 글을 다룬다면 더 좋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듣는 사람 자리에서 어떻게 말을 들려줄 때에 한결 알맞고 좋을까를 살피고 싶기 때문입니다.

 

 “나의 생활(生活)”은 “내 삶”으로 손질하고, “회사 다닐 거야”는 “회사 다닐 테야”나 “회사를 다니겠어”로 손질하며, “의식화된 것인데”는 “의식화되었는데”쯤으로는 손질해 줍니다.

 

 의식화(意識化) : 어떤 대상에 대하여 깨닫거나 생각하게 함. 특히, 계급 의식
    을 갖게 한다는 뜻으로 쓴다
   - 의식화 작업 / 노동자들이 의식화되면서 /
     조선의 농민들을 의식화한다는 것은 어려운 면도 있겠으나

 

 엄마인 나의 생활을 보며 의식화된 것인데
→ 엄마인 내 삶을 보며 생각한 셈인데
→ 엄마인 내 삶을 보며 느꼈을 텐데
→ 엄마인 내 삶을 보며 배웠을 텐데
→ 엄마인 내 삶을 보며 몸에 배었을 텐데
 …

 

 국어사전 뜻풀이에 잘 나오듯이 여느 사람들은 ‘의식화’라는 말마디를 “계급 의식을 갖게 한다”는 뜻으로 으레 씁니다. 그야말로 계급 의식을 느끼게 하도록 애쓰는 쪽이든, 이러한 쪽을 안 좋게 보는 쪽이든 똑같이 씁니다.

 

 그러면 ‘의식화’란 어떤 일일까요? 말 그대로 헤아리자면 “의식을 하도록 한다”는 이야기이겠지요. 다음으로 ‘의식(意識)’이란 무엇일까요? “세상을 보는 눈과 머리를 깨운다”는 소리입니다. 그러니까, 좋게 보든 얄궂게 보든 ‘의식화’라고 하는 일은 “우리 누리를 제대로 파헤치거나 올바르게 꿰뚫어보도록 이끄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하나도 나쁘게 여길 말마디가 아니요, 조금도 얄궂게 돌아볼 말투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나라는 자유민주주의 나라가 아닙니다. 정부에서는 이 땅이 자유민주주의라고 내세우지만, 속살을 들여다보았을 때에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자유도 민주도 죄 억눌리니까요. 왜냐하면 국가보안법이 도사리거든요. 국가보안법을 비롯해 초·중·고등학교 제도권교육이 오로지 입시지옥으로 친친 얽매고 뒤틉니다. 꿈을 펼치며 아름답게 살아갈 나날을 열어젖히는 사회살이가 아니라, 돈을 많이 벌지 않으면 뒤처지거나 나동그라질밖에 없는 사회 얼거리예요.

 

 곧, 이 나라에서 ‘의식화’라 한다면 겉과 속이 다른 우리 누리와 나라와 정부와 얼거리 모두를 샅샅이 깨우친다는 이야기입니다.

 

 누구나 우리 누리뿐 아니라 내 삶터와 보금자리와 마을이 어떤 모습인가를 참답게 알고 깨우치고 느끼고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의식화’란 어떤 주의나 사상을 억지로 집어넣는 일이 아니라 나 스스로 아름답고 바르게 살아가자는 흐름이요 결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온누리를 올바르게 읽고 가슴에 새기는 흐름과 결이란 어쩔 수 없이 기득권이든 권력자이든 우리 삶터를 어떻게 짓누르거나 억누르면서 뒤트는가를 깨닫는 길이기 마련이고, 이렇게 깨닫고 나면 잘잘못을 바로잡도록 힘을 기울입니다. 잘잘못을 바로잡도록 힘을 기울이다 보면 기득권이든 권력자이든 싫어하거나 짜증스레 느끼기 마련이요, 이동안 저절로 ‘의식화’ 같은 말마디를 얄궂거나 나쁘게 받아들이도록 뿌리박아 버립니다. 말이 말다울 수 없도록 하고, 사람이 사람다울 수 없도록 한달까요. ‘의식화’가 말썽거리가 아니라 의식화를 가로막는 사람이 말썽거리입니다만, 말이 비틀리고 넋이 뒤틀립니다. 의식화를 어떤 밥그릇 지키기로 써먹으려는 사람이 골칫거리입니다만, 글이 짓눌리고 삶이 억눌립니다.

 

 의식화 작업 → 생각 깨우기 / 생각 열기
 노동자들이 의식화되면서 → 노동자들이 깨어나면서 / 노동자들이 세상을 배우며
 농민들을 의식화한다는 것은 → 농민들을 깨우친다는 일은

 

 우리는 우리 말을 제대로 써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말을 올바로 써야 합니다. 우리 말을 제대로 느끼고 제대로 다루어야 합니다. 우리 말을 참답게 깨닫고 참답게 가꾸어야 합니다. 지식쪼가리를 머리에 쑤셔넣는 배움이 아닌 말 한 마디에 사랑과 믿음을 고이 담는 배움으로 이어가야 합니다. 지식부스러기를 먹고사는 사람이 아닌 삶을 살찌우는 넋과 얼로 빛나는 사람이 되도록 다스려야 합니다.

 

 한자말로 하자면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말로 하자면 깨어나야 합니다. 깨우쳐야 합니다. 일깨워야 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알아내야 하며 알아채야 하고, 알아들어야 하고 알아보아야 합니다.

 ‘의식을 한다’이든 ‘의식을 하게 한다’이든 바로 ‘알도록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앎을 내 머리나 가슴에 품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앎을 받아들인다’는 소리요, 이 앎이 슬기로 거듭나도록 갈고닦는다는 셈입니다.

 

 삶이 삶답도록 갈고닦습니다. 말이 말답도록 갈고닦습니다. 넋이 넋답도록 갈고닦습니다. 그리고 우리 누리가 참누리다울 수 있게끔 갈고닦는 길에 내 한 손을 보탭니다. (4343.2.21.해./4345.1.12.나무.ㅎㄲㅅㄱ)

 

 


 '-화(化)' 씻어내며 우리 말 살리기
 (175) -화化 175 : 의식화 2

 

.. 말하자면, 자기 자신이 자각하지 못하던 유아기를 의식화함으로써, 또 한 번의 인생을 살게 되는 셈이다. 자신의 아이가 울거나 싸우거나 할 때마다 아이의 기분에 감정이입함으로써 자기 인생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의 성격이 형성된 배경을 발견하거나, 어디서 실패했는지를 깨닫기도 한다 ..  《아이카와 아키코/장희정 옮김-흙에서 자라는 아이들》(호미,2011) 143쪽

 

 “자기(自己) 자신(自身)이 자각(自覺)하지 못하던”은 “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던”으로 다듬고, ‘유아기(幼兒期)’는 ‘어린 날’로 다듬으며, “또 한 번의 인생(人生)을 살게 되는 셈이다”는 “또 한 번 새롭게 살아가는 셈이다”로 다듬습니다. “인생을 살게”는 겹말입니다.

 

 “자신의 아이가”는 “내 아이가”로 손보고, “아이의 기분(氣分)에 감정이입(感情移入)함으로써”는 “아이 마음을 헤아리면서”나 “아이 마음을 들여다보면서”로 손보며, “자기 인생”은 “내 삶”으로 손봅니다. “자신의 성격(性格)이 형성(形成)된 배경(背景)을 발견(發見)하거나”는 “내 마음씨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알아채거나”나 “내 몸가짐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느끼거나”로 손질하고, “어디서 실패(失敗)했는지를”은 “어디서 잘못되었는지를”이나 “어디서 엇나갔는지를”로 손질합니다.

 

 유아기를 의식화함으로써
→ 어린 날을 느끼면서
→ 어린 날을 생각하면서
→ 어릴 적을 되새기면서
→ 어릴 적을 떠올리면서
→ 어릴 적을 헤아리면서
 …

 

 보기글을 잘 살피면, 첫머리에 ‘의식화’라는 낱말이 나오고, 뒤따라 ‘되돌아보다’와 ‘깨닫다’라는 낱말이 나옵니다. 이 세 낱말을 살피고, 이 세 낱말을 쓴 자리가 어떤 뜻이요 느낌인가를 곰곰이 짚으면, 세 낱말은 아주 다르게 쓴 낱말이 아니라, 같은 이야기를 하려고 넣은 낱말이라고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글을 쓴 분은 세 자리 모두 ‘의식화’나 ‘의식하다’라는 낱말을 넣을 수 있습니다. 세 자리 모두 이러한 한자말을 털어내고는 다 다른 낱말을 다 다른 느낌과 말맛을 살려 알맞게 넣을 수 있어요.

 

 자기 인생을 되돌아보게 된다 (o)
 자기 인생을 의식하게 된다 (x)
 어디서 실패했는지를 깨닫기도 한다 (o)
 어디서 실패했는지를 의식하기도 한다 (x)

 

 어떠한 낱말을 써서 어떠한 이야기를 들려주려 하는가는 저마다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슬기로이 생각할 때에는 슬기로운 빛이 감도는 낱말과 말투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름다이 생각할 때에는 아름다운 꿈이 어리는 낱말과 말투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랑스레 생각할 때에는 사랑스러운 뜻이 깃드는 낱말과 말투로 이야기를 들려줘요.

 

 생각할 때에 살아나는 말이에요. 생각하지 않을 때에 스러지는 말이에요. 생각하는 사람들이 북돋우거나 일구는 말이에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망가뜨리거나 내팽개치는 말이에요.

 

 내 삶을 생각하고 내 사랑을 생각합니다. 내 사람을 생각하고 내가 나아갈 길을 생각합니다. 옳게 생각하고 착하게 생각합니다. 곱게 생각하며 즐거이 생각합니다. (4345.1.1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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