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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Moon : 스바루 1
소다 마사히토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앞서 '최규석 만화 비평'을 한 까닭을 이 만화책 느낌글에서 몇 가지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함께 적어 보았습니다. 최규석 님을 비롯해서 한국땅 한국만화가 옳고 아름다이 나아가지 못하는 아쉬운 울타리를 부디 하루 빨리 깨달아 스스로 예쁘게 허물어 주면 기쁘겠어요.
같이 눈 맞추며 춤춘다
[만화책 즐겨읽기 105] 마사히토 소다, 《moon (1)》(학산문화사)
아이하고 놀면서 눈을 안 맞춘다면 함께 노는 어른이나 어버이가 아닙니다. 동무하고 놀면서 눈을 안 맞춘다면 동무는 이내 ‘이놈 뭐 하나?’ 하고 느끼면서 시큰둥해지고 맙니다. 내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모르되, 내 눈으로 내 둘레를 마음껏 살필 수 있다면, 서로 마주보면서 밥을 먹고 함께 뛰놀며 이야기꽃 피울 때에 참말 즐거워요.
그러나 서로 눈을 마주하지만, 속마음을 영 나누지 못할 때가 있어요. 마음에 울타리를 세우면 어떠한 이야기도 나누지 못하고, 아무런 사랑이 피어나지 않아요.
마음도 사랑도 꿈도 믿음도 일도 놀이도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면서 꽃피웁니다. 똑같은 길을 걷거나 똑같은 곳을 바라보기에 사랑이 되지 않아요. 서로를 따스히 어루만지고 서로를 너그러이 감싸안으며 서로를 알뜰히 아낄 수 있을 때에 사랑이 돼요.
눈을 마주친다 할 때에는 그저 들여다보거나 바라보는 일이 아니라, 내 속마음이 훤히 드러나도록 허물없는 사람이 되는 일이에요. 말똥말똥 뜨는 눈이 아니라, 싱그럽고 해맑은 빛이 초롱초롱 흐드러지는 눈이어야 해요.
- “일본에 가는 걸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거야. 자기 나라에서 춤추는 게 왜 싫으냐고.” “그냥. 싫다고.” (36쪽)
발레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다루는 만화책 《moon》(학산문화사,2009) 1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만화책 《moon》은 발레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다루지만, 이야기를 발레에서 뽑아낼 뿐, 발레 만화라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전문 발레 지식을 파헤치거나 전문 발레 경연을 뽐내지 않아요. 이를테면, 만화책 《피아노의 숲》이 피아노 만화가 아닌 테두리하고 같아요. 만화책 《피아노의 숲》은 피아노와 함께 자라면서 피아노를 삶으로 녹여내는 사랑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사랑은 피아노 아닌 바이올린이어도 같았을 테고, 피리나 하모니카나 기타였어도 비슷했으리라 느껴요. 무엇이냐 하면,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며 무엇을 왜 사랑하느냐예요.
만화책 《moon》도 이 대목을 짚어요. 아직 한국만화가 다가서지 못하고, 일본만화는 퍽 수월하다 싶을 만큼 잘 짚는 대목이에요. 어떤 이야기(소재)를 다루느냐는 하나도 대수롭지 않아요. 무슨 이야기를 다루든, 삶과 사랑과 사람을 보여줄 수 있어야 참다이 즐거이 누릴 만화예요.
- ‘거짓말. 4시간이나 본 거야? ……. 아무리 생각해도 아깝단 말이야.’ (46쪽)
만화에 나오는 어느 일본사람은 《moon》에 나오는 주인공 가시내가 4시간이나 쉬지 않고 연습하는 모습을 시간을 잊은 채 지켜봅니다. 지켜보는 사람도 놀라고, 춤을 추다가 제풀에 지쳐 쓰러지는 사람도 놀랍니다.
그런데, 삶이란 이와 같아요. 삶은 시간을 따지지 않아요. 아이한테 젖을 물리며 시간을 재는 어머니는 없어요. 아이하고 손 잡고 작은 방에서 춤추며 노는 어버이 어느 누구도 몇 분 몇 초만 이렇게 논다며 시간을 재지 않아요. 사랑하는 짝꿍을 바라보는 두 사람이 몇 시간 동안 서로를 애틋하게 바라보아야 ‘사랑’이라고 여기지 않아요. 고작 몇 초를 바라보더라도 애틋하게 느낄 사랑인 줄 알아채요.
-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한 거니?” “아침에 일어났더니 말이죠. 열이 내려서 몸 상태가 좋았거든요. 그런데 아무것도 할 일이 없지 뭐예요.” “그야 입원 중이니까 당연하지.” “최악이지 않아요?” (58∼59쪽)
만화책을 한 쪽 두 쪽 차근차근 읽으며 찬찬히 헤아립니다. 발레를 하든 어떤 춤을 추든, 1등을 하려고 춤을 추는 사람도 어김없이 있으리라 생각해요. 그렇지만 말예요, 1등을 하려고 춤을 추는 사람 이야기는 만화로 그리지 않을 뿐더러, 이런 사람 이야기는 만화로 그려도 재미없어요. 1등을 꿈꾸며 춤을 추는 사람 이야기를 만화로 그린들 무슨 뜻이나 보람이나 빛이 있겠어요. 이런 만화에는 어떠한 사랑도 깃들지 않는걸요.
공옥진 님 춤사위는 1등을 노리는 춤일까요. 지난날 수많은 굿판은 서로 1등 굿잔치를 보여주겠다는 춤사위였을까요. 이애주 님 춤사위를 떠올리거나 기리는 이들은 이애주 님이 1등 춤꾼이라고 여길까요.
누구보다 뛰어난 춤이란 없어요.
가장 멋스러운 춤이란 없어요.
훌륭해서 역사에 남는다 하는 춤이란 없어요.
춤을 추는 사위 하나를 느끼면서 웃고 울 뿐이에요.
춤 이야기를 만화로 그린다면, 바로 이 대목, 춤을 추는 사위 하나를 느끼면서 웃고 우는 이야기를 담을 수 있으면 넉넉해요.
- “저어, 이거? 미안. 내가 저쪽으로 조금 밀었거든. 눈이 안 보이는 거야?” “그래서 뭐?” “흐음, 그래서 그렇구나. 그래서 그렇게 자유로운 거구나.” “뭐야 그게?” “나랑 같이 추자. 파 드 두!” (94∼96쪽)
따돌림받는 사람을 만화로 그린대서 훌륭한 작품이지 않아요. 가난하거나 푸대접받는 사람을 만화로 그린대서 진보나 개혁이나 혁명이나 뭐가 되지 않아요. 만화는 편가르기도 아니요 예술도 아니에요. 만화는 문화도 아니고 교육도 아니에요. 만화는 정치도 아니고 사상도 아니에요. 만화는 오직 만화예요. 만화는 사람들이 서로 얼크러지면서 빛내는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 삶으로 즐거운가 하는 이야기를 글이랑 그림으로 함께 보여주는 잔치마당이에요.
한껏 홀가분하게 춤을 추어요.
그예 거침없이 춤을 추어요.
둘레 사람들 눈치를 왜 보나요. 내 삶은 이웃 눈치를 보는 삶인가요. 내 삶은 내가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결을 북돋우는 가장 사랑스러운 내 꿈 아닌가요. 내 삶을 아끼면서 춤을 추어요. 내 삶을 사랑하면서 춤을 추어요. 내 삶을 누리는 신나는 웃음꽃과 눈물열매 나누면서 춤을 추어요.
- “어? 잘하는 사람들은 다 그런 거 아냐?” “최소한 나는 처음 보는데.” “…….” “그럼, 내 움직임을 외워서 한 발 앞서 춤춰 준 거라 이거군.” “그럴 수밖에 없잖아? 눈이 안 보이는 사람과 추는 거니까.” “……. 처음에는 파 드 두를 해냈다는 감개도 있었지만, 이런 건 파 드 두가 아니야. 나 혼자 추는 거랑 다를 게 없다. 아니, 오히려 혼자가 나을지도.” “어째서?” “파 드 두는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맞추는 게 아냐. 서로가 100%로 부딪히면서 춤을 끌어올려 가는 거라고.” (182∼184쪽)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라 하는 까닭은 시험문제이기 때문이에요. 시험문제만 헤아린다면 삶은 아무 뜻이 없고 재미가 깃들 틈이 없어요.
하나 더하기 하나라 하는 물음을 내밀 때에는 ‘무엇’을 하나 더하기 하나로 하는데, 하고 물어야 해요. 그냥 하나 더하기 하나만 해서는 몰라요. 저잣거리 장사꾼이 감알을 팔 때에 하나 더하기 하나를 말하는지, 한 사람 사랑과 두 사람 사랑을 하나씩 더한다 하는지, 하늘에 흐르는 구름을 하나 더하기 하나라 하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잖아요. 흐르는 냇물을 하나 더하기 하나 하면 어찌 되는가라든지, 파리가 하나 더하기 하나로 짝짓기 할 때에 어찌 되는가는 사뭇 달라요.
수학공식도 시험문제도 아닌 삶을 그리는 만화라 할 때에는 오로지 하나예요. 같이 눈 맞추며 춤추는 사랑처럼, 함께 마음 맞추며 어우러지는 사랑이에요.
가난한 집 아이도 허물없이 활짝 웃어요. 가멸찬 집 아이도 근심스레 얼굴이 어두워요. 가난한 집 아이도 걱정스레 얼굴이 어둡고, 가멸찬 집 아이도 스스럼없이 활짝 웃어요. 참말 뭐가 다를까요. 삶을 아껴 주셔요. 사랑을 나눠 주셔요. 사람다이 참답고 착하게 살아요. (4345.1.9.달.ㅎㄲㅅㄱ)
― moon 1 (마사히토 소다 글·그림,김유리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09.12.25./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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